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경희권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부연구위원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에서 표면화됐다시피 이제 반도체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반도체 칩 없인 일상생활이나 공공인프라, 서비스나 첨단제품 생산, 무기 시스템의 운용은 불가능하다. 국가의 생존 필수품이자 포기할 수 없는 안보 자산이다. 세계의 열강들이 미래 안보·산업의 명운을 쥔 반도체를 놓고 양보 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각국은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퍼붓고 있다.
지난 4월의 1차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를 ‘21세기 편자의 못’으로 표현하고, “중국이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지배하려 한다”는 상·하원 서한 내용을 직접 읽으며 중국 견제 의도를 분명히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또한 과거 반도체를 “사람의 심장”이라 칭하며 기술 확보 및 국내 자급률 제고에 비장한 각오를 시사한 바 있다. 이제 세계는 반도체산업을 중심으로 한 각국의 주요 첨단 제조업 국제 공급망 재편 및 내재화 추세가 단순히 코로나19 사태의 교훈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시대의 국제정치를 규정하게 될 미·중 간 기술패권 문제가 기저에 잠재한 근본 이슈임이 명확해졌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산업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 인도, 일본, 호주 등 쿼드(Quad) 국가를 중심으로 5G 통신망, 바이오,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의 배타적 공급망 구축에 나섰다. 특히 중국의 취약성이 노출된 반도체 제조업에 각종 제재조치로 타격을 가하고 노골적인 기술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정상의 기술력을 지닌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부지불식간에 미·중 간 반도체 경쟁의 핵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TSMC1) 창업자 모리스 창(장중머우)과 SMIC2) 창업자 리처드 창(장루이징)은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직장 상사와 후배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두 사람 모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지만, 각자가 세운 기업이 직면한 상황의 대비는 자못 흥미롭다. TSMC는 친미 성향인 차이잉원 내각의 전폭적 지원하에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제재조치로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SMIC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차량 및 전자제품용 반도체 수급 난항에 따라 압박의 고삐가 풀어지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2019년 대비 매출은 24.8% 증가한 247억7,100만 위안(약 4조7,195억 원), 순이익은 141.5% 증가한 43억3,200만 위안(약 7,440억 원)이다. 중국의 나스닥인 커촹반(科創板) 상장으로 75억 달러(약 8조 원)를 확보하고, 선전시 지원을 받아 23억5,000만 달러(약 2조6,000억 원) 규모의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베이징, 상하이시와도 합작사 설립 계획을 추진한다.
미국과 동맹국 기업들은 5월 11일 미국반도체연합(SIAC; Semiconductors In America Coalition)을 결성, 바이든 대통령이 약속한 500억 달러(약 56조 원) 규모 연방 지원금 집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기존 미국의 반도체산업협회(SIA;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가 반도체 사업을 주력으로 영위하는 기업들로 구성된 것과는 달리, 다양한 수요 업종의 65개 거대 기업이 모였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플랫폼 기업, AT&T, 버라이즌, 시스코 등 통신기업, 허니웰과 GE 등 우주항공·방산 기업들도 가세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미디어텍, 키옥시아, 니콘 등 동북아 반도체 공급망 핵심국가인 한국·대만·일본 기업들과 ASML, 인피니언, NXP 등 유럽 기업들도 망라한다.
