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미국, 중국 견제 종합세트법안인
‘미국혁신경쟁법’ 만든다

이원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위원

2018년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對)중 추가관세 부과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미·중 통상분쟁은 관세에서 시작돼 환율조작 이슈, 기술분쟁, 인적교류 축소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됐다. 이는 중국이 부상하면서 미국의 위기감이 단순히 경제분야만이 아닌 국방, 문화, 사회 등 전분야로 퍼졌다는 점, 중국 견제의 필요성을 미국 내에서 행정부뿐 아니라 상·하원을 아우르는 입법부까지 공유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이러한 인식이 공화당-민주당을 불문하고 초당적으로 확산돼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지난 6월 8일, 미국 상원은 ‘미국혁신경쟁법안(USICA: 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 of 2021)’을 가결했다. 사진은 미국 국회의사당 전경.

미·중 간 경쟁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은 중국에서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 중국이 올해 3월 2021~2025년 국가운영의 청사진을 밝힌 ‘14차 5개년 규획’ 문건에는 “외부와의 통상마찰에 적절히 대응한다”라는 구절이 역대 규획을 통틀어 처음으로 등장한다. 또한 지난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기술의 자립자강을 언급한 부분은 마치 마오쩌둥 시대의 자력갱생 경제를 떠올리게 한다.

중국 견제 패키지 법안, 미국혁신경쟁법 상원 통과

중국이 ‘5개년 규획’을 내놓았다면, 공교롭게도 미국 역시 향후 5년, 어쩌면 그 이상을 겨냥한 중국 견제 법안을 입법 중이다. 미 상원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기술·과학·연구 분야에 향후 5년간 최소 2,000억 달러를 투자하는 과학기술 진흥 및 중국 견제 패키지법인 ‘미국혁신경쟁법(USICA; United State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을 지난 6월 8일 찬성 68 대 반대 32로 통과시켰다. 상원 통과 버전을 기준으로 약 2,300쪽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 미국혁신경쟁법의 목적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미국의 과학기술 및 핵심 제조업 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향후 5년간 막대한 연방 예산을 투입해 중국과 소위 ‘초(超)격차’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부상하는 중국의 약탈적 경제관행 등 미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까지 활용해온 각종 제재는 물론, 필요할 경우 동맹국과 공동으로 더욱 강력한 대중국 제재 조치를 다양하게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미국혁신경쟁법은 일곱 가지 세부 법안으로 구성된다. 크게 보아 ‘반도체 및 통신법’, ‘무한 프런티어법’ 등은 미국의 과학기술 증진을 겨냥하고 있고, ‘전략적 경쟁법’, ‘중국도전 대응법’은 중국의 국가안보 위협에 대응한 각종 제재의 활용 및 미·중 경제의 디커플링을 꾀하는 내용이다. 또한 그간 중국과의 통상분쟁 과정에서 미국 내 피해자로 꼽히는 수입업계와 소비자의 피해를 최소화해 장기전에 대비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2021년 무역법’ 또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미국혁신경쟁법의 구성 및 주요내용
미국혁신경쟁법의 구성 및 주요내용
세부 법안명 (Division) 분량 상임위 주요 내용 중국 연관성
(Div. A) 반도체 및 통신법
CHIPS and USA Telecom Act
48p 국토안보위원회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의 기술우위 유지, 중국산 통신장비 의존 방지 ★★☆
(Div. B) 무한 프런티어법
Endless Frontier Act
642p 상무 국립과학재단(NSF) 내 기술국 신설, 연구안보 강화,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인재양성 촉진
★☆☆
(Div. C) 전략적 경쟁법
Strategic Competition Act
450p 외교위원회 중국 위협에 대비한 국제협력, 미국 가치 수호, 수출통제 강화 등 ★★★
(Div. D) 미국미래보장법
Securing America’s Future Act
167p 국토안보위원회 중국산에 대응할 Buy American 적용 강화, 사이버 안보 인력 양성 ★★☆
(Div. E) 중국도전대응법
Meeting the China Challenge Act
62p 금융위원회 중국의 인권탄압 등 행위에 대응할 기존 및 신규 제재의 적극 활용 ★★★
(Div. G) 2021년 무역법
Trade Act of 2021
850p 재무위원회 일반특혜관세(GSP) 및 미소관세(MTB) 제도 재개,
301조 추가관세 면제 재개, 강제노동/지재권 탈취제품 수입금지 등
★★★
(Div. F) 기타 (Other Matters) 135p 다수 미 고등교육기관의 공자학원 연계성 조사, 합병수수료 체계 현실화 등 ★★☆
자료: 저자 정리
첨단과학 기술 관련 연구개발 분야 주요 예산 편성안
(단위: 달러)
첨단과학 기술 관련 연구개발 분야 주요 예산 편성안
분 야 내 용 금액 (2022~2026)
NSF NSF 신설 기술혁신처 연구개발 지원 290억
NSF 기초과학 연구개발 촉진 520억
상무부 Manufacturing Extension Partnership 24억
Manufacturing USA Program 12억
지역 기술 허브 구축 사업 80억
에너지부 첨단 에너지 기술 개발 육성 169억
NASA 민간 상업용 우주탐사 프로젝트 지원 등 100억
상무부 자동차용 배터리 국내 생산 보조금 20억
백악관 내 제조업산업혁신국 신설 0.5억
흑인 대학 대상 연구개발 지원금 1억
소외지역 인터넷망 확충 지원 0.35억
차세대 이동통신 국제 표준 정립 지원 0.5억
자료: “미 상원, 미국혁신경쟁법(USICA) 가결” (코트라 워싱턴무역관, 2021.6.15) 재인용
초격차 유지하기 위한 과학기술진흥법안

