취재 이락희 기자 사진 이대원
1987년 출범한 무역위원회는 △덤핑방지관세·상계관세 부과를 위한 덤핑·보조금 지급 여부 및 산업 피해 조사 판정 △지적재산권 침해·원산지표시 위반 등 불공정무역 행위에 대한 조사 및 시정 조치를 하는 준사법적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외국의 불공정무역 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국내 산업 안전망’ 역할을 하는 기관인 무역위원회의 제14대 위원장에 장승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이 임명되었다.
한국 최초의 국제통상법 박사(S.J.D.)로 알려진 장승화 위원장은 하버드, 예일 등 해외 유수의 로스쿨에서 통상 관련 법 강의를 해온 국제통상법 권위자다. 2012년부터 4년간 한국인 최초로 세계무역기구(WTO) 무역 분쟁의 최종심을 담당하고 있는 상소기구 상임재판관을 역임하며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장승화 신임 위원장을 만나 무역위원회의 현안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1985 서울대 법학 학사
1991 서울대 법학 석사
1992 하버드대 법학 석사(독점금지법 전공)
1994 하버드대 법학 박사(국제통상법 전공)
1988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사시 제26회)
1995~현재 서울대 법학부 교수
1998~2005 WTO 분쟁해결 패널리스트
1999~2000 스탠퍼드 로스쿨 방문조교수
2001~현재 ICC 국제중재법원 위원·중재인
2007, 2011 하버드 로스쿨 방문교수
2008 예일 로스쿨 방문교수
2012~2016 WTO 상소기구 재판관
2018. 6~현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2019년~ 무역위원회 14대 위원장
무역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된 지 두 달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무역위원회가 1987년에 출범했으니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고, WTO도 25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무역위원회가 출범할 당시 요구된 역할이 있었으나 세월이 바뀌며 통상 환경이 바뀌었고, 다른 나라 무역구제 기관의 역할도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맞는 무역위원회의 역할, 그리고 거기에 맞는 무역위원장의 책무 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봐야 할 시기에 취임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역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1990년대 초 하버드 대학교에서 국제통상법을 전공하셨습니다. 국내에서는 ‘통상’이 낯설던 시기였는데, 통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유학을 갈 때 꿈은 공정거래법 전문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경제는 재벌 기업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걸 규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그런데 해외에 나가보니 국제시장에서 대한민국 재벌의 존재는 미미했습니다. 국내시장에서 아옹다옹하며 기업을 규제하는 것보다 국제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국제 규범을 준수하며 활발하게 통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더라고요.
법률가로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게 국제통상법이었습니다. 마침 1995년 박사 학위를 받을 무렵 WTO가 탄생했고,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한창 진행될 때라 자연스럽게 통상 분야에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국제통상법 전문가가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해결해야 할 현안에 대해 ‘현행 무역구제 관계 법령’을 우선적으로 꼽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의 무역구제 관계 법령이 만들어진 것은 WTO 출범 전후입니다. 그동안 여러 회원국들의 국내 법령이 WTO 협정에 위반되는지 여부에 관해서 WTO 상소기구 등 분쟁 해결 절차에서 관련 판례들이 상당히 쌓였습니다. 그에 비추어 WTO 출범 후 25년이 지난 오늘 우리 법령을 다시 점검해보자는 것입니다.
점검할 사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국내 기업에 너무 유리하게 만들어 WTO에 위반될 소지가 있는 법령을 손질해 잠재적 분쟁의 불씨를 없애는 것이고, 둘째는 WTO에 비해 지나치게 엄격한 법령은 완화하는 것입니다. 관계 법령 중 내부 지침에 따른 것은 무역위원회 차원에서 바꾸면 됩니다. 상위 기관의 시행령인 경우에는 국무회의를 통해 바꿀 수 있고, 법은 국회에서 개정해야 합니다.
무역조사실의 전문성과 역량 강화도 현안으로 꼽으셨는데, 장기적으로 조직 변화의 필요성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조사관들의 전문성은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수준이 높고, 열정도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무역구제 기관인 ITC나 미국 상무성의 경우 무역구제를 담당하는 직원이 수백 명인데 변호사가 절반을 차지합니다. 이에 비해 무역위원회에는 변호사가 한 명도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무역위원회는 법적 절차를 수행하는 준사법기관입니다. 그런데도 조사 인력에 변호사가 한 명도 없어요. 현재 조사관들이 굉장히 열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법률가가 챙겨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변호사뿐 아니라 변리사, 회계사의 충원도 시급합니다.
