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홍조 전 주스페인 한국대사
정열의 나라로 불리는 스페인은 이베리아반도에 위치한 입헌군주국으로 국왕은 펠리페 6세이고 총리는 페드로 산체스다. 병력은 12만 명(2020년 기준)으로 2002년부터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다. 17개 자치주로 구성돼 있고 지방분권화가 잘돼 있어 지방정부의 권한이 강한 편이다. 2017년 10월 주민투표 이후 카탈루냐주의 분리독립 문제가 가장 큰 국내정치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6월 우리 정부의 스페인 국빈 방문 이후 한국과 스페인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관계가 격상됐다.
스페인은 2020년 국내총생산(GDP)이 1조2,782억 달러로 세계 14위의 경제대국이고, 1인당 명목 GDP는 2만3,773달러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연합(EU)의 4대 경제대국으로 유럽통합을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주요 경제정책은 EU 가이드라인의 틀 내에서 시행하고 있다. 스페인의 산업구조는 서비스업(67.5%), 제조업(14.6%), 건설업(5.8%), 농축수산업(2.6%)으로 구성돼 있으며 교역규모는 수출 2,987억 달러, 수입 3,139억 달러 수준이다. 한국과 스페인은 현재 비슷한 인구와 경제력을 가진 중견국으로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국제사회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스페인은 내란(1936~1939)과 프랑코 독재(1939~1975)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점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2009년 남유럽 경제위기로 5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한 스페인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긴축정책을 통해 2014년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고,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은 3% 이상의 고성장을 기록한 후 2018년에는 경제위기 이전의 상태를 회복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특히 GDP의 14%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 직격탄을 맞아 –10.8%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2021년 2분기에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9.8% 성장을 기록하면서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에서 스페인은 관광대국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관광만으로 스페인 경제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금융에서는 산탄데르(Santander)(세계 16위), BBVA(세계 42위)와 통신에서는 텔레포니카(Telefónica)(세계 8위), 에너지에서는 렙솔(Repsol)(세계 27위)이라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 있다. 스페인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40%인 재생에너지 강국이며 해외건설 수주액 2위의 건설 강국이기도 하다.
자동차는 외국투자 기업이긴 하지만 9개 기업이 16개 공장에서 연 282만 대를 생산하고 있다. 게스탐프(Gestamp), 안톨린(Antolin)과 같은 자동차 부품 기업들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계 2위의 고속철망(3,410km)을 보유하고 있으며, 탈고(Talgo), 카프(Caf)와 같은 철도차량 생산기업이 있다. 이 외에도 에어버스 수송기 분야, 나반티아(Navantia)(군함), 아마데우스(Amadeus)(세계 1위 항공·여행 IT솔루션), 인드라(Indra)(세계 항공관제시스템 시장 30% 점유) 모두 전 세계에 진출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다.
현재 스페인의 가장 큰 이슈는 코로나19로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스페인 정부는 EU가 지원하는 경제회복기금 보조금으로 친환경·디지털 경제 전환 중심의 경제재건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021년 5월에 의회를 통과한 ‘기후변화 및 에너지 전환법’은 2050년 탄소중립사회 달성을 목표로 설정하고,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을 74%로 올리고, 2040년 이후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향후 3년간 282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인데, 이 중 모빌리티에 132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이다. 특히 GDP의 11%를 차지하는 자동차산업의 조속한 전기차 생산라인 구축과 배터리 공장 건립이 시급한 과제로서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도 많다. 스페인 정부는 친환경·디지털 경제 전환을 통해 향후 3년간 연 2.5% 경제성장과 80만 개 일자리 창출을 예상하고 있다.
2020년 한국의 대(對)스페인 교역액은 42.2억 달러(수출 23억 달러, 수입 19.2억 달러)로 스페인은 한국의 30번째 교역대상국이다. 양국관계에서 최근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인적교류의 증가다. 2018년 워킹홀리데이협정 발효, 직항 증설(주 12회), 2020년 한국의 마드리드국제관광박람회(FITUR) 주빈국 참가로 인적교류가 더욱 활성화됐다. 건설·인프라 분야에서 양국 기업들의 제3국 공동진출도 주목할 만하다. 양국은 24개국에서 77건의 프로젝트(205억 달러)를 공동 수주했고, 5세대 이동통신(5G), 스타트업, 재생에너지 분야로 공동진출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스페인 신재생에너지 기업 악시오나(Acciona)가 2012년 경북 영양 풍력단지를 조성한 바 있고, 한국의 한화에너지와 한화큐셀은 스페인에서 각각 1GW, 1.2GW의 태양광발전 사업권을 확보했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스페인 정부가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기업의 참여를 타진 중에 있다. 이러한 양국관계 발전과 2020년 수교 70주년을 맞아 올 6월 문재인 대통령의 스페인 국빈 방문을 계기로 양국 정부는 공동성명을 통해 한·스페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설정했다.
