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바이든 행정부로 바뀌면서 글로벌 법인세 질서 개편에 적극 나섰다. 여기에는 코로나19의 피해 복구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 깔려 있다. 지난 4월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140개국에 공문을 보내 다국적 기업의 법인세를 실제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서 걷고 글로벌 법인세율 하한선을 두자고 제안했다. 이 같은 제안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 유럽 지역 수출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클 전망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가장 많았고, 중국의 도전으로 초강대국 지위도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미국은 법인세 질서 개편을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계기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피해 복구는 물론 자본과 기술 및 두뇌의 유출을 막기 위한 대규모 재원 조달과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 회복을 위한 방편으로 보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붕괴를 해결하고, 쪼그라든 중산층을 살리기 위해 4조 달러 규모의 재정을 8~10년에 걸쳐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 교육 및 보육과 의료 등 ‘미국 가족 플랜’에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 ‘미국인 일자리 플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자국의 조세 질서부터 바꾸고 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1%에서 28%로, 연소득 40만 달러 이상인 경우 최고 소득세율을 37%에서 39.6%로, 100만 달러 이상의 자본이익에는 최고 세율을 20%에서 39.6%로 올리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미국 정부는 다국적 대기업의 조세 회피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 법인세 개편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 등 140개국에 공문을 보내 다국적 기업의 법인세를 실제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서 걷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 변화에 대해 디지털세 도입을 주장해온 유럽 역시 동병상련의 처지라 찬성한다. 독일 등 서구 유럽도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매우 컸기 때문에 복구를 위한 대규모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고 그만큼 세원 확보의 필요성도 크다.
주요 선진국은 코로나19 이전부터 글로벌 법인세 개편의 필요성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미국은 자국 기업의 중국 진출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중산층 일자리 감소는 물론 안보까지 위협받고 있었다. 독일은 헝가리 등 신흥국가로의 자본 유출로 제조업 강국의 지위가 흔들렸다.
미국과 서구 유럽이 주도하는 주요 20개 국가 모임인 G20은 금년 안에 글로벌 법인세 합의안을 도출하기로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물론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도 찬성하며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나라 간에 이견이 크다. 각국 간 산업구조의 차이에 따라 글로벌 법인세 질서 개편에 대한 이해관계가 다르다. 글로벌 법인세 도입은 지금까지 없던 디지털세의 도입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디지털 서비스업이 강하고 제조업이 약하며 무역적자인 미국은 자국의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줄이도록 글로벌 법인세를 강화하고 디지털세 도입에 따른 충격은 줄이고자 한다. 반면, 수출과 제조업 중심의 독일은 글로벌 법인세보다 디지털세 도입에 관심이 크다. 외국 자본과 기술을 유입해 추격 성장을 하는 신흥국은 글로벌 법인세의 강화와 디지털세 도입이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법인세 질서 개편에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갈등은 물론 선진국 내부의 갈등도 있기 때문에 최종 합의에는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드러난 글로벌 법인세 질서 개편의 핵심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다국적 기업이 법인세를 회피하는 문제를 막고, 다른 하나는 국가 간 법인세율 인하 경쟁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현재는 다국적 기업이 자회사의 소재지 국가별로 해당 국가의 법인세율에 따라 법인세를 낸다. 이에 따라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경쟁적으로 낮추었다. 게다가 다국적 기업은 물리적 사업장이 없으면 납세 의무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왔다. 특히 디지털 서비스업이 그랬다. 구글이나 넷플릭스처럼 서버 등이 한국에 없으면 한국에서 발생한 수익에 대해 한국 정부가 과세할 수 없다. 그러나 디지털세와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이 도입되면 물리적 사업장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법인세를 내야 한다. 또 특정 국가에 납부한 세금이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에 미달하면 차액을 본사가 소재한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 게다가 디지털세는 본사의 이익 중에서 통상 이익의 초과분의 일부를 해외 매출이 발생한 국가별 비율에 따라 해당 국가에 세금으로 내야 한다.
EU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독일의 취약점도 글로벌 법인세 질서 개편에서 미국의 협상력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동서독 통일 등으로 재정 수요가 크고, 연방법인세는 15%로 낮지만 지방세는 14.11%로 높다. 이러한 고율의 법인세율이 독일 기업이 헝가리(법인세율 9%) 등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게 만든 요인이 됐다. 글로벌 법인세는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국가별로 재분배되게 하지만 미국과 주요 선진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결국 미국과 주요 선진국은 세수 확대는 물론 자본과 일자리의 신흥국 유출을 억제해 이익을 보지만 신흥국은 선진국으로의 수출과 선진국의 자국 투자가 모두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수출 대기업은 주요 선진국처럼 자본과 기술의 해외 유출로 일자리가 줄었다. 반면, 내수 중소기업은 일자리 비중은 크지만 질이 떨어져 신흥국처럼 법인세 감면 등으로 수출과 외국인의 국내 직접투자를 확대해야 저성장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처지다.
