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디지털 뉴딜과 통상

조정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사진 한경DB

2020년 7월 14일, 정부는 어쩌면 향후 수십 년에 걸쳐 우리나라 미래의 경제 및 산업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바로 ‘한국판 뉴딜’ 정책이다. 현 정부의 임기 중인 2022년까지 67조 7,000억 원, 2025년까지 160조 원이 투입되는 대한민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재정투자 프로젝트다. 이 한국판 뉴딜 정책의 두 축은 대규모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구축하는 ‘디지털 뉴딜’과 친환경, 저탄소 전환을 촉진하는 ‘그린 뉴딜’로, 그중에서도 ‘디지털 뉴딜’은 2025년까지 58조 2,000억 원이 투입되어 일자리 90만3,000여 개를 창출해야 하는, 그야말로 한국판 뉴딜의 핵심 정책이다.

디지털 뉴딜의 배경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대면을 기본으로 하던 실물경제가 추락하고 있는 반면, 이미 이전부터 서서히 진행되고 있던 모든 분야에서의 비대면화는 급속히 확산되고, 모든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급격히 가속되어 이러한 혁명적인 변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ICT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 없이는 미래를 아예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디지털 뉴딜은 4대 분야에 걸쳐 추진될 예정으로 그 4대 분야와 세부 추진과제는 오른쪽과 같다.

디지털 뉴딜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민간의 여러 기업이 관리비용이 많이 들고 보안에 취약한 서버 중심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클라우드 컴퓨팅 중심의 IT 인프라로 전환하면서 비대면과 페이퍼리스(Paperless) 업무환경을 확대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국가 전체의 ICT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로 확대하는 의미를 가진다.
ICT 인프라 분야에 대규모 재정투자를 집행하는 디지털 뉴딜의 개념은, 사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해 일본, 독일, 중국 등 주요국들도 ICT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미래를 대비하고 고용을 창출하고자 하는 여러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다만, 이들 국가에서 추진한 정책들이 대부분 브로드밴드 등 기존 ICT 인프라에 대한 투자인 데 비해 우리 정부의 디지털 뉴딜은 기존 ICT 인프라 투자를 넘어 5세대(5G) 이동통신과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본격적인 데이터 경제의 구축을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주요국들의 정책보다 다음 단계로 보다 앞선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자료 : 정부부처
  1. 01 D.N.A(Data, Network, Al) 생태계 강화
    1. ① 데이터 구축·개방·활용
    2. ② 1·2·3차 전 산업 5G·AI 융합 확산
    3. ③ 5G·AI 기반 지능형 정부
    4. ④ K-사이버 방역체계 구축
  2. 02 교육 인프라 디지털 전환
    1. ⑤ 모든 초·중·고에 디지털 기반 교육 인프라 조성
    2. ⑥ 전국 대학·직업훈련기관 온라인 교육 강화
  3. 03 비대면 산업 육성
    1. ⑦ 스마트 의료 및 돌봄 인프라 구축
    2. ⑧ 중소기업 원격근무 확산
    3. ⑨ 소상공인 온라인 비즈니스 지원
  4. 04 SOC 디지털화환
    1. ⑩ 4대 분야 핵심 인프라 디지털 관리체계 구축
    2. ⑪ 도시·산단의 공간 디지털 혁신
    3. ⑫ 스마트 물류체계 구축
법제 정비로 빅테크 기업, 국가 간 통상 충돌에 대비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뉴딜은 완성 단계의 그림이 아니며, 아직 밑그림 단계다. 각종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을 실제로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제의 정비가 필수적이다. 이미 글로벌화된 산업환경과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경제적 위상을 고려하였을 때 디지털 뉴딜의 정책적 목표는 구체적인 실행과정에서 빅테크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충돌은 언제나 국가와 국가 사이의 통상문제로 귀결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이런 충돌을 여러 차례 경험한 적이 있다. 구글이 구글맵 서비스를 한국에서 서비스하기 위해 처음으로 지도 반출을 국토교통부에 신청했던 2010년 이후 구글은 지속적으로 지도 반출을 위해 노력하여 왔고, 국내 IT 대기업들도 참여한 수년간의 격론 끝에 정부는 국가공간정보 기본법에 따라 2016년 지도 반출을 최종적으로 불허한 바 있다. 여러 논쟁 끝에 구글이 2020년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오픈하면서 구글맵 서비스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었지만, 한국에 사업장이 없는 해외기업에 대한 지도 데이터의 반출 이슈는 현재 우리나라가 여러 국가 및 세계무역기구(WTO)와 진행 중인 디지털 무역협정과 관련해 다시 한 번 중요한 이슈로 불거질 수 있다.

