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국제대학원 교수 사진한경DB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관련 논의가 국내외에서 매우 급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2월 영국의 가입신청서 제출을 시작으로 중국과 대만도 잇달아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점차 판이 커지고 있고 우리 정부도 CPTPP 가입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CPTPP 가입은 경제적 효과와 표준화된 국제규범의 혜택뿐만 아니라 국제관계 측면에서의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
영국은 지난해 2월 CPTPP에 가입신청서를 제출, 6월에 협상 개시가 선언된 이후 9월부터 CPTPP의 11개 회원국과 본격적으로 협상을 개시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중순 중국 상무부가 기존 회원국과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CPTPP 가입신청서를 제출했고, 이에 대만 역시 사전 협의 없이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면서 CPTPP 판이 점차 커지고 있다. 더불어, 12월 남미의 에콰도르 역시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면서 2022년 1월 현재 공식적으로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국가는 4개국에 이른다. 이렇게 CPTPP의 판이 커지자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고민이 시작됐고, 외신 보도에 따르면 태국 정부 역시 CPTPP 가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발표했다.
CPTPP의 역사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루나이·칠레·싱가포르·뉴질랜드 등 4개국은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소위 ‘P4’라는 통상협정을 발효했다. 이러한 소규모 통상협정의 판을 크게 만든 것이 미국 오바마 행정부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 미국의 패권 국가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고 인식한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 중심 전략(Pivot to Asia)’을 수립하고, 중국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호주·베트남·페루 등을 초청해 ‘P8’을 구성했다. 그 이후 참여 범위를 더욱 넓혀 말레이시아·캐나다·멕시코·일본이 포함된 총 12개국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미국의 TPP 가입철회가 선언됐고, 미국을 제외한 11개국이 지난 2018년 3월에 출범시킨 것이 CPTPP다.
이후 미국에선 민주당의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자 미국이 언젠가는 CPTPP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국제통상 전문가와 정책담당자 사이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물론 코로나19 사태의 악화, 인플레이션 등 미국 국내 상황을 볼 때 미국이 CPTPP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고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의회로부터 무역촉진권한(TPA)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그럴 계획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중국 견제에 미국과 동조하던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고 CPTPP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새로운 통상의 기회를 찾아 아시아 지역으로 폭넓은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 중국과 대만의 가입신청서 제출로 상황은 또다시 급변하기 시작한다. 중국이 의도하는 바는 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 무역규범을 세우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미국과 동맹국의 중국 견제 의도를 사전에 무력화하는 것이다. 사실 중국의 CPTPP 가입신청서 제출 의도에 대해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CPTPP 가입을 준비하라는 명이 이미 2년 전에 내려져 중국 정부는 CPTPP 가입 이후 중국의 경제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어느 정도 진행했기에, 가입 의도의 진정성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는 중국이 정말 CPTPP에 가입하기 위해서 가입신청을 했다고 보기보다는 미국과 동맹국을 곤궁에 빠뜨리기 위한 전략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심지어, 일부 중국 학자들 역시 중국의 CPTPP 가입신청이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었음을 강조한다. 또한 대만의 기습적인 가입신청서 제출에 대해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 양안 관계가 급속히 악화돼 CPTPP를 둘러싼 국제정치 역학관계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한 실정이다.
그럼, 과연 중국이 CPTPP 가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다. 먼저, 신규 신청국가가 CPTPP 가입협상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기존 회원국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영국의 경우 기존 회원국의 반발 없이 가입신청에서 가입협상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문제가 간단치 않다. 비록 미국이 CPTPP 회원국은 아니지만, CPTPP 회원국이 미국과 맺고 있는 다른 자유무역협정(FTA)이 중국의 장애물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체결했다. 동 협정에 따르면 USMCA 회원국이 비시장경제(Non-Market Economy)와 FTA를 체결하면 다른 회원국이 USMCA를 종료시킬 수 있다. 즉 CPTPP 회원국인 캐나다와 멕시코가 중국의 가입을 허용할 경우 미국은 USMCA를 파기할 수 있다. 현재 북미 지역의 공급망, 경제협력 수준, 정치적 역학관계를 볼 때 USMCA가 파기된다면 북미 지역 경제는 공멸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따라서 캐나다와 멕시코는 중국의 CPTPP 가입을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미국을 대신해 중국과 격렬히 싸우고 있는 호주 역시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 없다. 뉴질랜드와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이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중심으로 기존 회원국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지만, 최소한 5개국이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CPTPP의 높은 규범 수준을 과연 중국이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일부 회원국의 우려가 존재한다. 이에 대해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시로 CPTPP 규범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중국의 제도개혁 방안을 가입신청서에 포함했다. 그러나 CPTPP의 공기업, 환경 관련 규정, 추가적인 시장개방 등을 중국이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회원국이 많다.
