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008년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를 결정했다. 이는 외교·안보 및 경제적 고려가 동시에 작동한 것이다. 21세기 들어 급부상한 중국의 영향력이 동아시아 지역에 확대되는 가운데, 당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에 매몰되어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그동안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을 배제한 채 지역 통합을 추진해나갔다.
2009년에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는 ‘동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를 외교 노선으로 채택,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흔들리는 미국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역내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TPP를 주도했다. TPP는 경제적 버팀목이었고,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로 확대하려는 구상을 추구했다. 하지만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은 TPP를 탈퇴했다. 미국의 TPP 탈퇴는 국제질서에 큰 파장을 남겼다. TPP는 미국의 탈퇴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성격 변화를 겪었고 2018년 말에 발효되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현재 직면한 상황은 단기적으로 CPTPP 복귀에 부정적이다. 코로나19가 일상 회복을 어렵게 하고 있고, 이에 따른 물가상승과 경제회복 지연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심화하고 있다. 올가을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미국 중산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즉 CPTPP가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잃게 하리라는 정치공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간선거 전까지는 섣부른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최근 미국이 언급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는 FTA는 아니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가치)동맹을 추구하는 미국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다. 과연 IPEF 구상이 CPTPP의 보완재가 될지 대체재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편 중국이 CPTPP 가입을 서두르고 있고 여타 국가들이 그 뒤를 잇고 있는 가운데 일본 등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CPTPP에 동시 가입한 상황에서 중국을 배제한 CPTPP의 운용은 현실적으로 명분이 약하며 미·일 간에 이견을 좁히기도 어려울 것이다. 결국 CPTPP가 RCEP과 달리 가입조건으로 요구하는 제도 개선이 중국의 정책적 변화를 촉구하고, 이에 대응하는 중국의 태도 변화에 따라 미국의 CPTPP 복귀 여부가 결정되리라 본다. 나아가 미국 입장이 반영된 새로운 CPTPP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990년대 세계화 시대의 지역주의는 범세계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으로 자유무역주의와 맥을 같이했다. 반면 2020년대 이 시점의 지역주의는 역외국가에 대해 배타적인 보호무역주의로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 인식은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지역주의가 미·중 패권경쟁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반중국 네트워크 구축과 중국의 대항 네트워크 구축 간 경쟁구도가 현존 국제 정치경제질서의 양상이다. 결국 미국의 복귀 여부는 CPTPP가 미국의 진영 내 네트워크화에 도움이 될지에 달려 있다.
중국과 대만은 앞다퉈 CPTPP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산업공급망에 대응해 적극적으로 지역 및 다자경제 체제를 추구하고 있다. 대만 또한 국제사회와 지역경제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미·중 전략적 경쟁과 ‘하나의 중국’ 현안은 양국의 CPTPP 가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국은 2020년 11월 개최된 제27차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CPTPP 가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임을 밝혔다. 이에 앞서 리커창 총리도 같은 해 5월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CPTPP에 대해 중국은 매우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입장임을 밝혔다. 이후 중국 당국은 CPTPP에 가입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으며, 2021년 9월 16일 뉴질랜드 무역부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 대만 또한 중국이 신청한 날로부터 6일 후인 22일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CPTPP 회원국 대부분이 대만의 주요 무역파트너로서 총무역의 24% 이상을 차지한다. 대만은 2020년에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중국의 반대로 배제된 아픈 기억이 있다. 이로 인해 야당의 책임론에 시달려온 집권 민진당과 차이잉원 총통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도 CPTPP의 가입이 중요한 상황이다.
미국은 물론 지난해까지 CPTPP 의장국을 맡아온 일본도 불공정한 무역관행, 노동 기준, 국유기업 규정 등 높은 수준의 통상규칙을 과연 중국이 수용할 수 있는지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CPTPP는 11개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가입이 승인된다. 비록 싱가포르와 칠레가 중국의 가입에 지지 입장을 밝혔지만, 미국과 일본이 시장경제체제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에 대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체결한 캐나다와 멕시코가 중국을 어떻게 평가할지도 지켜보아야 한다. 대만은 미국과 일본의 직·간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대만은 지난해 12월 국민투표를 거쳐 락토파민이 함유된 미국산 돼지고기의 수입 재개를 확인했다. 또한 일본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방침을 시사했다. 국민 건강을 외면했다는 비판까지 받으면서도 CPTPP 가입에 적극적인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며 대만의 가입에 분명한 반대를 표명했다. 회원국 한 나라의 반대만 있어도 가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만의 가입을 막으려는 중국의 외교적 대응은 대만에게 가장 어려운 난관일 수 있다. 중국과 대만의 CPTPP 가입에는 쉽지 않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 미·중 전략적 경쟁구도하에서 미국과 일본의 지지를 받는 대만의 가입 가능성은 중국에 비해 조금 높아 보인다. 하지만 대만의 가입을 막기 위한 중국의 외교적 노력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만약 중국이 먼저 가입하게 된다면 중국의 반대로 대만의 가입은 불가능해진다.
