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K-방역 모델 국제표준화 장기적 안목과 투자로 길 찾아야

이상진 한국표준협회 회장

취재 이락희 기자 사진 이준형

코로나19의 팬데믹 국면에서 우리나라 방역체계가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정부는 코로나19 대응 모범 사례를 국제사회와 공유하고 함께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K-방역 모델의 국제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검사-확진-역학 조사-추적·격리-치료로 이어지는 대응의 전 과정에 걸친 절차와 기법 등을 K-방역 모델로 체계화하여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제안할 계획이다. 이에 국내 유일의 표준화 기관인 한국표준협회(KSA) 이상진 회장을 만나 표준화의 필요성과 향후 추진방안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았다. 이상진 회장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한 통상전문가이자 산업표준화를 지원하는 표준전문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주요 이력

  1. 서울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졸업(석사)
  2.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박사)
  3. ○ 2010년 5월 지식경제부 충청지방우정청장
  4. ○ 2011년 6월 국무조정실 산업통상미래정책관
  5. ○ 2014년 9월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력국장
  6. ○ 2016년 6월 산업통상자원부 대변인
  7. ○ 2017년 1월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
  8. ○ 2018년 3월 한국표준협회 회장 취임

정부 부처에서 근무하다가 한국표준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셨습니다.
그간의 소회를 한말씀 해주세요.

한국표준협회 회장으로 선임된 지 2년 2개월이 되었습니다. 공무원으로 일할 때는 나라 발전을 위한 정책을 수행하였다면 한국표준협회 회장이 되어서는 주로 기업과 정부 연결, 기업 컨설팅 등을 했습니다. 부가가치를 만들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년 전부터 스마트공장,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새로운 사업에 진출했는데 신사업이 급속하게 성장하여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올해 3월부터는 인큐베이팅 사업도 시작하였습니다. 협회의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고 있어요.

특히 2019년에는 국제표준화기구(ISO) 총회에서 우리나라가 이사국으로 선출되는 좋은 성과도 있었지요.
여러 표준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거둔 성과라 의미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ISO 이사회는 국제표준화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는 최고의결기구입니다. ISO 이사회는 6개 상임이사국과 14개 비상임이사국을 합친 20개 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임이사국은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입니다. 비상임이사국은 총회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데 이번에 우리나라가 선출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산업표준화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차 산업혁명이 대두되면서 표준화가 선행성, 융합성, 사실상 표준화(De-facto Standard)라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표준을 만드는 절차가 복잡했어요. 연구개발, 기술개발, 특허획득, 테스트 등을 거친 후에야 표준이 만들어졌어요. 지금의 표준은 거의 동시에 진행되거나 오히려 선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순서대로 가지 않아요. ISO나 국제전기표준회의(IEC)의 정식 절차를 통해 표준을 만들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 같은 ‘사실상 표준화기구’ 역할이 크게 부각되고 있어요.

중국도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를 위한 노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35년까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등의 분야에서 매년 100개씩 총 1,000개의 표준을 확정짓겠다고 선언했어요. 전 세계 표준의 60~70%를 자기들이 차지하겠다는 뜻입니다. 시진핑은 칭화대 공대 출신으로 표준화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아는 인물입니다. 표준화를 위해 항저우라는 작은 시 단위에 1조 원의 예산을 투자하고 있어요.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입니다. 예전에 제가 산업부에서 통상교섭실장으로 있을 때만 해도 만나기 힘들었던 중국의 인사들을 요즘은 쉽게 만나고 있어요. 한국표준협회 회장을 만난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실적이 되기도 하지만 국제표준화를 하려면 한국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IEC 등 정보기술(IT) 분야에서 한국의 표준 활동이 활발하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져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다른 회원국에 미치는 영향력이 큽니다.

통상교섭실장으로도 근무했기 때문에 통상과 표준의 관계에 대해 좀 더 명확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세계 양대 표준화기구로 ISO와 IEC가 있고 그 외에 사실상 표준화기구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자/로봇 등과 관련한 IEEE와 자동차기술협회(SAE)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국제사회에서 표준을 만든 이유는 다른 나라와의 호환을 투명하게 하고 국가 간 교역을 촉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국가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할 목적으로 독자 표준을 만들면서 국제통상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TBT협정(무역기술장벽에 관한 협정)을 발효하고 ISO나 IEC의 국제표준에 맞추라고 권고하게 되었습니다. ISO나 IEC에서 만드는 표준의 중요성이 대두된 배경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교역국가에서는 표준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10년 동안 ISO 2만3,000종의 표준 중 60%에 달하는 약 1만2,000종의 표준을 가져다 쓰면서 글로벌 교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통상을 통해 ISO, IEC의 표준화가 확산되었으니 어찌 보면 WTO가 세계무역의 표준화에 기여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국가 간 자유무역을 위해 국제표준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었으니까요. 실제로 2004년에 국제무역 분석을 한 결과에 따르면 국제무역 및 통상의 80%가 표준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갈수록 표준의 힘이 세질 것입니다. 이제 표준은 통상에만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생활 자체가 표준으로 바뀌었어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입니다.

