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史 큐레이터

‘이것’ 때문에 미국은 웃고 중국은 울었다
차(茶) 무역사(史)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첫 모금을 통해 목, 입을 적시고, 두 번째는 외로움을 녹인다. 세 번째는 시심을 깨워주고 네 번째, 다섯 번째는 일상의 불평불만을 씻어낸다. 그리고 여섯 번째 모금을 마시면 신선의 경지에 이른다.” 차에 대한 감상을 노래한 당나라 시 구절이다. 범인(凡人)을 신계(神界)로 이끄는 차 관련 무역이야기의 첫 페이지는 3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무려 18세기 초다.

차는 중국의 중국종과 인도의 아삼종1)이 대표적이지만 쉽게 떠오르는 건 영국 홍차 문화다. 영국 상류층이 오후에 우아하게 마시는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나 ‘티타임(Teatime)’ 등은 결코 낯설지 않다. 18세기 초에는 차가 귀해서 설탕과 함께 넣어둔 서랍을 자물쇠로 잠갔을 정도였지만 19세기에는 식민지이던 인도에서 차를 재배해 대량 수입하며 가격이 내려가 모든 국민이 차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무역의 긍정적 효과다. 재밌는 건 그사이 산업혁명이 차의 일상화에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산업혁명 후 노동생산성 유지와 질병 예방에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차와 이에 함유된 카페인의 각성효과다. 카페인은 니코틴, 모르핀과 화학구조가 비슷해 신경을 흥분시켜 설탕을 넣어 마시면 집중력 상승과 열량 보충이 되어 일석이조였다. 같은 목적으로 마시던 알코올보다 덜 해로워 일석삼조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그 겨울의 북대서양은 붉었다
‘보스턴 차 사건’

전쟁 때 무기만큼 중요한 게 바로 돈이다. 영국은 18세기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미국 등 식민지에서 걷은 세금으로 막대한 전쟁비용을 충당했다. 특히 큰 세수(稅收)는 미국에 수출한 차에서 나왔다. 당시 차 세금이 높아 미국은 네덜란드에서 차를 밀수입했고, 영국은 1773년 이를 단속코자 ‘차법(Tea Act)’, ‘홍차 조례’로 불리는 법률을 제정했다. 밀수 방지 유통망 확보, 세금 누수 방지, 유통 거품 제거로 인한 홍차 값 하락까진 좋았지만 밀수로 부를 쌓던 식민지 상인들의 불만은 커졌고, 입법과정에서 영국의 강압적 태도는 미국 주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결국 그해 12월, 보스턴 항을 통해 차를 운송하던 영국 배를 기습한 미국 식민지 주민들은 차 상자들을 바다로 던졌는데 당시 바닷물이 우러나 홍차 빛깔이 될 정도였다. 이듬해 영국은 미국의 저항에 항구 폐쇄라는 강경책으로 맞섰고, 이는 미국의 반감을 더욱 고조시켜 1775년 독립전쟁, 1776년 독립선언서 발표로 이어졌다. 흔히 ‘보스턴 티 파티(Boston Tea Party)’로도 알려진 이 사건은 미국인에게 독립의 역사적 기쁨을 축하할 진짜 ‘파티’의 도화선이 됐다. 이후 미국은 영국에 대한 반감으로 홍차 대신 커피로 입맛을 바꿨고 대신 그 커피를 연하게 내려 홍차와 비슷하게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이 유럽의 진한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연하게 마시는 유사 문화가 이어지면서 이른바 미국인의 커피, ‘아메리카노’가 탄생했다.

차로 웃고 차로 울었다
‘아편전쟁’

영국인들은 차를 사랑했지만 영국은 차 재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그래서 주로 중국에서 찻잎을 수입해 마셨고 이때 찻잔 등 중국산 도자기도 함께 수입했다. 영국 모든 계층에 차 문화가 확산되면서 대중무역 적자가 굉장히 심해졌고 무역수지 개선의 묘수를 고심하던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수출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아편이 적당히 쓰면 진통제가 되지만 과하면 마약이 되는 게 문제였다. 중국 내 아편 중독자가 빠르게 늘고, 수요가 많아지자 가격도 높아져 양국 무역수지에 반전 조짐이 생겼다. 결국 중국은 아편 판매와 수입 모두 금지해버리는데 이후에도 밀수입 등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거래상을 처형하고 영국 상인, 관료들을 감금하며 아편을 파기하는 등 강도 높은 조치들을 취했다. 오늘날에도 중국 형법은 마약에 있어서는 자비가 없는데 이런 경험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영국은 중국 조치가 자유무역에 반한다며 1839년 ‘영·중 무역전쟁(아편전쟁)’을 일으켰다. 대중무역 적자→영국 불만→무역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오늘날 미·중 무역전쟁 데자뷔다. 3년을 싸우고 영국이 승리했는데, 사실 전쟁의 씨앗인 아편은 양귀비꽃이 시든 뒤 열매 속 하얀 진액이 원료다. 중국은 양귀비로 당나라가 망했고, 또 다른 양귀비로 당시 청나라도 망할 뻔한 셈이다. 종전 후 1842년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이 체결되는데 중국은 상하이 등 5개 항구를 개방하고 배상금을 내는 것도 모자라 홍콩까지 뺏겼다.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 주석과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총리의 1984년 ‘중·영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으로 1997년 반환되긴 했지만 이미 민주주의화, 자본주의화가 된 홍콩은 지금도 ‘일국양제(1국2체제)’ 아래 중국과 마찰이 많다. 홍콩을 돌려준 영국에게 ‘땡큐’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를 무역문제, 난징조약과 연결하면 지금 중국에게 미국과의 무역전쟁, 미·중 1단계 합의는 트라우마와도 같다. 차와 관련해 미국은 웃고 중국은 울었던 이런 무역사가 있다. 과연 지금의 미·중 무역전쟁 승자는 누가 될 것이고 이것이 미래에 어떤 무역사로 기록될지 관심이 간다.

1) 다르질링(Darjeeling), 아삼(Assam) 등홍차 명칭은 재배지인 인도 지명에서 유래.

※ 참고: 식탁 위의 세계사(이영숙, 2012),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 2019) 및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