스페인은 문화적 다양성과 독창성이 뛰어난 국가다.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서고트, 이슬람, 가톨릭, 스페인제국으로 이어진 오랜 역사가 다양성의 원동력이다. 이러한 다양성으로 중국,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3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국이다. 2004년 3월 알카에다의 마드리드 아토차역 테러사건 이후 스페인 정부가 이슬람에 대한 보복보다 공존을 강조하며 ‘문명의 연대’를 제안한 것도 다양성의 결과다. 스페인 사람들은 다른 선진 유럽 국가들에 비해 친절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많다. 개방적이고 열정적이며 가족 간 유대를 중시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서와 비슷하다. 마늘을 즐겨먹어 음식 메뉴를 보면 ‘알 아히요(al ajillo)’라는 말이 자주 보이는데 마늘을 올리브오일로 끓여 만든 양념이다. 한국을 잘 아는 스페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아시아의 라틴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페인에 주재했던 외국 외교관, 기업인들이 은퇴 후에 살고 싶은 나라로 스페인을 제일 많이 지목한다고 한다.
A 스페인은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짙은 국가로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관련 제도가 발달돼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계약직 직원의 근무기간 제한(6개월 이상 근무 시 정규직 의무전환), 직원 해고에 대한 막대한 법적 보상금 지급, 연간 최소 22일의 휴가 보장을 들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현지 기업은 여름(6~9월)에 단축근무 제도(중식시간 없이 6시간 연속근무)를 시행하고 있으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사업계획을 수립,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 외에 기업과 노동자 간 분쟁 중 발생할 수 있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법적 절차에 대해서도 사전에 대비할 것을 권장한다.
A 한국산 화장품이 다양한 천연 재료를 사용해 얻은 ‘내추럴 뷰티’ 이미지와 매력적인 제품 디자인 등으로 젊은 소비자의 소비욕구를 자극하면서 날로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현재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다방면에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는 한국 식품을 비롯해 소비재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더욱더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스페인 정부가 코로나19 회복 및 신성장동력 육성을 위해 ‘친환경(신재생에너지·그린수소·에너지절약·순환경제)’ 및 ‘디지털화(초고속인터넷 인프라·인공지능·빅데이터)’ 관련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어 해당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 기회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념·정치적 발언은 피하기
지난 7월 프랑코와 그의 정권을 찬미하거나 독재정권에 희생당한 이들을 모욕할 경우 최대 15만 유로(약 2억 원)의 벌금을 내는 이른바 '민주주의 기업법' 안이 승인됐다. 따라서 비즈니스 상담 시에는 이념·정치적 입장에 대한 대화를 피한다.
개인 신상에 대한 질문은 지양하기
스페인 국민은 낯선 사람들에게 친절한 편이다. 그러나 업무상으로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해 개인정보 공개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친밀감을 높인다는 의도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이나 결혼 여부, 종교 등과 같은 사적 질문을 먼저 하는 것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악수, 포옹, ‘볼키스’ 등 다양한 인사법 유념하기
스페인에서는 악수, 포옹, 도스 베소스(dos besos· 볼키스) 등의 인사법이 있다. 비즈니스 미팅 시 가장 일반적인 인사법은 악수다. 악수할 때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는 것이 좋으며, 한국처럼 몸을 숙일 필요는 없다. 포옹이나 도스 베소스는 주로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 후 사용되나, 개인의 성향에 따라 첫 만남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 스페인의 도스 베소스는 타 유럽 또는 중남미 국가와 달리 양쪽 뺨을 번갈아 맞대는 인사법으로, 입술을 뺨에 대지 않고 가볍게 ‘쪽’ 소리를 낸다. 스페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다소 어색할 수 있으나 스페인에서는 매우 보편화된 인사법이므로 거부감을 느끼는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