흥미로운 것은 ‘무한경계법(Endless Frontier Act)3)’ 통과를 위한 지지 성명 발표다. 이 법은 과거 미국이 스푸트니크 충격(Sputnik Shock)으로 기초 과학기술 역량 증진을 위해 설계·도입한 국립과학재단(NSF) 내 기술국(Directorate of Technology)을 신설하여 새로이 국립과학기술재단(NSTF; National Science and Technology Foundation)을 출범시킴은 물론 1,000억 달러(약 115조 원) 규모의 연방 연구개발(R&D) 지원자금 증액을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다. 기술국은 신규 배정된 R&D 자금을 기존 NSF의 기초과학 중심 관점에서 탈피하여 기술 사업화 및 상용화 연구에 초점을 맞추어 지원하게 된다. 인공지능(AI), 5G,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양자컴퓨팅 등을 핵심 기술 분야(Key Technology Focus Area)로 규정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미 미국 인공지능국가안보위원회(NSCAI)가 연초 발표한 최종보고서를 통해 국립기술재단(NTF; National Technology Foundation) 설립과 320억 달러(약 35조 원)의 AI 연관 첨단산업 R&D 자금 편성을 제안한 점이다. 비록 별도의 재단 출범은 아니지만, NSCAI가 지목한 8대 기술 분야가 ‘무한경계법’ 내 핵심 기술 분야에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포함되고 당초 제시한 금액의 3배 이상 자금을 제공하는 입법이 상원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15명의 NSCAI가 2019년 국방수권법(NDAA;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에 의해 주요 부처 장관 및 상·하원 주요 위원회 위원장들에 의해 수립된 점, 구글, 아마존, 오라클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수장들과 전 국방차관 등 요인들이 포함된 점을 고려하면, 미국 조야(朝野)는 일심동체(一心同體)로 글로벌 반도체 패권 장악을 위해 함께 뛰고 있다고 판단해도 좋을 듯하다.
1) TSMC: 세계에서 가장 큰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2) SMIC: 중국 본토에서 가장큰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3) 무한경계법: 미국이 과학기술을 강화하여 국제 기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마련한 국립과학재단 개혁법.
NSCAI 제시 8대 전략 첨단산업 | 무한경계법(Endless Frontier Act) 핵심 기술 영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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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AI) |
• 인공지능(AI)/머신러닝 |
• 바이오테크놀로지 |
• 바이오테크놀로지/유전학/합성생물학 |
• 로봇 및 자동화 |
• 로봇 및 자동화 |
• 첨단 제조업 |
• 첨단 제조업 |
• 반도체 |
• 반도체/고성능컴퓨팅/첨단 하드웨어 |
• 양자컴퓨팅 |
• 양자컴퓨팅/정보시스템 |
• 5G 및 첨단 네트워크 |
• 첨단 네트워크 |
• 에너지 시스템 |
• 첨단 에너지 |
• 핵심 기술 관련 소재 과학, 공학, 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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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버 보안, 데이터 저장·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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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적·인위적 재해 예방 |
미·중 양국은 물론 유럽연합(EU)까지 한국 반도체 주요 기업들에 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인텔, TSMC 등 경쟁기업들이 파운드리 신규 건설에 거액을 쏟아붓고 있다. 메모리 부문에서도 미국 마이크론의 선제적 최신 D램 및 낸드플래시(NAND Flash) 출시와 대만 난야(Nanya)의 D램 생산시설 투자 등 한국 기업들의 미래 경쟁력 위기 징후가 포착되고 있어,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격적 투자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5월 13일 ‘K-반도체 전략4)’을 통해 민간은 10년간 510조 원 규모를 투자하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제, 금융, 인프라 등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즉 미·중 간 갈등에 의해 촉발될 가능성이 높은 급격한 공급망 재편의 혼란 속에서도 압도적 기술경쟁력과 생산능력 확보를 통해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해법이다. 세 가지 측면에서 유의할 점을 짚어보았다.
첫 번째는 반도체가 경기민감형(Cyclical) 산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메모리 반도체 부문이 가격 변동 및 경기 사이클에 특히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시스템 반도체 또한 코로나19 사태에서 확인했듯 수급에 따라 가격 변동폭이 크다. 세계 각국 기업과 정부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기대하며 대대적인 투자에 나선 지금, 과거 반도체산업의 경기변동 사이클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현재 주목받고 있는 차량용 및 일반 가전용 반도체는 기술수준이 낮고 납품단가가 매우 낮아 한국의 주요 반도체기업들은 오랫동안 해당 분야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과거 매출액 성장 사이클을 고려할 때, 향후 3~5년 안에 반도체 경기 하락이 예상된다.
