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형준 여행 작가, <유럽동화마을여행> 저자
유럽 대륙의 서쪽 끝,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은 타구스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천혜의 무역항이다. 고대의 강력한 해상 상업민족 페니키아인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도시다. 15세기에는 대항해 시대를 열고 지구촌의 문명발전을 주도했다. 지금도 뱃머리에서 결연한 눈빛으로 대양을 응시하는 대항해 시대의 주역들을 만날 수 있는 도시다.
이베리아반도에서 가장 긴 타구스(Tagus)강 끝자락에는 발견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60년 10월 10일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낸 이 기념비는 해양대국의 기초를 마련한 엔히크 왕자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엔히크 왕자는 아시아 항로와 세계 항로를 개척하진 못했지만 직접 선단을 이끌고 북아프리카와 대서양의 섬을 탐험해 항로를 넓혀나갔다. 그리고 아시아 지역으로 향하는 탐험대를 지원하는 등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대항해 시대를 기념하는 발견기념비는 높이 52m, 길이 46m, 폭 20m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웅장하다. 전체적인 외형은 엔히크 왕자가 활동하던 당시 범선을 형상화했다. 하얀 석재를 사용해 완성한 발견기념비에는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를 연 주요 인물과 국교인 가톨릭을 상징하는 십자가뿐만 아니라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각종 생활용품의 모습까지 동서남북으로 조각했다.
발견기념비에 새겨진 여러 이미지 가운데 맨 앞쪽에서 범선을 손에 들고 있는 인물이 엔히크 왕자다. 왕자가 들고 있는 선박은 장거리 항해를 목적으로 개발한 포르투갈 양식의 범선이다. 일명 ‘카라벨’로 불리던 선박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돛을 수시로 조절할 수 있도록 삼각형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역풍이 불어도 항해가 가능하게 제조된 카라벨 범선은 원래 아랍에서 사용했던 범선을 기초로 건조한 선박으로 알려져 있다.
엔히크 왕자 조형물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각각 16명씩 32명의 인물이 새겨져 있다. 인도 항로를 발견한 탐험가 바스쿠 다가마와 세계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페르디난드 마젤란, 브라질 항로를 발견한 탐험가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 등이 새겨져 있다. 대부분 대항해 시대를 연 주역들이다.
리스본에는 흥미로운 명소가 즐비하다. 도처에 유적과 명소가 흩어져 있는 리스본의 최고 명소는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제로니무스 수도원(Monastery of the Hieronymites)과 벨렝탑(Tower of Belém)이다. 타구스강과 대서양을 응시하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포르투갈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수도원은 1498년 바스쿠 다가마(Vasco da Gama)가 인도 항로를 개척한 후 향신료와 비단무역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왕국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지은 건축물답게 웅장함과 섬세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리스본을 잿더미로 바꿔버린 1755년 대지진 때에도 본래 모습을 온전히 지켜낸 건축물이기도 하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건너편 타구스 강물 위에는 벨렝탑이 우뚝 솟아 있다. 벨렝탑도 수도원을 건축한 마누엘 I세가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1515년 완공된 벨렝탑의 건설 목적은 리스본을 출입하는 선박을 감시할 목적이었다. 수백 년 동안 항구를 감시하던 벨렝탑은 스페인 식민통치 시절에는 포르투갈의 독립운동가와 정치가를 가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리스본 도심은 타구스강을 끼고 조성된 바이샤 지구와 언덕 위에 조성된 알투 지구로 구분된다. 리스본은 역사가 아주 오래된 도시지만 역사의 흔적은 그리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1755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잿더미가 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도시 풍경은 대부분 대지진 이후에 재건된 모습이다. 오늘날 리스본의 중심인 헤스타우라도레스 광장에서 폼발 후작 광장까지 이어지는 리베르다드(Liberdad) 거리와 그 주변도 대지진 이후에 조성되었다. 1880년에 완공된 리베르다드 거리는 폭 90m, 길이 1.5km로 리스본 주요 명소가 밀집된 번화가다.
리스본 관광의 중심지는 바이샤 지구에 위치한 코메르시우(Comércio) 광장이다. 코메르시우 광장은 옛 리베이라 궁전이 위치한 곳으로 궁전 광장이란 애칭으로 불린다. 광장 중앙에는 개혁의 왕으로 불리던 주제 I세(Jose I)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광장 남쪽에는 타구스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대지진으로부터의 회복을 상징하는 개선문 아우구스타 아치(Augusta Arch)가 있다. 높이 11m에 달하는 여섯 개 기둥 위에 세워진 아치에는 바스쿠 다가마와 폼발 후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바이샤 지구와 알투 지구 경계지점에는 리스본 대성당이 있다. 고딕, 바로크,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로 이채로운 곳이다. 1147년에 공사를 시작해 1150년에 완공되었는데도 다양한 양식이 보이는 이유는 여러 차례 수정을 걸쳐 완공되었기 때문이다. 대성당도 제로니무스 수도원, 벨렝탑과 함께 대지진에 견딘 건물이다.
리스본 외곽 신트라(Sintra)는 뛰어난 자연환경으로 유명하다. 이곳도 1755년 발생한 지진으로 오래된 건축물은 대부분 사라졌다. 성당, 법원, 일부 군사 건축물 등만 남아 그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신트라를 상징하는 명소는 산 위에 세워진 페나 왕궁이다. 페나 왕궁은 유럽 낭만주의 건축물을 상징하는데, 디즈니 영화에 등장할 법한 모습이다. 여느 왕궁과 다르게 형형색색으로 마무리해 다른 세상으로 시간여행을 온 착각을 선물한다.
페르디난드 2세(Ferdinand Ⅱ)의 명령에 따라 건축된 페나 왕궁과 주변 유적은 포르투갈 건축가 포시도니오 두 실바(Possidónio do Silva)가 설계한 것이다. 유럽 낭만주의 건축물의 시발점으로도 알려진 이 왕궁은 고딕, 이집트, 무어, 르네상스 양식 등 여러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궁전 아래쪽에 조성한 참나무 숲과도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런 조화는 훗날 유럽 전역의 조경 양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신트라 인근에는 유럽 서쪽 끝 호카곶(Cabo da Roca)이 있다. 대서양 연안을 따라 조성된 144m에 달하는 화강암 절벽이다. 이곳에는 유라시아 대륙 최서단의 곶을 상징하는 기념탑과 등대 등이 세워져 있다. 신트라산맥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호카곶은 대규모 유적이나 볼거리는 없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대항해를 꿈꾸는 바다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이정표 기능을 담당해주던 곳이다.
포르투갈 리스본은 여느 유럽의 수도들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하지만 넓은 세상을 찾아 떠나려는 수많은 탐험가와 여행자에게 꿈을 선물한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