7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
9월 3일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다.
디지털 무역 및 데이터에 관한 국제적 합의

디지털 무역 및 데이터에 관한 국제적인 합의들은 최근 WTO 단위가 아닌 몇 개국들 사이의 다자간 또는 양자 간 협정들에서 규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을 위시한 태평양 연안 11개국이 체결한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2018), 미-일 디지털무역협정(2019),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2020),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 사이에 체결된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2020), 싱가포르와 호주 사이에 체결된 디지털경제협정(SADEA, 2020) 등이다. 특히 최근에 체결된 협정일수록 데이터 조항의 자유화 수준을 높이고 있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은 디지털 무역협정을 WTO 단위에서 체결하고자 하면서 자국 빅테크 기업들의 높은 경쟁력을 감안, 데이터 조항과 관련해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한 주요 의제들은 국경 간 데이터 이동, 프라이버시 보호, 데이터 지역화 조치 및 소스코드 공개 금지 등이다. 미국은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 제한을 원칙적으로 금지할 것, 금융서비스 사업자를 포함하여 컴퓨팅 시설의 위치 제한을 금지할 것, 소프트웨어 소스코드와 소스코드에 담긴 알고리듬에 대한 이전·접근 요구를 금지할 것 등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 중국을 제외한 유럽연합(EU), 일본, 호주, 싱가포르, 브라질 등 여러 나라가 미국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협정이 합의된다면 국제적으로 데이터 이동이 보다 자유화되는 방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디지털 뉴딜을 추진하면서 세부적인 그림을 그려 나가는 과정에서도, 위와 같은 선례에 비추어 구체적인 조치들이 외국의 빅테크 기업, 나아가 다른 국가들과의 통상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또한 WTO 디지털 무역협정, 우리나라가 앞으로 체결할 여러 양자/다자간 디지털 무역협정에서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는 방향의 규범이 형성될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미리 면밀한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표 과제인 데이터 댐 추진과정에서 개방될 14만2,000개의 공공데이터에 외국 기업들이 접근권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디지털 트윈 과제에 따라 구축된 전국 3차원 지도와 정밀 도로지도에 외국 기업들이 국내기업과 동일한 조건으로 데이터를 제공받겠다고 요구할 때, 우리 정부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도 특정 데이터에 대해 차별적으로 접근을 허용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의 법률이나 조치가 WTO의 내국민대우원칙이나 최혜국대우원칙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WTO나 양자/다자간 디지털 무역협정이 위와 같은 방향으로 형성되는 경우, 빅테크 기업들에 대해 데이터 접근을 배제하는 조치는 적법한 공공정책 목적(LPPO; Legitimate Public Policy Objective) 등의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 한 위 협정 위반으로 해석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디지털 뉴딜의 핵심, 데이터 댐
자료 : 정부부처
데이터 산업 육성과 통상문제 최소화 실현 방안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디지털 뉴딜이 목적으로 하는 국내의 데이터 산업을 안전하게 육성, 발전시키면서도 디지털 무역협정의 데이터 조항을 준수해 통상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 것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지난 2월 EU집행위원회(EC)가 발표한 ‘유럽 데이터 전략(A European Strategy for Data)’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EC의 유럽 데이터 전략의 핵심은 ‘가장 매력적인 디지털 싱글 마켓’을 구축하는 것인데, 2030년까지 데이터 단일 시장을 구축해 의료, 금융, 에너지 등 각종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을 마련하고 민간에 개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 디지털 뉴딜의 ‘데이터 댐’과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이다. 단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EC는 비유럽권 기업이 EC가 정하는 규칙을 준수하는 한 이들 기업에도 얼마든지 디지털 싱글 마켓을 개방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비유럽권 기업에도 데이터를 개방함으로써 누구나 참여하고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세우겠다는 것이 이 전략의 핵심이다. 이는 개방성을 통한 경제성장에 우선순위를 두는 정책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와 같이 진행하는 경우에 우려되는 것은 이미 데이터의 수집 및 보유에서 글로벌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 중국 등의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대응이다. EU는 이러한 외국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발생할 수 있는 독과점 문제, 정보보안 문제 등은 ‘Data Act’ 등의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대응하는 반면 해당 빅테크 기업들로 하여금 수집한 데이터를 경쟁사들과 공유해야 할 의무를 지우며, 이들이 유럽에서 무분별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를 금지하겠다는 의사를 함께 보이고 있다.
미국은 국제적인 디지털 무역협정을 통해 데이터 이동의 자유화를 달성하려고 하며 EU는 이에 데이터를 개방하면서도 여러 규제를 통해 빅테크 기업에 대응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이와 반대편에서 데이터 이동을 반대하며 강한 규제 수준을 유지하려 한다. 이들 나라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디지털 뉴딜’의 깃발을 올리고, 국가의 미래를 걸고서 ‘국가 자체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달성하기 위해 길고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C 부위원장은 유럽 데이터 전략을 발표하면서 “중국은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미국은 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유럽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EU를 데이터의 자유도와 개방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만들어 미국, 중국 등의 전략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러한 EU의 대응전략은 세계경제가 데이터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는 가까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리나라도 ‘국가 자체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목적을 가지고, 규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디지털 뉴딜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국가 자체의 디지털 전환을 이루고 세계의 디지털 무역을 선도하는 국가로 당당히 자리 잡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