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2011년 작고한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발표 때마다 잡스룩(Job’s Look)으로 불리는 특유의 패션을 선보였다. 검은색 터틀넥, 운동화, 그리고 바로 청바지다. 미국인으로서 아이폰, 아이패드를 발명한 그가 역시 미국이 발명한 청바지를 고집한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청바지 무역이야기의 첫 페이지는 17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 무려 1853년이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Necessity is the mother of invention)다.” 말을 즐겨 타는 유목민들 일상에 필요해서 바지라는 의복이 발명되고, 그 바지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벨트가 발명되었던 것이 그렇다. 바로 이 바지가 다시금 청바지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앞서 말한 ‘필요’가 큰 역할을 해냈다.
유대계 독일인 이민자 출신의 미국인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무역상이던 그에게 텐트용으로 쓸 질긴 캔버스 천 주문이 들어왔는데, 무려 이탈리아에서 수입해온 이 천을 그만 직원이 실수로 파랗게 염색해버리고 말았다. 주문은 없던 일이 되었고 창고에는 하릴없이 재고만이 가득 쌓였다. 그런데 역시 될 사람은 뭘 해도 되는가 보다. 1840년대 당시는 이른바 ‘골드러시(Gold Rush)’ 시기로 미국 북동부에서부터 이곳 서부의 황금을 캐기 위해 많은 광부가 몰리던 때였고, 이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튼튼하고 질기며 오래가는 옷이었다. 두 번째로 찾아온 기회를 이 무역상은 놓치지 않았고 이 천으로 청바지를 만들어 크게 성공했다. 이때가 1853년. 그리고 그의 이름은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 이후 그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청바지 회사 ‘리바이스(Levi’s)’의 창립자다. 남프랑스에서 생산되어 수입해온 면직물이 원료인 청바지의 영어 표현 ‘진(Jean)’은 바로 그 수입 경로였던 이탈리아 북부의 항구도시 ‘제노아(Genoa)’의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청바지가 원래는 갈색에 가까웠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광부나 선원, 농부, 카우보이들이 서부에서 입다 보니 그 지역에 자주 출몰하던 뱀이 문제였다. 뱀을 쫓기 위해 그들이 싫어하는 색을 고르다 보니 푸른색이 되었다는 것이다. 꽤나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다. 월트 디즈니와 픽사가 제작하는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Toy Story)>의 주인공인 카우보이 인형 ‘우디(Sheriff Woody)’도 청바지에 긴 갈색부츠를 신고 있다. 그리고 그의 등에 달린 끈을 잡아당기면 그는 외친다. “내 부츠에 뱀이 들어 있다(There’s a snake in my boot).”
값은 싸고 질은 오래가는 가성비 좋은 청바지는 1930년대 들어 일반인에게도 사랑을 받으며 확산되기 시작했다. 미국인이 가장 중요시하는 ‘실용성’에 부합한 이유가 클 것이다. 이 청바지가 미국인의 전유물에서 세계인의 일상복으로 전환된 계기는 다름 아닌 전쟁이다. 청바지는 미군의 유니폼으로도 사용되었는데,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유럽과 아시아로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 청바지가 들어오게 된 계기 역시 전쟁이다. 1950년대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을 통해서 우리나라에도 청바지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편 ‘공산주의’ 정부의 옛 소련은 ‘자본주의’ 미국의 상징인 청바지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는데,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하면서 이후 러시아에 청바지가 자유롭게 수출되게 되었다. 이래저래 청바지는 대립과 전쟁이라는 얄궂은 상황에서 수출과 시장확대라는 호재를 맞는 운명인가 보다. 비교적 최근에도 무역전쟁 속에 청바지가 꽉 끼었던 사례가 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과 안보를 연계해 자국 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유럽연합(EU)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관세를 부과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유럽연합(EU)은 미국을 상징하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버번 위스키와 리바이스 청바지에 맞불 관세를 부과했다. 편한 청바지가 불편했던 순간이다.
청바지 한 벌 생산에 복잡한 가치사슬이 존재한다. 노동과 기술, 수송에 관여하는 국가만 최소 12개국 이상이다. 특히 청바지의 원료 생산이나 재봉 등은 개발도상국에서 많이 이뤄지는데 이때 노동착취 등 인권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1970년대 들어 이러한 개발도상국의 섬유산업이 크게 성장하자,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선진국들은 섬유품목에 대해 수입 총량을 정하거나 국가 또는 수입업자별 할당량을 정하는 ‘수입쿼터(Import Quota)’제를 실시했다. 자유무역에 반하는 관리무역인 것인데 1974년에 이를 법으로 체결한 내용이 바로 ‘다자간 섬유협정(MFA; Multi Fibre Agreement)’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고 예외 없는 자유무역을 지향하게 되면서 ‘섬유 및 의류에 관한 협정(ATC; Agreement on Textile and Clothing)’으로 발전했고 10년간 유예를 거쳐 다행히도 2005년부터는 관리무역의 행태가 사라지게 됐다. 이제 다시 기회를 찾게 된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청바지의 원산지는 아마 이들 국가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 참고: 일곱 가지 상품으로 읽는 종횡무진 세계지리(조철기, 2017),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미야자키 마사카츠, 2018) 및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