두 번째는 첨단반도체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 대응 및 고객사, 즉 매출처 확보다. 키워드는 패키징과 시스템온칩(SoC; System on Chip)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발맞추어 미국 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자문위원회(PCAST; President’s Council of Advisors on Science and Technology)가 제출한 ‘반도체산업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전략보고서’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 작성에는 인텔, 퀄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 글로벌파운드리 등 반도체 기업 최고위 임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현재 상보적금속산화물반도체(CMOS) 기반 고밀도집적회로(VLSI)의 기술발전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진단을 내렸다. 즉 선폭 미세화에 의한 집적도 향상이 한계에 달하여 단기적으로 패키징 기술로 성능 향상을 꾀하되 기존 실리콘의 물성 한계 극복을 위한 신물질 기반 및 연산 패러다임을 바꾸는 신개념 반도체의 연구개발을 주장한 것이다.
이 같은 미국 과학·산업계 입장은 ‘반도체지원법’에 그대로 반영되었는데, 이 법의 6장은 반도체 관련 연방 R&D 역점 분야로 패키징 및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지목하고 있다. 간단히 살펴보면 국가반도체기술센터를 설립하여 첨단 패키징 및 차세대 반도체 R&D 전담과 국가 첨단 패키징 생산 프로그램을 창설하여 첨단 후공정, 테스트, 조립 연구개발 등을 지시했다.
한편, 미국의 파운드리 주 수요사인 구글, 아마존, 애플 등 플랫폼 기업들은 이미 자체 팹리스(Fabless)를 통해 자사의 클라우드 컴퓨팅, AI 연산 등 기능에 최적화된 고유 설계도를 위탁 생산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기존에는 용도별로 고정된 폼팩터(Form-Factor) 기반의 PC·모바일·서버용 CPU와 D램 구매 위주였다고 한다면 현재는 성능과 전력효율 향상을 위해 설계에서부터 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램(RAM)을 단일 공정으로 생산하는 SoC 시장이 급속히 보편화되고 있다. 인텔의 파운드리 투자는 인텔파운드리서비스(IFS)가 담당하는데, 잠재 고객사로 이미 구글, 아마존 등을 언급한 바 있다. 이는 결국 플랫폼 기업들이 거대한 소비자 기반(Customer Base)을 바탕으로 제조업 전 분야를 종속시켜 나가는 추세가 기존 반도체 업계까지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미·중은 반도체산업을 안보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기업들의 기술경쟁력 확보 및 수주를 위한 적극적 영업 외에도 통상·외교적 차원의 노력 또한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4) K-반도체 전략: 지난 5월 13일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정책으로 2030년까지 세계 최고 반도체 강국 실현을 위한 지원내용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반도체산업의 주도권은 여전히 미국이 쥐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먼저, 반도체 가치사슬상 주된 분류인 팹리스, 파운드리, 외주패키징테스트 각 부문에서 미국의 시장점유율은 2020년 현재 각각 64%, 7%, 15%다. 이 중 첨단 메모리 반도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리고 첨단 파운드리 및 외주패키징테스트(OSAT)에서는 대만의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인텔, TSMC, 삼성의 미국 내 파운드리 투자가 완료될 시 미국의 파운드리 및 OSAT 점유율은 20% 이상 수준으로 도약할 전망이다.
현재 미국 내 첨단 파운드리 팹 신규 건설의 목표는 NSCAI 최종보고서에서 밝힌 바 3nm 이하 초미세 공정 양산이다. 이와 관련, IBM은 최근 2nm 칩 제조 기술 개발 성공을 발표한 바 있다. 일본 또한 TSMC 및 미국 파운드리 업체 납품을 위해 경제산업성 지원금을 받아 도쿄 일렉트론, 캐논, 스크린 반도체 3사가 함께 2nm 양산공정 기술 개발에 돌입했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메모리 분야에서도 미국의 입지는 상당하다. 대표적 반도체 시장조사 업체인 트렌드포스(TrendForce)와 IC 인사이트(Insights) 등에 따르면 2020년 미국 마이크론의 D램 점유율은 20%를 상회하며, 낸드플래시 시장 또한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WD)을 합하면 25% 이상이다. SK하이닉스에 인수된 인텔의 낸드사업부를 고려하면 미국의 낸드 점유율은 40%에 육박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반도체 설계 지식재산(IP), 소프트웨어, 그리고 첨단 제조장비 관련 소재·부품·장비 부문이다. 반도체 설계 관련 원천 특허 대다수는 ARM 및 인텔이 소유하고 있으며,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EDA; Electronic Design Automation) 시장은 2001년도 대규모 인수합병이 마무리된 후 미국의 시놉시스(Synopsys), 케이던스(Cadence), 멘토(Mentor) 3사가 줄곧 80%가량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며 과점 구도를 공고히 하고 있다. 