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민정 코트라 무역기반본부 시장정보팀 차장
2020년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은 강제적으로 사람들을 집에 머물게 만들었다. 집에 갇혀버린 사람들은 처음에는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지만 차츰 홈오피스를 꾸미고 밀키트로 요리하며 넷플릭스로 시간을 보내는 등 집콕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일이나 운동, 취미생활을 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은 더욱 다양하고 실감나는 경험의 확장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가상현실(VR) 기술이다.
가상현실(VR)은 우리의 미래를 바꿔줄 혁신기술로 주목받았지만 일상생활에 침투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필요성 측면에서 공감을 얻지 못했다. 있으면 편리하지만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하지도 않은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제한된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도록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게임을 더 실감나게 즐기게 해주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더 충실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로 VR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실제 이러한 측면에서 VR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 사례들을 하나씩 만나보자.
네덜란드의 호러스사가 출시한 VR 로봇 ‘브렌드’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세상과 연결해주기 위해 탄생했다. 아픈 아이들의 경우 오랜 병상 생활로 친구들과 소원해지고 학업에 뒤처지게 마련이다. 브렌드는 아픈 아이 대신 학교에 출석해 실시간으로 선생님, 친구들과 소통하며 수업에 참여한다. 청소년 단체인 앰비크와 협력해 학교에 갈 수 없는 학생들에게 브렌드를 통해 등교하도록 했다. 브렌드는 병원에 있는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탄생했지만 비대면이 뉴노멀이 된 시대에는 이러한 기술이 나와 세상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의 유대를 맺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실제 호러스사는 브렌드뿐 아니라 병원 안팎에서 VR을 통해 경험을 확장시켜나갈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환자의 진통제를 대신해 집중할 수 있는 VR 영상을 만들고, 자전거 시뮬레이터를 통해 실내 라이딩을 더욱 실감나게 해준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최대 장례업체인 야르든사와 협력해 VR을 활용한 장례식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서비스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에서는 코로나19로 이동 금지 기간이 길어지고 문화활동에 대한 욕구가 커지자 SNS를 중심으로 미술관 가상 투어가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은 구글 아트&컬처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투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 대표 작가의 미술품이 모여 있어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우피치미술관의 작품들을 모두 온라인으로 고해상도 감상이 가능하다. 360도 이미지 회전은 물론 ‘왕조의 전당과 16세기 베니스 작가의 전시실’은 아예 VR 공간에 실제와 똑같이 구현했다.
이와 같이 이탈리아 전역의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홈페이지에 가상 투어를 만들어 방구석 미술관 투어를 활성화하고 있다. 각 미술관의 특성을 살린 스토리를 입혀 자칫 지루하기 쉬운 가상 투어에 재미를 더하고 교육효과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이제 미술관의 역할이 공간적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에서 콘텐츠 생산과 전파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가상 유튜버인 ‘브이튜버’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2018년부터 가상 유튜버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2018년 3월 약 1,000명에 불과하던 브이튜버는 2020년 초 1만 명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일본 브이튜버 스타트업인 바루스 대표는 현재 일본의 브이튜버 시장은 100억 엔(약 1,070억 원) 규모로 향후 수년 내 애니메이션 시장과 맞먹는 500억 엔(5,351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반인도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브이튜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은 물론 브이튜버를 활용한 마케팅도 활발하다. 브이튜버의 라이브 콘서트와 일대일 팬미팅이 열리고 굿즈도 함께 팔린다. 마쓰리(축제)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브이튜버를 활용한 가상 이벤트가 일상생활 속에 더욱 침투할 것으로 보인다.
미지의 세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유대를 키우고 예술을 감상하고 나를 표현하는 것, 즉 일상을 더욱 충실히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VR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