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마로(여행작가)
사상 최장 기록을 경신하며 이어지던 여름 장마가 끝나고 마침내 가을의 초입인 9월이 찾아왔다. 아름다운 호반도시 춘천에도 계절의 변화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구봉산 카페거리에서 의암호 카누 체험까지 이어지는 춘천 드라이브를 제대로 즐기려면 마음에 커피 한 잔과 같은 여유를 챙겨 넣어야 한다. 한국판 뉴딜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게 될 데이터센터와 다음 세대를 위한 바이오산업 육성에 기반을 둔 지식산업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춘천으로 떠난다.
조각구름 떠가는 파란 하늘 아래, 호반도시 춘천의 계절이 교차하고 있다. 무려 50일 넘게 이어지던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마침내 파란 하늘과 눈부신 태양이 돌아왔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에서 벌써 가을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이른 아침, 소양강댐 아래 세월교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호수 위를 떠가는 물레길 카누에서 바라본 의암호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막국수와 닭갈비의 고장, 드라이브와 커피가 잘 어울리는 도시 춘천으로 떠나고 싶은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통해 춘천에 도착했다면, 가장 먼저 구봉산 카페거리에 들러 커피와 함께 근사한 호반도시의 풍경을 감상하자. 해발 441m 높이의 구봉산 중턱에 위치한 카페거리에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는 물론 최근 도로를 따라 들어선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독특한 전망을 자랑하고 있다.
구봉산 카페거리의 카페들은 대부분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훌륭해서 춘천 여행자들에게 ‘뷰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특히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새하얀 종탑이 놓인 산토리니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인데, 주말과 휴일에는 종탑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질 정도로 인기가 좋다. 사방이 강화유리로 둘러싸인 미니 스카이워크가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뒤 다시 철제 덱 위에 올라앉은 건물로 들어가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등 저마다 강한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구봉산 카페거리에서 이목을 끌고 있는 또 하나의 장소는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이다. 지난 2013년 6월 강원도 춘천시 동면 만천리의 구봉산 자락에 완공된 이 건물들은 국내 인터넷 기업이 구축한 최초의 데이터센터로 본관 1개동, 서버관 3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2만 대의 서버를 수용할 수 있다. 서버 12만 대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은 무려 900페타바이트(Petabyte)로 국립중앙도서관 1만 곳에 필적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게다가 친환경 건축물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네이버 데이터센터는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온실에서 식물을 재배하거나 빗물을 모아 냉각수로 활용하는 등 버려지는 폐열과 빗물까지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관리의 미래 가치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네이버는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각’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뜻을 담아 데이터센터의 명칭을 ‘각’이라고 지었다. 구글이나 아마존 등 해외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일찌감치 자체 데이터센터를 구축한 사실에 비춰보았을 때 이러한 선택은 당연한 것.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뉴딜에서 여러 기업과 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한데 모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 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부각되는 시점이기에 더욱 그렇다.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는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온라인 참석을 통해 디지털 뉴딜 관련 사업의 현황과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구봉산에서 소양강댐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춘천을 대표하는 닭갈비와 막국수 전문점이 몰려 있는 먹자거리가 펼쳐진다. 밀레니얼 세대의 기호에 맞춰 세련된 인테리어로 꾸민 힙한 식당이 있는가 하면 대를 이어 50년 가까이 영업하는 전통의 맛집들이 신북읍 천전리의 소양강 변을 따라 늘어서 있다. 1970년대 춘천 제일의 번화가였던 조양동 골목에서 시작된 춘천 닭갈비의 최신 트렌드는 ‘철판 닭갈비’가 아니라 ‘숯불 닭갈비’다. 빨갛게 달아오른 숯에 석쇠를 얹고 그 위에 굽는 양념 닭갈비는 보는 것만으로도 먹음직스러운 느낌. 고추장 양념이 가장 잘 팔리고 있지만 기호에 맞게 매운 고추장 양념이나 소금구이, 간장구이를 선택할 수도 있다.
물론 춘천의 맛을 이야기할 때 막국수도 빼놓을 수 없다. 옛날 춘천에서는 집에 손님이 오면 메밀을 방아에 찧어 가루를 낸 뒤 반죽하여 국수로 만들어 대접했다고 한다. 별다른 양념을 첨가하지도 않던 심심한 이 국수가 춘천 막국수의 원형인 것. 6·25전쟁 이후 많은 사람이 호구지책으로 막국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춘천 막국수는 본격적인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지금은 비빔과 물 막국수를 비롯해 꿩고기를 넣은 꿩 막국수, 온면 막국수, 쟁반 막국수 등 종류도 매우 다양해졌다. 천전리에서는 3대를 이어 막국수를 만들어 팔고 있는 막국수집도 있다. 구봉산 카페거리를 그냥 지나쳐왔다면 이곳에 있는 카페를 방문해보자.
이번에는 춘천의 새로운 명소 소양강 스카이워크가 있는 소양강 하류 방면으로 달려보자. 소양강 스카이워크는 소양강 처녀상 옆에 자리한 강물 위의 다리다. 전체 길이 174m 중 156m 구간의 바닥이 투명한 유리로 덮여 있어 7.5m 상공에서 강물을 발밑에 두고 걷는 아찔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입장료는 2,000원이지만 춘천사랑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상품권은 춘천시 소재 전통시장 등지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대 담수호인 소양호를 포함해 춘천호, 의암호까지 호수를 3개나 품은 도시 춘천에서 배를 타고 호수를 감상하지 못한다면 이번 여행의 진수를 놓치는 일일 것이다. 의암호 붕어섬이 눈앞에 보이는 송암스포츠타운 내에는 카누를 체험해 볼 수 있는 물레길이 있다. 물레길이란 나무로 제작한 카누를 타고 의암호 일대의 아름다운 호반 풍경을 감상하는 새로운 여행법이다. 탑승자가 노를 저어 천천히 물 위를 이동하기 때문에 여유와 낭만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본격적인 카누 체험에 앞서 약 10분간 안전교육 및 카누 조정 교육을 받아야 하며, 이후 약 1시간 동안 직접 노를 저어 의암호 물길을 따라 아름다운 호수를 감상하게 된다. 노를 저으며 이동하는 과정에서 옷이 젖을 수도 있으므로 여벌의 옷과 수건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물레길에는 스카이워크길, 붕어섬 물풀숲길, 중도샛길 등 몇 가지 코스가 있으며 그날의 기상 상황과 이용 프로그램에 따라 최적의 코스를 안내받게 된다.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간 카누가 출발하며, 주말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 가능하다.
소양강 스카이워크로 향하는 길목에는 바이오기업 전문 보육단지인 춘천바이오타운이 위치한다. 3만6,000㎡의 부지에 5개 동의 건물, 120실의 입주공간 및 아파트형 공장과 다양한 기술사업화 지원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바이오기업 지원 공간으로 리모델링을 완료한 이후 바이오산업 관련 벤처기업들의 연구와 개발, 시제품 생산 및 본 생산까지 활동 전반을 지원하고 있다. 바이오타운을 주관하고 있는 (재)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은 지난 7월 자체 개발한 ‘바이오 홍삼’을 베트남으로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