‘반도체 및 통신법(CHIPS and USA Telecom Act)’은 최근의 반도체 부족 사태가 미국의 생산역량 부족에 기인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520억 달러를 미국 반도체산업에 투입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상무부를 중심으로 반도체 생산 전 공정에 걸쳐 생산시설의 신규 구축 및 확장, 현대화, 기술개발, 인재양성에 박차를 가하자는 것이다.
또한 미국 통신업계가 화웨이나 중싱통신(ZTE) 등 중국산 통신장비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공공무선공급망혁신펀드(PWSCIF)’를 조성해 미국의 무선 네트워크를 하드웨어 중심에서 오픈랜(Open Radio Access Network) 기술 기반의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개편한다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특정국가 하드웨어에 대한 종속성을 낮추겠다는 의도다.
‘무한 프런티어법(Endless Frontier Act)’은 향후 5년간 연구개발 자금 1,200억 달러를 국립과학재단(NSF), 상무부, 에너지부, 항공우주국(NASA)에 배정해 연방정부가 미국의 과학 및 기술혁신을 중장기적으로 주도하고 미국의 과학발전을 이끌어갈 이공계 인재 양성에 힘쓰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NSF는 특정 정부부처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관으로, 2020년 기준 미국 연방정부의 과학분야 연구지원 재원의 약 25%를 담당하는 곳이다. 이곳에 5년간 290억 달러를 투입해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등 첨단과학 분야의 연구를 이 재단을 통해 지원한다는 청사진이다. 2021년 이 재단의 예산이 85억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3배가 훨씬 넘어 향후 투입될 예산 규모가 전폭적인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의 과학기술을 이끌어갈 이공계 인력 양성, 적국에 미국의 연구성과가 유출되지 않게 하기 위한 연구보안부서 신설, 일선 제조업체의 역량강화를 위한 상무부의 기존 자문사업 예산을 현재의 4배로 증액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기술진흥법안은 그 자체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법안은 아니지만, 법안 곳곳에 미래 미국의 과학기술 발전 과정에서 중국으로의 기술유출 방지, 미국 내 연구기관의 중국과의 연관성 배제를 의도하는 문구가 포진해 있다. 일례로 미국 내 중국 투자기업은 상무부의 자문사업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중국발 위협에 대응하는 중국 견제 법안들

‘2021년 전략적 경쟁법(Strategic Competition Act of 2021)’은 보다 노골적인 중국 제재를 언급하는 법안이다. 중국으로 인한 국가안보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외교적 리더십 강화, 동맹과의 협력 확대 등으로 ‘미국의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에 따르면 국무부는 최근 10년간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유엔(UN) 등 국제기구 40여 곳에서의 중국 영향력과 대응책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또한 각 부처는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자국 국유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홍콩을 이용한 규제 우회행위 등 불법행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앞으로도 각종 중국 제재 및 제한조치를 활용할 것을 규정한다. 특히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자행되는 강제노동 등 인권탄압 행위에 대응해 인권탄압과 관련된 물자가 중국에 유입되지 않도록 동맹국들과 공동으로 중국 수출통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구절은 우리나라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다.
‘2021년 중국도전 대응법(Meeting the China Challenge Act of 2021)’은 주로 금융 및 국내 상품시장 분야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추진하기 위해 각종 제재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무부, 무역위원회, 재무부 등 연방정부 부처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중국 기업의 조직적인 미국 시장 교란 및 반독점법 위반행위에 대응하도록 했다. 중국 정부나 인민해방군을 배경으로 하는 미국 내 유령회사(Ghost Company)가 이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기존 법의 집행을 가속하고, 서류상으로는 미국인이 소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인이나 중국 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기업을 파악하기 위해 일선 기업의 지배구조가 바뀔 경우 이에 대한 신고의무 역시 강화된다.

