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정준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세계경제가 위축되고 국내 경기 역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해양수산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일본과 587억 원 상당의 김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다. 흔히 ‘검은 반도체’로 불리는 김은 ‘진짜 반도체’와 같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 효자품목이다.
흔히 ‘밥도둑’ 하면 간장게장부터 떠올리지만 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1년에 소비하는 김의 양만 해도 100억 장에 달해 이를 이어 붙이면 지구를 52바퀴나 감을 수 있다고 하니, 가히 한국인의 김 사랑은 독보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김이 사로잡은 건 우리 국민의 입맛만이 아닌 모양이다. 요새는 김과 김스낵을 맛있게 먹는 해외 유튜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건강에 좋다는 슈퍼 블랙푸드로서 김이 소비되는 등 트렌드와 인식이 동시에 변화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김은 2018년 현재 우리나라 수산물 수출순위에서 2위를 기록했다. 태국이 까다로운 경쟁상대로 부상했지만 세계무역기구(WTO)가 식품안전의 국제표준으로 인정하고 있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한국 김이 아시아 표준으로 인정받으면서 자존심을 지켜냈다.
일본은 김 수출과 관련해서도 우리나라와 악연이 깊은 나라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 당시 양국은 김의 수출입 물량을 연간 250만 속으로 합의했다. 이후 10여 년간 합의대로 김 수출이 이루어졌으나 1978년 일본이 냉동망 개발에 성공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냉동망이란 육상에서 김을 채묘해 급속냉동 후 냉동고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바다에 설치하는 김발을 말한다. 냉동망 덕분에 자국 내 김 생산이 급증하자 일본 정부가 김 생산 수급 조절을 이유로 한국의 김 수입을 중단한 것이다. 이후 17년간 중단된 채로 있다가 1995년 한일 수산청장 간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일본에 대한 김 수출이 재개됐다. 합의 당시 일본은 수입할당량을 연 10%씩 늘리기로 했으나 2004년 10월, 일본은 또다시 입장을 바꾸며 2005년부터 중국산 김에 대해서도 수입쿼터 물량을 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일본 내 자국산 김 판매량은 1억200만 속으로 전체 시장의 98%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산 김 판매량은 240만 속으로 수입쿼터제로 인하여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과도 할당량을 나누어야 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국내 김 산업의 추가 피해를 우려한 우리나라는 그해 12월 일본을 WTO에 제소했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WTO 분쟁에서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WTO 분쟁해결절차에 따라 제소 후 12월과 다음 해인 2005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서울과 제네바를 오가며 협의과정을 가졌지만 양국 간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일본의 김 수입쿼터에 대한 WTO 분쟁은 우리의 요청에 따라 2005년 3월 패널이 설치됐고, 일본은 김 수입에 대한 쿼터제가 자국의 천연자원 보호를 위한 예외적인 조치에 해당한다며 방어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일본의 주장은 GATT 제11.2조에 명시되어 있는 쿼터를 위한 예외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다가 쿼터의 운영 역시 투명하지도 합리적이지도 못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동 협정에서 무역규정의 공표 및 시행에 대한 제10.3조, 수입허가절차에 관한 협정 제1조 등에도 위반된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쿼터는 철폐해야 한다는 WTO의 기본원칙인 덕분에 우리의 승소 가능성은 매우 높아지고 있었다.
분쟁이 진행 중이던 2006년 1월, 서울에서 양국 간 김 수입쿼터에 대한 고위급 실무회의가 개최됐다. 일본이 향후 10년간 단계적으로 수입쿼터를 증량해 2015년엔 1,200만 속까지 확대하기로 약속하면서 우리는 WTO 제소를 취하했다. 당사국 간 상호 합의가 이뤄지면 WTO 분쟁해결절차는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 합의를 통해 일본으로 수출할 수 있는 김의 종류를 조미김, 마른김에 더해 구운김, 자반김 등 모든 김 제품으로 확대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WTO에서의 한일전을 통해 김 수출의 양적·질적 스코어를 모두 따낸 셈이다.
참고 : <국제경제법 기본조약집>(박덕영, 2016) 및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