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락희 기자 사진 박충렬
통상정책에 대해 청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1월 11일 서울 코엑스에서 통상정책 토론대회를 개최하고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가자들은 대한민국 통상정책을 마음껏 논하고 소통하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이번 대회의 대상인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은 한국외국어대 프랑스어과 임원묵 씨, 경제학부 윤병수 씨, Language & Trade학부 이덕 씨로 구성된 운수대통팀에 돌아갔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전공분야와 장점을 살려 통상 현안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창의적인 논거를 제시하여 토론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운수대통(運輸大通)은 어떤 팀인지 소개해주세요. 팀명에 담긴 의미도 궁금합니다.
운수대통에서 수의 한자를 전통적인 셀 수(數) 대신 나를 수(輸)를 썼어요. 단순히 운이 좋다는 의미보다는 물류의 흐름처럼 모든 것이 막힘없이 통한다는 의미를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 셋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 시사토론 동아리 ‘노곳떼’에서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입니다. 동아리 활동이 있는 매주 목요일 저녁에 모여서 같이 토론하고 서로 조언해주며 토론을 연습해왔습니다. 동아리에서 꾸준히 토론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우리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 늘 궁금했고 전국대회에서 겨뤄보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습니다. 마침 지난 9월에 통상정책 토론대회 공고가 올라왔을 때, 곧바로 서로에게 연락해서 같이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세 명의 관심사와 진로가 모두 통상과 관련되어 있어서 더욱 열정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통상 현안을 다루는 토론대회에서 정치외교학, 경제학, 무역학 등 각자의 전공을 충분히 살렸을 것 같은데요,
각자의 역할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임원묵) 덕이는 토론동아리 활동도 오래했고 대회 출전 경험도 많은 친구입니다. 부드럽게 말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아주 날카롭습니다. 무엇보다 통상을 전공하고 있어서 주제의 논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었습니다. 병수는 경제지식이 풍부한 데다 순발력이 아주 좋습니다. 준비 내용을 기반으로 논리를 구성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반박논리와 논거가 창의적이어서 상대편의 말문을 막히게 할 정도였습니다.
(윤병수) 덕이는 토론대회 유경험자답게 어떤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하고 톤앤매너를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원묵이는 정치외교학을 이중전공하고 있어서 정치외교의 관점에서 논제를 이해하고 논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이 덕) 팀워크가 아주 좋았습니다. 각자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한 결과가 우승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원묵이는 워낙 외교나 국제관계에 관심이 많은 친구라 우리가 내세우는 논거에 부합하는 이론들을 잘 찾아주었어요. 단순한 주장도 특정 이론과 접목해 설명하면 더 설득력을 갖게 되는데, 대회 내내 그 역할을 정말 잘해주었습니다.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대측이 주장할 만한 예상 논거를 추리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할 수는 없잖아요. 예상치 못한 논거의 주장을 들으면 당황하기 십상인데 병수는 그런 기색 없이 바로 맞대응을 해주었습니다. 이런 순발력 덕분에 결승전 무대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고 토론을 우리의 페이스로 끌고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결승 토론 주제가 아주 까다로웠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라는 주제였는데 어떤 논리로 토론을 펼쳤습니까?
