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대란의 원인은 전후관계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물류 인프라를 축소한 상황에서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은 급격한 수요 증가를 가져왔다. 물류 인프라를 초과하는 수요는 물류비 상승을 동반한 운송대란을 야기했다. 이 와중에 일부 국가는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을 강화했고, 1990년대 이후 촘촘히 연결돼 있는 전 세계 글로벌 공급망(GVC)에 균열을 가져왔다. 게다가 공급망 대란을 겪으면서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 공포에 떨고 있다.
2018년부터 격화된 미·중 패권전쟁은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GVC)’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웠다. GVC는 반도체 패권경쟁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TSMC를 보유한 대만은 전 세계 반도체의 63%를 수출하고 있다. 한국은 21% 수준이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자국 중심의 경제블록화 현상은 GVC의 취약점을 노출시켰다. 세계 각국은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국경봉쇄, 관세부여 등 보호무역을 강화했다. 이는 자동차, 산업, 통신장비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 부족 사태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전 세계적 반도체 공급 여파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2021년 매출 손해액만 2,000억 달러(23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기업은 부품 수급망을 개편하고, 대형 반도체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는 등 해법을 찾아나선 상태다. 미국도 GVC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GVC 동맹을 새롭게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것도 새로운 경제 동맹 구축작업의 일환이다.
중국 정부는 전 세계 친환경 기조에 발맞춰 지난 2020년 유엔총회 화상연설에서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각 지방 정부에 연내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할당했다.
지방 정부는 탄소 의존도를 급속도로 줄였고, 이는 중국 전역의 전력난으로 이어졌다. 일부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중국 전력난이 공급망 대란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공급망 대란의 중심인 중국에 생산거점이 있는 국내 기업들의 공장들은 실제로 운영에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17일 포스코의 스테인리스강 중국 공장은 현지 전력난의 영향으로 일부 라인의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현재 중국 현지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LG화학 등 국내 주요 기업의 공장이 운영되고 있어 전력난이 장기화될 경우 해당 공장들의 운영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을 강타한 중국발 원자재 수급난도 GVC 대란의 한 단면이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15일 요소 수출 규제에 나섰다.
요소수 주원료를 석탄에서 추출하는데, 호주로부터 석탄 반입이 어려워지자 중국 내 석탄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출 규제가 알려지자 요소수 품귀로 물류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산업용 요소수, 비료 생산용 요소까지 부족해져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우려됐다. 한국이 비용절감을 이유로 요소 생산을 중국에 의존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정부는 이후 제2의 요소수 사태를 막기 위해 요소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은 200개 경제안보 핵심품목을 선정하고 위험 상황을 사전에 판단하는 조기경보시스템(EWS)을 운영키로 했다. 언제 어디서 공급망 차질의 나비효과가 재연될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원자재나 재화의 글로벌 무역이 요구하는 물류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일시적으로 글로벌 무역이 중단되면서 기존 항공·해운 등 물류 인프라는 과잉 운영됐다. 비용절감을 위해서 물류회사는 약 2년 동안 지속적으로 인적·물적 인프라의 규모를 축소했다. 그런데 전 세계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확대와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은 글로벌 무역 수요를 빠른 속도로 회복시켰다. 문제는 지난 2년 동안 꾸준하게 감축된 물류 인프라로는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이 탓에 선적을 못해서 수출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물류비는 폭등했다. 글로벌 해운운임 지표인 발틱운임지수(BDI)는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하반기에 5,000대를 돌파했다.
물류비용은 2022년 세계경제 회복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해 9월 “최근 세계적인 문제로 급부상한 공급망 대란의 여파는 2022년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월 의장이 언급한 ‘여파’는 인플레이션이다.
공급망 문제가 지속될 경우 필요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유발시켜 경기 불황과 물가상승을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인상 카드를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이유다. 물류 인프라를 초과하는 수요는 운임을 상승시키고, 이는 상품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여기에 수요만큼 생산되지 못하는 상품의 가격은 추가로 오른다.
결국 각 나라의 물가가 상승 압력을 받는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여파로 각 나라의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로 인한 경기 반등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치면 세계경제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