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김선녀 기자 사진 박충렬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GSC; Global Supply Chain)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글로벌 주요 교역 국가들은 국경을 걸어 잠그고 규제를 내걸기 바쁘다. 코로나19 사태로 GSC가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이미 우리의 일상을 바꿔버린 코로나19가 사회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통상, 유통, 규제 전문가에게 그 답을 물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 제조업 생산의 65%, 제조품 수출의 41%를 차지하고 있는 G7 국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글로벌 공급망 붕괴의 주요한 이유다. 특히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중국, 일본, 독일 등 글로벌 공급망 중심 국가에서 대규모 봉쇄(Lockdown) 조치 또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면서 소위 ‘공급망의 전염’이 발생했다. 세계 제조업과 서비스업 경기를 나타내는 지표인 글로벌 복합구매관리자지수(PMI)의 최근 3개월 수치를 살펴보면 지난 1월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현상으로 세계의 충격이 크다. 특히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GSC를 정비해나가고 있던 과정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해 한국 기업들은 앞으로의 GSC를 어떻게 재정비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GSC에 대한 검토는 트럼프 정부 때부터 많은 논의가 있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NAFTA 개정협정),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을 통해 세계 경제를 지역별로 블록화하는 방식으로 끌고 가고 있다. 한국 GSC 역시 지역별 GSC 혹은 블록 형태로 변해갈 확률이 높다.
GSC 붕괴는 생산 부문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원자재 공급이 안 되는 경우, 근로자 보호 차원에서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경우, 주문 감소로 공장을 가동할 물량이 없는 경우다. 원자재 공급 불가와 공장 가동 중지는 이미 일어났고, 각국의 수출 규제로 수출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쌀과 밀가루 등 곡물은 이미 시작되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물류망 단절이다. 물류는 보통 화물 전용기와 여객기 일부로 이뤄지는데 이미 80% 이상의 비행기가 운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상적으로 따져보면 GVC가 충격을 받을수록 항공운송과 관세, 통관 등의 국제공조가 중요해지는데 오히려 국가 간 통제가 심해지는 등 분위기가 거꾸로 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정도의 다자협력은 아니더라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을 통한 지역 블록협력체제가 활성화돼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역이 GDP의 핵심이 되는 한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트레이드(Digital Trade)가 무척 중요해질 것이다. 한국 역시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서 적극 대응해야 하며 미국, 멕시코 및 캐나다협정(USMCA)이나 미국과 일본간 디지털무역협정과 같은 최근의 디지털 협정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제적 공조가 중요한데 실제로 일어나는 건 보복적인 성격의 정책들이다. 최근 미국에서 마스크와 의료기기 공급이 어려워 중국 내 미국 공장에서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는데, 중국에서 중앙정부 승인을 핑계로 출발을 지연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이후 반대로 미국의 중국에 대한 보복으로 이어져 또 다른 미·중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작년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용 OLED의 경우 국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제품 공급률은 전 세계 89.5%에 다다른다. 이 공급망을 닫아버리면 일본과 미국의 전자회사 등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GSC는 서로가 얽혀 있어 공급망 단절을 한 당사국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가져가며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 복구에도 긴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공급망에 대해서는 국가 간 개별적인 협의가 더더욱 중요하다.
각국 정부가 공조해서 기업이 장애 없이 서로를 믿고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코로나19 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를 많이 비교하는데, 2008년 당시는 사고가 난 직후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인 바 있다. 지금도 화상회의 등 다양한 조치가 이뤄지지만 좀 더 적극적인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운송 물류가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항공·선박 종사자에 대한 특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관련 종사자들은 무조건 14일간 자가격리해야 하고, 하선도 금지되고 있다. 항만 근로자를 위한 빠른 진단 서비스나 무감염증명서 통용 등 이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또한 지난 중국의 마스크 경우처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책이 달라 지방에서는 막고, 중앙에서는 풀어주는 등 혼선이 생기기도 한다. 일괄적인 정책을 위한 상호주의가 필요하며 국가 양자 간·다자 간 대화가 모두 중요하다.
앞으로 보건과 의료 관련 물품의 상당량이 자국에서 생산하는 형태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한국은 그동안 생산기지를 결정할 때 수익성을 따져 가늘고 긴 공급망이 형성되었지만 앞으로 중국, 베트남 등에 나가 있는 기업들의 전략에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 이제는 수익성뿐 아니라 안정성까지 가져가 거점 지역에서 복수의 공급선을 갖는 형태로 변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예를 들어 현대차가 외국에 진출하면 협력업체들이 따라 나가는 수직적인 형태가 대부분이다. 앞으로는 기업 간 보완할 수 있는 수평적인 협력관계로의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
표 변호사님 말씀처럼 한 나라에 집중하는 공급망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효율성 측면뿐 아니라 리스크 분산 관점에서의 생산기지 관리가 필요하다. 해외투자 진출 역시 시장과 생산지를 분리하지 말고 시장진출용으로 진출 목적을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다. 많은 나라가 제조업 육성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상황도 주목해 시장 기회 요인을 살펴 이를 고려한 공급망을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코트라에서는 공급망 애로를 겪고 있는 기업들의 대체 공급선을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마스크 생산에 필요한 필터가 부족했을 때 전 세계에 수배해 필터를 수입해오는 데 도움을 주었고, 현지 정부 및 대사관과 협력해 해외진출 기업들의 다양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지원하고 있다.