디지털세 | 글로벌 법인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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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물리적 사업장 유무에 따라 법인세 납세의무 발생 ② 매출이 발생하더라도 물리적 사업장이 없으면 납세의무 없음 예) 구글의 물리적 사업장(서버 등)이 한국에 없으면 한국에서 발생한 수익에 대해 우리 정부가 과세 불가 |
현행 |
① 자회사 소재지별 법인세율에 따라 법인세 납부 ② 각국은 기업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전략적으로 법인세율을 낮게 유지할 수 있음 |
시장 소재지국 과세권 인정 - 고정 사업장이 없더라도 매출이 발생하는 국가에 법인세 납부 |
개편 논의안 |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 - 특정 국가에 납부한 법인세가 글로벌 최저한세 미달 시, 그 차액을 본사 소재지국에 납부 |
① 적용 대상(산업·기업규모 등)의 범위 *디지털 서비스 기업에서 제조업으로 적용 대상 산업 확대 검토 ② 세부 기준에 대한 국가 간 합의 여부 |
주요 쟁점 |
① 글로벌 기업 해외 법인세 부담 증가 ② 최저한세율 수준 |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법인세율 인상으로 인한 기업 부담 영향’(2020.9.3)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은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추세다. OECD 37개국 중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등 21개국이 2010년 대비 2020년 법인세율을 인하했다. 법인세율을 인상한 국가는 한국, 독일, 터키, 칠레 등을 포함한 8개국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OECD 37개국 평균 법인세율은 2010년 25.1%에서 2020년 23.5%로 낮아졌고, G7 평균도 2010년 33.1%에서 2020년 27.2%로 낮아졌다. 법인세율을 1%포인트 낮추면 기업의 설비투자가 6.3% 증가한다. 법인세 인하로 인한 세수 감소 효과는 작고 성장률 제고 효과는 크다.
세금 부과는 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세금 확대는 규정 강화를 수반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준법인세에 해당하는 각종 세금, 즉 기본소득세, 탄소세, 데이터세, 국토보유세, 로봇세 등의 도입에 대한 주장이 봇물 터지듯이 나오는데 이는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에 대한 세금 확대와 규제 강화는 일자리 감소를 의미한다.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최우선 과제는 압도적으로 일자리다. 우리나라는 기업에 대한 세금과 규제가 많아 해외직접투자(ODI; Outward Direct Investment)는 많고 외국인의 직접투자(FDI; Foreign Direct Investment)는 적어 일자리가 부족해졌다. 세계은행의 FDI 통계를 보면, 2018년 현재 한국은 FDI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0.9%로 세계 평균(1.4%)과 동아시아태평양 국가 평균(2.2%)보다 훨씬 적은 반면, 한국의 ODI는 2.4%로 세계 평균(0.9%)과 동아시아태평양 국가 평균(1.7%)보다 훨씬 많다. 기업에 대한 세금 확대와 규제 강화를 지속하면서 글로벌 법인세 질서까지 개편되면 ODI는 늘고 FDI는 줄어 일자리 부족 상황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의 한도와 디지털세 도입 내용은 국가 간 협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정부는 글로벌 법인세 질서 개편에 따른 위협 요인은 줄이고 이를 기회 요인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에 입각해 협상에 임해야 한다.
첫째, 글로벌 법인세 질서 개편의 충격을 완화하도록 디지털 서비스업부터 먼저 시행하고 단계적으로 적용 대상 산업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자동차, 가전 등 고용유발 효과가 큰 주력 소비재 제조업이 과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독일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
둘째,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의 한도를 가급적 낮추는 전략이 필요하다. OECD가 제시한 수준인 12.5%를 기준점으로 잡을 수 있겠으나 이는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도입에 따른 세수 증가의 혜택이 주요 선진국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 신흥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셋째, 글로벌 법인세 질서 개편이 되면 지금까지 기업에 제공해 온 다양한 세제혜택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이에 따른 공백을 메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해외에 진출한 기업의 재무 상태가 악화될 수 있어 기업이 해외 사업과 거래관계에서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넷째, 글로벌 법인세 개편이 다국적 대기업을 겨냥한 것이니만큼 중소기업에 대한 적용 면제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경우에도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만드는 효과가 크고, 수출과 FDI는 생산성을 높여 일자리의 질을 제고하는 효과가 커 이에 대한 대응이 요구된다.
다섯째, 명칭에 관계없이 기업에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글로벌 법인세의 범주에 포함시킬 것을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 법인세 질서 개편이 주요 선진국을 기준으로 삼아 세제가 복잡한 나라는 불리하게 작용해 기업의 세금 부담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법인세 질서 개편을 국가전략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단순히 법인세를 바꾸는 일이 아니고 산업구조와 고용 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업 생태계의 재정비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