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바다를 지키는 한국의 ‘오딘’으로 살다

권오익 대우조선해양 기술본부장

취재 이슬비 기자 사진 지다영

권오익 대우조선해양 기술본부장(CTO)은 1970년대 말, 서울대학교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하고 1982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한 이래 지금껏 한국 조선의 기술경쟁력을 높이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40년 가까이 한길을 걸으며 한국 조선산업 발전의 살아 있는 역사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권오익 또는 ‘권’이라는 패밀리 네임 대신 북유럽 바이킹의 신 ‘오딘(Odin)’으로 불린다. 인터뷰 전날에도 유럽 출장을 다녀온 권오익 CTO를 만나 한국 조선업의 미래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주요 경력

1982년 서울대학교 조선공학과 졸업
1982년 1월~현재 : 대우조선해양 입사, 현 기술본부장(CTO)

세계 최초 초대형 고효율 컨테이너선 개발 및 수주
(Maersk Line 31척 포함, 55척 수주)
LNG선에 고효율 저속 이중연료 엔진 적용 : 현재까지 59척 수주 북극항로 항해 쇄빙 LNG선 개발 및 수주 : 15척 수주
(Arc7 Class, 2.1m 쇄빙기능, -52도 Winterization)
‘Arc7급 쇄빙 LNG 운반선’ 장영실상(미래창조과학부장관) 대한민국 기술대상 국무총리상(산업통상자원부장관)

2018년 2월 마르퀴즈 후즈후 세계인명사전 등재 2018년 11월 마르퀴즈 후즈후 세계인명사전 평생공로상 수상 2019년 9월 조선해양인의날 은탑산업훈장 수상 2019년 10월 대한조선학회 기술상 수상

권오익 전무님께서는 1982년 대우조선해양(DSME)에 입사한 이래 조선업계에 40년 가까이 몸담으셨습니다. 그간의 소회를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업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신 선배가 많은데 이제는 모두 현업을 떠나셨어요. 이제 주위를 둘러보니 제가 1970년대의 마지막 조선 엔지니어인 것 같습니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외국에서 도면을 사와서 해석을 한 뒤 우리의 실정에 맞게 다시 재작업하여 선박을 건조하였지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우리 손으로 모든 설계와 디자인을 하고 세계 최초 및 최대의 선박을 건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조선업은 ‘세계 최초, 최대’ 등의 수식어가 가장 많이 달린 산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손꼽는 성과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세계 최초, 최대는 너무나 많지요. 그중에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성과도 있어요. ‘야말 프로젝트’라 불리던 것인데 단일 계약 사상 최대 규모인 5조 원짜리 프로젝트였습니다. 북극 쇄빙 LNG선을 자체 설계로 수행하여 15척 모두를 계획 대비 조기에 인도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선박들이 지금 북극을 누비며 액화천연가스(LNG)를 운반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 이후 대한민국 선박 제조 기술은 더 이상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자부합니다. 당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북극 항로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라고 평가했을 정도입니다.
조선산업은 개별수주 산업입니다. 자동차처럼 레디메이드(Ready-made)가 아니라 철저한 오더메이드(Order-made) 산업입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맞춤양복’을 만드는 일과 같다고 할까요. 하나하나 선주의 요구에 따라 맞춤 제작되기 때문에 겉으로는 모든 배가 똑같아 보여도 세상에 같은 배는 하나도 없습니다. 일본은 선주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설계 능력이 부족해서 자동차처럼 대량 생산으로 제작해 싼값에 공급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자동차로 치면 옵션이 없는 거죠. 요즘 선주들은 이런 제품을 원하지 않습니다.

전무님의 영문 성함 ‘오딘’이 현지에서 화제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오딘은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노르웨이 바이킹의 신입니다. 제가 북유럽 지역을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노르웨이나 덴마크, 스웨덴 등의 선주들 중에는 ‘Oh My God!’ 하면서 반기는 분이 많습니다. 노르웨이 전임 주한대사의 이름도 토르하임인데 ‘토르가 사는 집’이라는 뜻이에요. 토르는 천둥의 신이고요. 이름이 인연이 되어 한국과 노르웨이 사이의 기술 교류 및 문화 교류의 기회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영업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해외 출장을 가면 선주들을 만나기 전에 반드시 그 지역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들릅니다.