산업계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는 무역구제 조치의 실효성을 강화하겠다는 건데, 구체적 방안이 있으신지요?
무역위원회의 무역구제 업무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불공정무역 행위라고 말하는 것으로 지적재산권이 침해된 수입품에 대한 규제 조치가 있고, 둘째는 덤핑에 대한 규제 조치가 있으며, 셋째는 외국의 위법한 보조금에 대해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조치가 있습니다.
우선 지식재산권 침해 행위에 대해 판단하는 사법기관이나 준사법기관(특허심판원, 행정법원 등)이 있습니다만 절차상 시간이 좀 오래 걸립니다. 무역위원회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신속하게 판단해 수입 단계에서 막아주어야 합니다. 사법기관의 판단을 기다릴 필요 없이 위원회의 1차적인 전문적 판단이 요구됩니다.
반덤핑의 경우 철강, 반도체 등 핵심 소재나 기간산업계에서 제소한 사례가 극히 드뭅니다. 그동안 주로 수출 위주 산업군이다 보니 해외시장에서의 수입 규제를 우려해 반덤핑 제소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20년을 돌아보면 국내시장에서 조심한다고 해서 외국에서 반덤핑 제소를 안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할 만큼 다 당했거든요. 외국 기업의 덤핑으로 국내시장을 좀 내주더라도 해외시장에 수출을 많이 하면 된다는 생각을 이제는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기간산업에서도 반덤핑 제소를 하면 무역위원회에서는 법과 WTO 협정에 맞추어 투명하고 공정하게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상계관세 조치는 여태까지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집행해본 적이 없는 조치입니다. 상계관세는 개별 기업의 덤핑 행위가 아니라 수출국 정부의 보조금을 문제 삼기 때문입니다. 제소하게 되면 사실상 피신청인이 상대국이 되다 보니 함부로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예전에는 미국만 집행한 조치이기도 합니다. 그 후 WTO가 출범하면서 OECD 회원국 중 12위권 국가들은 다 상계관세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 업계도 상계관세 제소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장승화 위원장은 현행 관계 법령 점검, 무역조사실의 전문성과 역량 강화 등을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꼽았다.
다자무역체제를 관장하던 WTO가 여러 가지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다자무역체제를 통한 국제무역 질서 유지가 약해지다 보니 각국의 무역구제 기관이 나서서 하는 반덤핑 조치, 상계조치 등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WTO를 통해 조율하던 것을 이제는 국가 대 국가의 레벨에서 무역구제 기관들끼리 양자든 다자든 간에 협조 또는 조율할 필요성이 커진 겁니다. 각국의 무역구제 기관과 네트워크를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매년 무역위원회에서 개최하고 있는 ‘무역구제 서울국제포럼’의 위상과 역할이 좀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1월 말 미국 ITC 를 방문하였는데, 이 역시 양자 차원에서 협력과 접점을 찾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무역위원회에서는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요?
1995년 WTO 출범을 기점으로 유학생 중 통상법을 공부하는 학생이 급증했습니다. 덕분에 지금 연구원, 로스쿨, 학계에는 통상법, 통상경제학 분야 전문가들이 탄탄하게 포진해 있습니다. 선진국 못지않은 인적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지요. 그런데 통상법 분야 변호사 등 전문 인력을 키워내도 그들이 일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무역위원회에 변호사가 한 명도 없는 것이 대표적 사례일 것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통상분쟁대응팀이 있는데, 거기에도 국내 변호사가 매우 부족합니다.
무역위원회도 법률가가 없는 상태에서 출범했기 때문에 그게 당연시됐던 것 같고, 로스쿨 졸업생이나 법률가도 ‘저쪽은 우리가 갈 자리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굳어지면서 역효과가 생긴 거죠. 훌륭한 교수진이 인재를 길러내도 진출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으니 통상 분야의 아까운 법률가들이 다른 데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사실 무역위원회에서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무역구제 경연 대회’ 등을 통해 젊은 인재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그런 인재들을 무역위원회로 흡수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무역위원회에서 먼저 통상 법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하면 무역 관련 다른 기관이나 부처에서도 법률가의 수요가 생겨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법률가의 역할이 추가되거나 보강되어야 한다는 취지이며, 기존에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 무역·통상 인력을 법률가로 대체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