EPN은 트럼프 정부가 추진한 반중국경제블록인데,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내용이라 처음에는 준비하는 데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더욱이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걸로 예측되는 시점에서 EPN 자체가 백지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침 16강전 주제가 ‘미·중 갈등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유효한가’였어요. EPN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주도의 다자질서라는 해석이 많다는 점에서 16강전 논제와 연결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자료를 조사하면서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동맹국과의 결속을 통해 중국을 견제할 것이라는 산업연구원의 보고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나 EPN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반중 경제블록이 형성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의 예측도 참고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안미경중과 관련해 한국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G2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근본적인 관점에서 논제에 접근했습니다. 만약 EPN이 현실화됐을 때 우리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미국, 일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으로부터 고립될 우려가 있고, 이는 경제·안보적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은 논리를 토론장에 가져갔고, 이에 대해 심사위원분들이 공감해주신 결과가 우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이 있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우승했을 때죠.(웃음) 결승전 상대팀이 워낙 강력했고 훌륭한 토론을 펼쳐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심사결과를 기다렸는데 심사위원장님이 ‘운수대통팀’을 호명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돋았어요. 결승전 진출할 때와 온라인으로 진행된 16강전 때도 기억에 남습니다. 코로나19로 대학 내 공용공간이 대부분 폐쇄되면서 온라인 토론을 진행할 공간을 찾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우리 팀 순서가 첫 번째여서 토론시간이 이른 아침에 잡혔는데 그 시간엔 학교 주변에 문을 여는 카페도 없더라고요. 인터넷 방송용 마이크도 급하게 구하느라 새벽배송을 이용해 토론 전날 가까스로 받았죠.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과정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한국을 둘러싼 통상 환경에 대한 인식도 좀 바뀌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임원묵) 머릿속에 있던 외교·통상 지식들을 그저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 지식들을 활용한 논리를 만들어내던 과정이 개인적으로 아주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동안 학교 수업에서 배운 이론과 지식들, 또 통상과 외교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며 알게 된 정보의 맥락을 토론에 논리적으로 담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처한 통상 현실에 대해 더욱 상세하게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더 넓고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윤병수) 대회를 준비하고 토론을 치르면서 한국이 어떤 통상 환경에 놓여 있는지, 어떤 지난한 과정을 통해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입장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모를 때는 단순히 양자택일적 입장을 취하거나 정치적 해석에 그치곤 했거든요. 체제가 다른 중국보다는 혈맹국가인 미국 쪽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구체적 통상 지표를 확인하고, 관련 보고서를 분석하면서 중국이 갖는 의미가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덕)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외교통상적으로 정말 복잡한 관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회를 준비하며 며칠간 밤을 꼬박 새웠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처한 이 복잡한 대외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짧은 시간 통상정책 토론대회를 준비했을 뿐인데도 대한민국의 존립이 통상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통상정책이 중요하다는 점,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위기의식을 가지고 대외 변수에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미·중 통상마찰 같은 외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경제대국의 위상을 지켜나가기 위해 고생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통상정책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방향에 대한 철학적이고 전략적인 고민’이라는,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님의 모두 말씀이 무척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각자 꿈꾸는 진로나 계획이 있을 텐데요, 이번 대회의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임원묵) 제 꿈은 대한민국의 외교관으로 국익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지정학적으로도 지경학적으로도 요충지에 있는 우리가 외세로부터 자유로운 적은 거의 없던 것 같습니다. 대외 여건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외교력을 적극 발휘해서 위험은 최소화하되 국익은 최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해야만 우리 국민도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제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는 과정에서 통상정책 토론대회에 참여한 경험은 너무나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 같습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국익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날카로운 논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그 어디서도 얻지 못할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경험을 끝이 아닌 시작으로 삼아 꿈을 향한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싶습니다.
(윤병수) 대회를 치르며 배운 통상 지식을 바탕으로 전공을 더욱 심화시켜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토론대회 경험은 단순히 수상을 떠나서 국제통상 질서와 세계의 역학관계를 깨치는 큰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다양한 전국 토론대회에 참가하여 이러한 배움의 기회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이 덕) 저는 이번 대회 참여를 계기로 ‘국익’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핵 억지력으로 무력 전쟁이 발발하지 않고 있는 오늘날, 통상분쟁이 전쟁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대회장에서 뵌 김승호 실장님이 일본의 수출규제가 부당함을 알리려 세계무역기구(WTO)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됐습니다. 통상분쟁의 최전선에서 국익을 위해 싸우시는 분들을 보며 저도 우리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해에 로스쿨에 진학할 예정인데, 법조인이 되어서 우리나라의 이익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