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할슈타트,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 그리고 우리에게 우유니 사막으로 잘 알려진 볼리비아의 살라르 데 우유니. 이 지역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잘츠(Salz)’, ‘솔트(Salt)’와 ‘살라르(Salar)’다. 우리말로 ‘소금’이다. 생존에 반드시 필요해서일까.
소금 무역이야기의 첫 페이지는 아주 먼 옛날이다. 무려 원시시대다.
원시시대부터 철기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역사 속 인류는 늘 소금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염분 섭취가 생명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인데 바닷물에서부터 암염(巖鹽)까지 소금을 얻는 소재도 다양했다. 후추가 그러했고 설탕이 그러했던 것처럼 과거 소금의 값어치 역시 동서를 막론하고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었다. ‘백색의 금’으로 불리던 소금은 그 가치에 힘입어 화폐 대신 쓰이기도 했을 정도니 말이다. 고대 로마에서 병사들의 월급으로 소금이 주어지며 라틴어 ‘살라리움(Salarium)’으로 불렸는데, 이것이 이후 급여를 뜻하는 영어 ‘샐러리(Salary)’의 유래로 작용하기도 했다. 지구본을 반대로 돌려 우리나라로 와도 마찬가지다. ‘평안감사보다 소금장수’라거나 ‘소금장수 사위를 보다’라는 표현은 과거 소금의 가치를 방증하는 역사적 유산이다.
‘잘츠부르크(Salzburg)’는 오스트리아 서부의 도시인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출생지로 잘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그 일대가 바다였다가 지각 변동으로 땅이 솟아오르며 바닷물이 갇히게 되고, 이것이 다시 증발하면서 소금광산을 형성해 거대 소금산지가 되었다. 도시의 이름 역시 독일어로 소금인 ‘잘츠(Salz)’에서 파생됐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며, 최근 독일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인 분데스리가(Bundesliga) 소속 ‘라젠발스포르트 라이프치히(RasenBallsport Leipzig e.V.)’로 이적한 축구선수 황희찬의 전(前) 소속팀인 ‘FC레드불 잘츠부르크(Fußball Club Red Bull Salzburg)’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잘츠부르크와 그 주변 도시들은 이렇게 풍부한 소금을 바탕으로 일찌감치 경제적 부를 쌓아 부유한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처럼 소금으로 부흥한 도시는 유럽에 많다. 당장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Hallstatt) 역시 소금광산으로 부유해진 도시고, 13세기부터는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 공화국과 제노바 공화국의 무역 경쟁이 지중해 소금 독점권 분쟁으로 번져 1380년에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했다. 전쟁에 승리한 베네치아가 이후 100년이나 경제적으로 번창했던 것을 떠올리면 국력 공급 측면에서의 소금은 생각보다 짜지 않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소금도 명성을 얻고 있다. ‘소금의 꽃’이라는 뜻의 ‘플뢰르 드 셀(Fleur de Sel)’은 소금으로 유명한 프랑스 서부 게랑드(Guerande) 지방에서도 아주 귀한 몸값을 자랑한다. 생산량이 이 지역 전체 소금 생산량의 80분의 1에 그치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무역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에 따라 회원국들 간 ‘지리적 표시(GI; Geographical Indications)’ 보호를 인정해주고 있는 것과 같이 ‘지리적 표시 보호(IGP; Indicazione Geografica Protetta)’는 유럽의 지리적 표시 제도다. 풍토나 기후처럼 지리적 영향으로 뛰어난 품질과 특성으로 생산된 제품을 인증, 보호해 그 지리적 차별성을 인정해주기 위한 것인데 게랑드 소금이 바로 이 제도하에 보호받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 탄압은 부끄럽지만 기억되어야 할 역사다. 그중에서도 인도와 미국에 대한 소금 압박은 대표적이다. 특히 영국 사람들은 인도 사람들에게 영국이 생산한 소금만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소금을 소비할 때마다 영국에 세금을 내도록 했다. 이른바 1882년 소금법(The 1882 Salt Act)이 그 근거다. 다른 나라가 생산한 소금을 먹을 수 없게 하고 영국산에만 유리한 제도이니 지금으로 따지자면 WTO 최혜국대우(Most-Favoured-Nation Treatment) 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 할 것이고, 자국인 인도에서 스스로 생산한 소금을 소비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못하도록 했으니 수입산에 대해 국내산을 차별하는 일종의 역(逆) 내국민대우(National Treatment) 원칙 위반이다.
이처럼 무역의 기본 원칙인 비차별원칙을 일방적이고 강압적으로 위반한 영국의 입법에 대해 분노하고 이를 앞장서서 대항한 사람은 인도의 민족지도자로 당시 예순을 넘긴 ‘마하트마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였다. 1930년 그는 소금세 폐지를 주장하며 3월 12일부터 4월 6일까지 무려 26일간 총 370km 이상의 거리를 걸었다. 이는 서울과 부산 간 직선거리 이상의 긴 여정이다. 이 ‘소금행진(Salt March)’ 이후 용기를 얻은 인도 사람들은 투옥과 물리적 충돌 등을 겪으면서도 소금 판매를 시작했다. 그리고 1931년 영국은 소금법을 폐지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United States Geological Survey)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소금 생산량에서 인도는 당당히 3위를 기록했고 영국은 13위에 위치했다. 참고로 1, 2위는 각각 중국과 미국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적어도 미·중 소금전쟁은 중국이 미국에 앞서 있는 형국이다.
※ 식탁 위의 세계사(이영숙, 2012) 및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