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정준 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 연구교수
1871년 통일 독일을 세운 비스마르크는 군비확장 중심의 철혈정책(鐵血政策) 덕에 철의 재상으로 불렸다. 참고로 재상은 우리나라의 영의정, 중국의 승상급으로 황희나 제갈량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영국의 제52대 총리 대처의 별명 역시 철의 여인(Iron Lady)이다. 강인함의 대명사인 철강 관련 역사 속 무역이야기의 첫 페이지는 원조 아이언맨, 카네기가 미국 최초의 강철공장을 설립했던 187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무려 145년 전이다.
고고학의 관점에서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고 이를 통해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까지의 시대를 말 그대로 선사(先史)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이 시기는 인류가 도구의 제작기술을 개발하고 사용했던 시점을 기준하여 다시 세 개로 구분되는데 석기와 청동기, 그리고 마지막인 철기다. 철강 무역사에 앞서 철강사(史)를 이야기하다 보니 지나치게 과거로 돌아간 감이 있지만 석기와 청동기보다 먼저가 아닌 마지막에 철기에 이르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아래에서 설명할 카네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철기가 선사시대의 마지막인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석기가 가장 이른 이유를 떠올리면 쉽다. 단순하지만 석기는 만들기가 쉽다는 게 결정적 이유다. 제련과 제철기술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은 석기가 인류의 첫 도구가 되었고, 철보다 녹는점이 낮아 청동기가 먼저 도래했던 것이다.
성(姓)이 같지만 데일 카네기와 앤드루 카네기는 다른 인물이다. 동시대의 인물이지만 전자는 인간경영과 자기계발에 대해 연구했다면 후자는 철강의 대량생산을 위해 연구했고 성공했다. 마치 자동차를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이뤄낸 미국의 자동차왕 포드처럼 말이다. 1875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에드거 톰슨 강철공장을 설립한 카네기를 철강왕으로 만든 비밀은 바로 베서머법(Bessemer Process)으로 알려진 일종의 제철기술이다. 이 기술로 당시 기준 가장 저비용으로 철을 대량생산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용광로를 이용해 철의 원료인 철광석에서 선철을 채취하면 여기에는 많은 불순물이 섞여 있다. 이는 곧 유연성과 강도에서의 약점으로 연결되는데 위 방법을 거치면 탄소 함유량이 낮아지면서 선철이 강철로 변하게 된다.
이후 기타 대형 제철공장들과 병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카네기는 1899년에 이르러 미국 철강 생산의 25% 정도를 지배하게 됐고, 이 회사가 1901년에 철강왕 카네기로부터 금융왕 모건에 의해 합병되면서 미국 최대의 철강회사인 US스틸이 탄생했다. 여담이지만 철강왕 카네기, 금융왕 모건, 발명왕 에디슨, 석유왕 록펠러, 자동차왕 포드는 모두 동시대의 인물이다. 이때의 미국은 지금 비유로 ‘사기 캐릭터’에 가깝다.
탄생 10여 년 만인 1912년, 이미 미국 조강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던 US스틸은 1929년에는 세계 철강의 절반을 생산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그림이 많이 바뀌었다. 철강 생산 1위국의 자리는 중국이 가져갔고, 일본과 인도에 이어 ‘철을 만들어 나라에 보답한다’는 제철보국(製鐵報國) 정신으로 한국의 약진도 위협적이었다. 철강 생산의 심장인 피츠버그는 산업 침체와 더불어 녹이 슬어 러스트벨트(Rust Belt)의 심장으로 전락해버렸고, 자국 철강산업을 지키기 위한 여러 입법 및 대정부 활동을 하는 미국 스틸코커스(Steel Caucus) 단체 역시 바빠졌을 터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철강산업에 구세주와 같은 존재다. 1962년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국가안보를 이유로 2018년 3월 수입 철강에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하며 미국 철강산업은 기회를 얻었지만, 2019년 2월 유럽연합(EU)마저 철강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하면서 철강무역환경은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재협상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인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은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철강과 알루미늄의 70%를 미국 포함, 북미지역에서 조달토록 했다. 철강왕 카네기는 미국 철강의 경쟁력 회복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정당당한 승부를 더 원하지 않았을까.
※ 참고: <물건으로 읽는 세계사>(미야자키 마사카츠, 2018),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사토 겐타로, 2019) 및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