미 상원은 지난 6월 8일 반도체 등 중국과 경쟁이 치열한 중점 산업기술 개발과 연구에 5년간 최소 2,000억 달러를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미국혁신경쟁법’을 찬성 68, 반대 32의 압도적 표 차로 처리한 후 기자회견을 가졌다.
미·중 통상분쟁 장기전 대비 ‘2021년 무역법’

마지막으로 ‘2021년 무역법(Trade Act of 2021)’을 보면 지금껏 트럼프 전 행정부의 밀어붙이기식 대중국 추가관세 부과로 인한 수입업계와 소비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기정사실이 되어버린 미·중 통상분쟁의 장기화에 대비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우선 지난해 말 사실상 종료된 통상법 301조에 따른 대중국 추가관세 면제신청 절차를 재정비 및 재개해 수입업계의 부담을 줄이고, 역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중단되었던 개발도상국산(産) 제품의 관세면제 제도인 일반특혜관세제도(GSP) 및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품의 수입관세가 소액일 경우 이를 면제하는 기타 수입관세 임시철폐법안(MTB; Miscellaneous Tariff Bill)도 다시 시행하고 시행기간도 늘려 중국산에 대한 대체재를 일부나마 찾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되살린다. 이 외에도 대중 추가관세 부과품목을 일부 포함한 1,400여 개 품목에 대한 수입관세를 2023년 말까지 인하 혹은 철폐해 수입업계와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신장위구르산(産) 제품뿐 아니라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수산품 등 강제노동 결합제품의 수입금지를 담당할 전담부서를 관세청(CBP)에 설치하고,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식재산권 탈취로 만들어진 제품을 공동으로 수입금지하는 내용의 협정을 동맹국과 추진케 하는 등 무역을 통한 중국 견제라는 목적 또한 빠뜨리지 않았다.

미국혁신경쟁법이 국내에 미칠 영향

미국 과학기술의 발전과 중국 견제와 관련해 온갖 내용을 다 담은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이 법은 과연 이 내용 그대로 최종 입법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보자면 다소 불투명하다. 하원에서도 미국혁신경쟁법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법안들이 속속 입법절차를 거치고 있고, 과학기술 진흥 예산의 범위와 금액, 중국 견제를 위한 여러 조치의 강도와 필요성 등을 놓고 앞으로 양원 간 치열한 토론과 조정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렇듯 이견을 좁히는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니만큼 올해 내로 이 법안이 최종 통과될 수 있을지, 또 어떤 내용이 수정 혹은 삭제, 추가될지에 대해서는 미국 현지에서도 예측이 엇갈리는 듯하다.
다만 이제는 미국 행정부뿐 아니라 의회 역시 대중국 견제의 노선에 동참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정부가 바뀌면 유야무야될 수 있는 여러 행정조치와는 달리 법은 정부가 바뀌더라도 효과가 지속된다. 그리고 미국혁신경쟁법의 최종 통과 여부와는 상관없이, 동 법에서 언급한 사항들 중 일부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 미국은 ‘전략적 경쟁법’에서 언급한 대만과의 무역협상 재개를 지난 6월 이미 실행에 옮겼고, 지난 7월 백악관이 발표한 연방정부 조달시장에서 미국산 원재료 및 부분품의 비율 강화를 꾀하는 조치 역시 미국혁신경쟁법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부분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국혁신경쟁법의 입안자들은 한국을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서 협조 및 논의, 정보 공유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 법이 최종 통과되면 앞으로 미국이 이 법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에게 중국 공동 수출통제 및 수입금지 등 통상분야에서 중국 견제의 전열에 동참할 것을 요구해올 가능성에 주의해야 한다. 또한 중국과 공급망상 직간접적으로 연결고리가 있는 우리 기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해 있을 경우, 우리 기업의 공급망이 중국 정부나 인민해방군과 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공급망을 재점검하고 관련 소명자료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