조선업계의 글로벌 침체 속에서 우리나라가 7년 만에 1위를 탈환했습니다.
현장을 읽는 감각이 누구보다 탁월하실 텐데요, 한국 조선업 부활의 배경을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이 세계 1위를 지켜왔습니다. 블록조립 개념으로 선박을 건조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러나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에도 현대조선을 필두로 대우, 삼성 등 대형 조선이 탄생했고, 1980년대에는 자체 설계 기술로 경쟁력을 갖추면서 일본의 기술을 앞서가기 시작했어요.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은 기술력뿐만 아니라 수주량에서도 일본을 밀어내고 세계 1위가 되었습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조선소 랭킹 1위에서 7위까지가 전 세계 조선소 랭킹 1위에서 7위였습니다. 우리나라 산업 역사상 어느 산업도 그런 예가 없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저임금의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세계 수주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기술력의 한계로 선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 시장이 부상했어요. 정부 차원에서 조선소가 통폐합되고 자국 발주가 엄청나게 이루어지면서 수주 1위 국가가 된 거지요. 하지만 중국은 아직 선박 건조 기술이 벌크선처럼 저부가가치 선박에 머물러 있어 처음부터 경쟁상대는 아닙니다. 중국의 저가 전략에 밀려 고전하던 우리나라의 조선업은 최근 친환경 이슈가 대두되면서 부활하고 있습니다.

태풍의 신으로 숭배되었던 북유럽 신화의 최고신
‘오딘’

국제해사기구(IMO) 환경 규제에 따른 친환경 이슈가 우리나라 선박업계 부활의 호재라는 말씀이신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2020년 이후에는 미세먼지의 주범인 질소산화물(NOx), 황산화물(SOx) 등의 배출 규제를 넘어서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CO₂)를 비롯한 온실가스(GHG) 규제가 매우 강하게 해운산업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선박의 CO₂ 배출량은 선형 개발, 에너지 절약장치, 운항최적화 기법 등을 사용하면 50%까지 절감이 가능합니다. 이를 위한 자체 기술 개발과 그 기술을 융복합할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의 조선소밖에 없습니다. 물론 지속적인 기술력 개발과 더불어 원가경쟁력 확보에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든 추월당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에 비해 LNG선 건조 기술은 늦게 시작하였으나 특화된 엔진 기술, 카고탱크 기술, 재액화 기술 등은 한국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한국이 4세대 기술을 보유했다면 중국과 일본은 아직 2세대 내지 3세대 기술을 겨우 소화하고 있으며, 한국의 조선 인력을 데려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세계에서 제일 많은 LNG선의 건조 실적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SOLIDUS’라는 탱크 시스템, PRS(Partial Re-liquefaction System)라고 불리는 자동재액화 시스템 개발 및 최초로 고효율 엔진을 도입하고 자체 설계한 북극 쇄빙 LNG선의 성공적인 인도를 마쳤습니다.

환경 규제 강화로 선박업계가 어떻게 바뀔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앞으로 CO₂ 배출이 많은 선박은 탄소배출세를 많이 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전제품을 살 때 앞면이나 옆면을 보면 1~5단계로 나뉜 효율등급이 보이듯이, 선박의 CO₂ 배출에 대해서도 같은 수준의 등급이 매겨질 것입니다. 현재에도 많은 화주가 친환경 선박에 자사의 제품을 운반하여 친환경 이미지를 높이는 노력을 합니다. 선박 파이낸싱(Financing) 관련 은행들도 친환경 선박에만 투자를 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어요.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저가’를 내세워 선박을 만들면 운항하기 힘들다는 것을 중국이나 일본도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문제는 기술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1980년대 이후 레퍼런스 없는 맨땅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전 세계의 자료를 뒤적이고, 동료들과 밤새워 고민했습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하나하나 쌓아온 결과가 이제 친환경에 대한 우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환경 규제가 강화될수록 우리에게는 더 유리하게 바뀔 것으로 예상합니다.

조선업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고 계신지요.

선원의 해상생활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자동화 및 예측 기능, 본사와의 직접 정보 교환, 안전, 그리고 선내 편의시설 등의 확보가 중요한 이슈로 다가왔습니다. 선박의 설계 및 장비에도 인공지능(AI) 및 사물인터넷(IoT), 사이버 보안(Cyber Security) 등의 기술이 반영되며, 빅데이터를 통한 운항 최적화와 원격 제어 등의 기술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무인화와 관련된 국제 규정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군함을 선두로 머지않아 무인 화물선이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스마트 조선소 도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IoT 기반 전 공정의 정보수집, 즉 모든 장비 및 사내 물류의 데이터 센싱에서 출발하여 이를 빅데이터화하고 가공해 인공지능 기반의 정보화를 이용한 설계-생산-경영에 도입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스마트 야드를 넘어서 스마트 십까지 이어지며, 상선뿐만 아니라 해양제품 및 특수선까지 확대 적용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또한 스마트 기술은 친환경 기술과도 접목되어서 연비절감은 물론 오염배출 저감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선가를 넘어서 CO₂ 배출 제로에가장 연료를 적게 먹는 친환경과 무인화에 가까운 자동화를 갖춘 선박 기술을 꾸준히 개발한다면, 미래는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