또한 첨단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생산에 필요한 레이저 광원, 증폭기, 반사경 등은 미국, 일본, 유럽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다. 이 외에도 미국은 액침 불화아르곤(Immersion ArF), 원자층 식각(ALE; Atomic Layer Etching) 장비 등 첨단반도체 제조장비의 글로벌 공급망을 일본, 네덜란드 등 국가들과 연계하여 장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반도체산업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전략은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국은 막대한 정부 지원과 기업들의 노력, 그리고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기술만큼은 서방 세계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개발에 성공했던 과거 경험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독자적 반도체 생태계 구축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단시일 내 중국이 반도체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우리 반도체산업, 더 나아가 미래 첨단산업이 직면한 딜레마는 간단하게 정리된다. 신기술 표준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미국 주도의 배타적 공급망, 즉 국제 민주주의 기술동맹에 참여할 필요성이 높지만 현재 우리 소재·부품·장비 수출의 30.5%, 수입의 28.6%를 차지하는 중국과의 교역·통상 및 외교 관계상 마찰 가능성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력이 크고 깊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미·중 사이에서 견지해 온 전략적 모호성의 유지가 점점 더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며 , 불확실성이 점증하고 있어 향후 우리 반도체 공급망에 예상치 못한 충격이 가시화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우선, 글로벌 현안의 적시 대응과 새롭게 대두될 공급망 내 포지셔닝 전략 마련을 위한 최고 수준의 민관합동 컨트롤타워 마련이 시급하다. 최소한 반도체산업에서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은 추진될 전망이다. 우리와 중국 간 중간재 수급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중장기 연착륙 대책 마련은 물론, 반도체 포함 첨단산업 업종별 주요 기업과 정부 간 전략대화 채널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 NSCAI 최종보고서 및 미국 의회는 최근 중국과의 첨단산업 주도권 경쟁을 단순 경제·산업 차원을 넘어선 가치의 경쟁(Values Competition)으로 규정하고 있어 반도체산업의 글로벌 공급망(GVC) 이슈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상시 대응체계 구축이 요구된다.
또한 우리 기업들의 압도적 기술경쟁력 확보 및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 정부는 ‘K-반도체 전략’을 통해 세제, 인력, 법·제도, 인프라, 연구개발에 대한 종합 지원책을 제시했다. 다만, 미·중에 비해 기업들에 직접적으로 지원되는 자금규모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덧붙여, 주요국 수준에 상응하는 우리 기업과 정부 투자도 중요하지만, 앞서 말한 반도체산업의 경기 사이클, 첨단 기술 트렌드 대응과 주요 매출처 확보, 미국의 주도권 인정 및 공급망 재편에 일정 부분 협력 등 사안을 고려한 전략적 접근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본질 파악과 첨단산업에 대한 우리의 인식 및 대응수준의 제고가 긴요하다. 현재 점화된 반도체 세계대전은 AI 및 이를 활용하는 첨단산업 경쟁력이 미래 경제·산업의 주도권 확보 및 안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주요국들의 인식이 근본 동인(動因)이다. 반도체산업은 분명 4차 산업혁명에서 핵심 기초 품목이지만, AI, 바이오테크놀로지, 양자컴퓨팅, 첨단 네트워크, 미래 모빌리티 등 첨단산업과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서비스 시장 등 수요산업 규모를 고려하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매년 수백만 명의 인재를 양성하고, 우리나라 일 년 예산의 몇 배를 웃도는 금액을 투입하고 있다. 비단 반도체산업뿐 아니라, 우리가 현재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국가전략’ 및 산업기술 전략을 미·중 및 주요국과 비교하여 재검토하고, 재원투입·거버넌스·인력양성과 법·제도 인프라 등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 미래 우리 반도체산업의 흔들림 없는 성장을 위해서는,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견인할 AI 및 첨단산업의 국제 경쟁력 함양과 글로벌 주요 기업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향후 반도체 정책 설계에 있어서도 수요시장 확보를 보다 상위의 전략적 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