브렉시트를 단행한 영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향후 가장 중요한 시장이자 파트너로 규정하고 역내 관여를 확대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CPTPP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 CPTPP를 태평양 너머로 확장하는 첫 움직임이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대부분의 회원국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영국 역시 CPTPP 가입으로 세계 주요 시장 및 고성장 시장에서 경제적 이익 창출을 기대한다.
영국은 2021년 2월 1일 CPTPP 가입신청서를 공식적으로 제출함으로써 2018년 말 11개 국가 간 CPTPP 발효 이후 최초의 신규가입 신청국가가 되었다. 이후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6월 CPTPP 회원국들과 가입협상이 공식 개시되었고, 9월부터 영국의 CPTPP ‘규범준수 워킹그룹’이 구성되어 현재 전체 협정문(28개 챕터)에 대한 영국의 규범 수용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은 신규가입을 원하는 국가가 이미 발효된 기존 협정의 규정에 따를 것인지 여부를 합의하는 단계로, 방대한 규정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의 성격상 기본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만일 해석상 이견이 있을 경우 상당한 지연이 있을 수 있다.
CPTPP는 다자간 협상인 만큼 회원국 전체 대표단과의 협상을 타결해야 함과 동시에 개별 국가가 이의제기를 할 경우 양자 간 협상을 별도로 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두 나라 간 합의를 통해 체결되는 FTA에 비해 협상 타결까지 난이도와 시간적 불확실성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영국 정부는 CPTPP에 가입할 경우 2030년까지 영국의 해당지역 수출증가 효과가 350억 파운드(65% 증가)에 달한다고 분석하고 있으며, 특히 금융 등 전문서비스와 자동차, 위스키 등 분야의 수출경쟁력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영국은 회원국에 대해 투자자 분쟁해결 권한 유보, 전문서비스 시장접근 확대 등을 추가 요구할 수 있고, 반대로 회원국들은 치즈·와인 등 농산물 및 수산물 시장 보호 이슈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향후 협상과정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영국은 이미 2020년부터 개별 회원국들과 비공식 접촉을 지속해왔고 브렉시트를 계기로 현재까지 11개 회원국 중 말레이시아·브루나이를 제외한 9개 국가와 양자 무역협정을 개별적으로 체결하면서 CPTPP 가입을 위한 사전 포석을 진행해왔다. 실제 대부분의 국가에서 영국 가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으로, 전문가들은 영국의 CPTPP 가입협상이 대체로 무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말 CPTPP 가입방침을 결정하고 대외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이제 본격적인 아웃리치를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이 개별 회원국들과의 무역협정을 통해 CPTPP 가입준비를 설계한 것처럼 우리 역시 지난 연말 체결한 한·싱가포르 디지털 협정과 같은 새로운 무역협정을 디딤돌 삼아 CPTPP로 향한 체계적인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중국 등 CPTPP를 둘러싼 주요국의 입장을 살피면서, CPTPP 가입을 공식화하고 있다. CPTPP 참여는 수출 상대국과 품목을 다변화하고,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한다. CPTPP 가입을 통해 다자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통상환경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은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추구하는 21세기형 무역협정으로 디지털 무역과 지식재산권, 노동, 환경, 국영기업 등 새로운 통상 이슈를 포괄하고 있다. CPTPP의 경제규모는 2019년 기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2.8%(11조2,000억 달러), 인구의 6.6%(5억400만 명), 교역량의 15.2%(5조7,000억 달러)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이어 3번째로 큰 경제권이다. CPTPP는 2018년 12월 30일 공식 발효되었으며, 현재 영국·중국·대만·한국·에콰도르 등이 신규가입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는 후발 가입국으로서 국내 법령과 제도를 선제적으로 정비하고, 사회적 협의 과정을 거쳐 3~4월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CPTPP를 주도하고 있는 일본은 한국이 CPTPP 회원국으로서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 규정을 충족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 제한 등에 대해 한국의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이러한 요구사항에 더하여 과거 한·일 FTA 협상을 참고해 대(對)일본 협상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의 요구사항을 사전에 면밀히 분석, 가입에 따른 국익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양국의 경제 및 무역 관계를 심화할 수 있는 CPTPP 협상 테이블에서 정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면 작업반 구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가입협상이 시작된다. 우리보다 먼저 가입협상을 시작한 영국의 진행과정과 협상내용을 참고하면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 협상시간이 단축되고, 시행착오가 줄어들며, 돌발 이슈에 대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가입과정에서 드러날 여러 형태의 가입조건을 사전에 예측하여 가입비용을 최소화하는 협상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와 FTA를 체결하지 않은 멕시코의 양허 결과와 개방 수준을 분석한 뒤 가입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CPTPP 참여는 한·미 동맹, 미·중 갈등, 사실상의 한·일 FTA, 중국의 참여 가능성 등 고려할 요소가 많지만 조속한 가입을 통해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