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규선 강원연구원 연구위원
코로나19 이후 ‘사람이 많은 곳은 위험하다’는 인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집에 머무는 시간을 늘렸고, 이에 따라 배달·배송 서비스와 드라이브 스루 등 비대면 수요가 급증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의 접촉 기피 경향은 이른바 ‘홈루덴스(Home Ludens)’ 문화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홈루덴스는 집을 뜻하는 ‘Home’과 놀이를 뜻하는 ‘Ludens’가 합쳐진 신조어로 ‘집에서 모든 것을 즐기려는 사람’을 뜻한다.
‘홈루덴스(Home Ludens)’는 새로운 조류로 확고히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뒷받침하듯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2030 밀레니얼 세대 3,83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2.3%가 본인을 ‘홈루덴스족’으로 정의하는 한편 91%가 홈루덴스족이 점차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1)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역시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5.3%가 자신이 홈루덴스족에 해당한다고 응답한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2)
이러한 홈루덴스 경향을 반영하듯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구매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인 2020년 1월부터 8월까지의 국내 온라인 쇼핑몰 거래액이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7~2019년 3개년 평균에 비해 33.6% 증가했다.
‘홈루덴스족’은 ‘갇힌’ 집안에서의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집안에서 개인의 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려는 경향이 강하다. 홈루덴스 경향의 확산은 소비와 생산 등 경제활동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로 생활 곳곳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으며, 다양한 방면에서 이들 ‘홈루덴스’족을 사로잡기 위한 콘텐츠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홈루덴스는 ‘Born to be digital’ DNA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평가되는 밀레니얼 세대의 성향과 맞물리면서 이른바 ‘홈코노미(Homeconomy)’를 정착시키고 있다.3)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가전제품과 홈퍼니싱, 홈트레이닝 수요가 급증한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이전과는 다른 다양한 수요가 창출되고 있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용량이 늘어났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최근의 방탄소년단(BTS)과 나훈아 공연 등 이른바 ‘랜선’ 공연을 통해 문화 욕구를 충족하는 대체로(代替路)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기업에서는 비대면 업무가 활성화되면서 화상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등 오피스 문화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재택근무 확산은 아침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면서 일어나고 저녁에는 여유롭게 석양을 바라보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쾌적한 교외에서의 ‘에코로지 라이프’를 촉진하고 있다.
감염병은 교육에도 영향을 미쳐 등교 수업 대신 온라인을 통한 강의가 확산되면서 ‘원격교육’이 바탕이 되는 ‘홈스쿨링’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으며, 온라인에 오프라인 교육을 접목한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이나 온라인 학습 후 오프라인에서 토론을 진행하는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위기가 초래한 홈루덴스 경향 확산은 새로운 사업 기회라는 반대급부를 제공하고 있다. 홈루덴스, 홈코노미 확산에 따른 언택트 산업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위기의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재택근무와 모바일 오피스 제도 도입 등 새로운 기업문화 확산은 홈오피스 구축 사업을 견인하고 있다. 재택근무의 필수품이 된 영상회의 솔루션 수요 폭증, OTT 사용량 증가는 안정적인 네트워크 통신망이 매우 중요함을 보여주었고, 5세대(5G)에서 나아가 6세대(6G) 네트워크 등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을 촉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화 소비자에게 온라인 공연이 새롭게 다가오면서. K팝 분야에서도 첨단기술이 동원된 새로운 형식의 콘서트 등 문화 창조성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원격교육’을 구현해주는 ‘에듀테크(EduTech)’도 주목받고 있는데, 에듀테크 시장이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기술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홈코노미의 확산은 5G에 기반을 둔 정보기술(IT) 인프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5G, 나아가 6G 네트워크와 같은 ICT의 쓰임새를 크게 넓힐 것으로 보인다. 5G로 대변되는 네트워크 시장 선점은 관련 산업과의 동반성장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관련 기업들에 대한 단선적인 지원을 넘어 국제기준을 선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에도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언택트 경쟁에서 우위에 서 있으며, 첨단 IT 인프라, 공공 및 민간에 축적된 빅데이터, AI 기술 등 언택트 경제를 뒷받침할 기반도 잘 갖추고 있다.
코로나19는 씻기 어려운 상흔과 고통을 가져온 미증유의 위기이지만,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조류를 확산시키면서 기회도 주고 있다. ‘위(危)’와 ‘기(機)’는 등을 맞댄 한 몸이다. 고통만을 안고 가는 ‘위(危)’를 잡을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기(機)’를 잡을지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1) 잡코리아·알바몬, ‘홈루덴스족 현황’, 2019.7.9~7.12 기간 조사.
2) ‘집’의 의미와 ‘홈루덴스(Home Ludens)족’, 그리고 ‘홈 인테리어’ 관련 인식조사, 2020.5.26~5.30 기간 조사.
3) 홈(Home)과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로 집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경제활동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