물류망 복구에 신경 써야 한다. 최근 산업부와 무역협회가 함께 자카르타 여객기를 개조한 화물기를 전 세계에 보내고, 그다음 지역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일시적으로 전체 교역 물량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에 대한 항로조차 부족하다. 시간이 상당히 중요하다. 당장 시급한 건 이렇게 물류망을 연결해 2차, 3차 피해를 막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와 관련한 법적 분쟁에 대한 대비 역시 필요하다. 예상치 못한 사태였기 때문에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단된 프로젝트가 많다. 이런 경우 과연 불가항력이 적용되는가,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책임 부분이 문제가 될 것이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건설 공기 연기 문제에 대해 유권해석으로 불가항력을 인정해주었다. 민간기업에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의 도움이 필요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 출장 및 행사 취소 등 글로벌 비즈니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을 위해 지난 2월 13일부터 화상상담을 가동하고 있다. 약 두 달 동안 총 3,400여 건의 상담에 국내 기업 1,700개사, 해외 바이어 1,600개사가 참가해 4,000만 달러 상당의 계약이 성사됐다.
코로나19 이후 디지털화가 큰 흐름이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코트라에서는 추후 화상상담을 디지털 마케팅을 위한 플랫폼으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또한 코로나19로 생긴 트렌드의 하나인 홈코노미 제품 마케팅, 방역 관련 제품 온라인 전시관 등 다양한 디지털 마케팅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까지 무역 관행이던 대면과 실물 전달이 상당 부분 비대면 방식으로 갈 것이다. 실제로 디지털 화물의 교역량이 많이 늘고 있다. 앞으로는 화상상담을 통해 실물을 보내지 않고도 샘플 도면을 보내고 3D 프린터로 출력하고 확인하는 사례가 더욱 많아질 것이고, 이런 변화는 곧 일상생활도 바꾸게 될 것이다.
디지털 산업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언택트 기반 산업이 발전할 것이라는 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몇 가지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한국은 ICT 강국이라 하드웨어는 훌륭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그곳에 탑재되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많은 부분이 숙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BTS) 같은 글로벌 스타의 탄생이나 ‘아기상어’의 이례적인 인기는 무엇보다도 탁월한 콘텐츠와 우리나라가 가진 강력한 하드웨어, 그리고 SNS라는 새로운 매체의 결합으로 인한 결과였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쪽에 인력을 투입하고 좋은 생태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보안문제 역시 따라 나올 것이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산업 활성화에서 현명한 절충안이 필요하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나갈지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해야 한다.
이미 사회와 경제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무역량 축소는 물론 보호주의와 자국 완성형 트렌드 등 앞으로 국가 간 교류는 크게 침체될 것으로 보인다. 방역 관련 소비재 등에 대한 리쇼어링(Reshoring·해외진출 기업의 본국 회귀)도 상당히 늘어날 것이다. 재고는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도 완전히 바뀔 것이고 생산공장도 결국 소비 중심으로 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장 역시 산업군을 넘어 모든 제품을 만드는 유연 생산 시스템으로 변화되고 무인 자동화도 늘어날 것이다.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 기업 순위가 뒤바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수익성과 효율성, 그리고 안정성을 같이 추구하는 지역다변화는 필수적이다. 투자 측면에서는 전반적으로 제한받고 있는 분위기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미국, 유럽 등의 주가가 30% 이상 떨어지면서 오히려 헐값에 인수할 기회가 생겼다. 자본이 넉넉한 중국 기업들은 지금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우리 기업에도 미국, 유럽연합(EU) 등의 우량 기업을 인수할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디지털 화폐가 부상할 것이다. 아직은 화폐 당국과 기업의 견해차가 있지만, 미국 페이스북을 비롯해 중국도 끊임없이 디지털 화폐에 대한 부분을 준비하고 있다.
GSC는 짧아지고 분산될 것이다. 자국 혹은 인근 국가에서 대부분의 가치사슬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고, 한 나라에 의존하던 생산기지는 몇 개 나라로 흩어지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새로운 가치사슬 중심지역으로 멕시코가 부상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디지털화 역시 전 업종에 걸쳐 가속될 텐데 코로나19로 인한 원격업무 증가, 관리 자동화 기술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각국의 5G 도입이 활성화될 것이다.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대비하면 한국 기업에도 좋은 기회가 올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