코로나19 이후 통상환경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십니까?

첫째,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통상의 종언이 예상됩니다. 앞으로 다자통상 대신 양자 형태로 바뀔 것이고 미·중 갈등은 고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둘째, 미국이나 중국처럼 내수시장이 큰 나라들, IT가 발달한 나라는 빨리 회복될 가능성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내수시장이 넓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셋째, 창의계급이 늘어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장기화되면서 생각할 시간이 늘어나면 창의적인 활동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입니다. 당장 저 같은 경우에도 지난 몇 달 동안 출장 등이 취소되면서 인공지능 등 새로운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넷째, 백 투 베이식(Back to Basic)입니다. 삶이 무엇인가, 가족이 무엇인가, 생존이 무엇인가 등 굉장히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표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표준이란 여러 사람이 공통된 이슈를 고민하여 얻은 결괏값이니까요. 산업에서도 이런 분야가 뜰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방역을 성공적으로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K-방역 모델을 만들어 국제표준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ISO에는 보건경영 등에 대한 기술위원회(Technical Committee)가 있습니다. 우선, 이 플랫폼을 활용하면서 관련 세미나 등을 개최해 K-방역모델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감염병 대응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위원회(TC)나 분과위원회(SC)를 만드는 것도 검토해 볼만 합니다.
ISO를 비롯한 국제표준화 주요 오피니언 리더들의 지지를 얻는 것도 국제표준화를 선도하는 데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ISO 총회 선거에서 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장이 ISO 이사로 선임돼 우리나라가 이사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긍정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 분야의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국제표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를 해야 합니다. 보건경영 등 기존 TC를 최대한 활용하고 K-방역 표준 심포지엄이나 개발도상국에 K-방역 표준 전수 및 사례 해설을 통해 세계인들의 K-방역에 대한 좋은 평가를 지속 확산하면서 실질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K-방역을 계기로 좀 더 다양한 분야에서 표준화 논의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국표준협회의 역할이 커질 것 같습니다. 이에 대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미 세상이 바뀌었지만 많은 기업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표준협회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표준화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키우는 일입니다. 우선 협회에서는 표준을 진흥하기 위한 진흥단 설립, 표준최고임원(CSO) 법제화도 숙제입니다. 표준을 만들지 않으면 로열티를 내고 남의 나라에서 해놓은 것을 따라야 합니다. 일례로 우리나라 선박 제조사에서 선박을 만들 때 엔진 로열티를 내륙의 산악국가인 스위스에 내고 있어요. 아이러니하죠. 선박엔진 설계 표준을 스위스가 선점했기 때문입니다.

이상진 한국표준협회 회장은 K-방역 모델 국제표준화에 대해 기존 플랫폼을 활용하거나 ‘사실상 표준화기구’를 조직하면 더 빠를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표준화와 관련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개인적인 경험이 있는지요.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밟을 때 수학 능력이 필요한 과목이 있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미국 친구들은 삼각형의 면적을 구하는 방법도 잘 모르더라고요. 처음엔 으쓱했는데 3개월쯤 지나니까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문장으로 된 것을 수식으로 추출하는 것을 못 하겠더라고요. 친구들은 삼각형 면적 내는 방식에 금방 익숙해졌는데 저는 오랫동안 문장을 수식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우리나라 설계가 안 되는 이유도 똑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를 어떻게 넣어야 우리가 원하는 결괏값을 만들어 내느냐가 결국 설계인데, 우린 그동안 남들이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에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통상의 미래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서울대학교에서 통상협상과 분쟁이라는 주제로 한 학기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WTO 상소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지경이 되었는데 관련 이론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월간 <통상>이 벌써 100호를 앞두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통상의 환경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딜리버리를 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의 책임인가, 인공지능 솔루션을 만든 사람인가, 검증을 안 한 사람인가 등 완전히 새로운 이슈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기존 규범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이런 변화들이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험적으로 관련 표준을 만들 수 있다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