그럼, 한국이 CPTPP에 가입하게 되면 어떠한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까? 아직 국책연구기관의 공식적인 경제적 효과 분석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일부 민감산업의 피해에도 전체적인 경제적 효과는 긍정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포함된 TPP 가입의 경제적 효과(2014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추정치)는 10년 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1.7∼1.8% 증가로 예측됐다. 한국이 불참할 경우엔 실질
GDP가 0.12%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CPTPP이고 그 이후 상황이 변화한 부분이 있어 당시의 추정치를 현재 상황에 적용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이 존재함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은 멕시코를 제외한 CPTPP 회원국과 FTA를 체결했다. 직접적으로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의 경우 2월에 발효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상호 83% 수준(품목 수 기준)의 시장개방을 허용한 상태여서 CPTPP 가입협상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시장개방 수준이 결정될 것이다. 한국의 CPTPP 가입으로 대(對)일본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석유제품·화학제품·수산물·비철금속 등일
것으로 전망된다.1) 석유제품은 이미 일본 수입시장에서 한국산의 점유율이 60% 이상이기 때문에 관세절감 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되며, 2.8∼4.8%의 관세가 부과되는 플라스틱 제품의 경우 일본의 CPTPP 양허안에 따르면 관세가 즉시 철폐되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농산물은 일본 수입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산 파프리카와 기타 마늘가루에 대한
각각의 관세율 3%와 9%가 즉시 철폐될 경우 관세절감 효과가 예상되며, 눈다랑어·황다랑어 등 수산물은 관세가 8년에 걸쳐 균등 철폐될 경우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며 전복 역시 수입시장 점유율이 90%를 초과하고 있기 때문에 7%의 관세가 11년에 걸쳐 철폐될 경우 관세절감 효과가 예상된다. 특히 섬유 및 의류의 경우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섬유기업들이 누적 원산지 조항을 활용해 한국산 섬유 및 직물로
생산한 의류를 일본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반해 일본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고려할 때 한국 자동차업계의 우려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동차산업 전체가 세계적으로 전기차·수소차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어 내연 자동차의 생산과 관세 장벽보다는 미래 자동차의 기술력이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에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기술력을 높이고 지속적인 혁신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한국과 어떠한 형태의 FTA도 체결하지 않은 멕시코는 양국 간 경쟁력을 고려한다면 한국 경제에 많은 도움을 가져다줄 상대다. 특히 자동차 부품, 중소형 승용차, 타이어, 플라스틱 제품, 전기기기, 비철금속 제품 등에서 수출 증가 또는 관세절감 효과가 예상된다.
또한 CPTPP의 상대적으로 높은 시장개방 수준을 고려할 때 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기존 FTA 회원국에 추가적인 시장개방을 허용할 수도 있어 농업 분야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의 피해는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이 현재 CPTPP 회원국으로부터 주로 수입하는 소고기·돼지고기·밀·보리 등은 이미 체결된 기존 FTA로 인해 대부분 관세가 단계적으로 인하되거나 철폐되고 있다. 소고기에 적용되는 40%의 기준 관세는
기존 FTA를 통해 호주산·캐나다산·뉴질랜드산의 경우 15년 동안 단계적으로 관세가 철폐되며, 긴급수입제한조치(ASG)가 적용된다. 돼지고기는 CPTPP 회원국의 경우 칠레와 캐나다에서 주로 수입되며, 냉장과 냉동 돼지고기에 각각 적용되는 22.5%, 25.0%의 관세율은 해당 국가와의 양자 간 FTA를 통해 5∼10년 동안 단계적으로 철폐된다.2) CPTPP 회원국 중 호주·캐나다 등에서
주로 수입되는 밀의 경우, 세번(Tariff Lines)에 따라 양허 제외, 3∼15년 관세철폐, 관세할당(TRQ), 긴급수입제한 등이 적용된다. 다만, CPTPP 가입에 따라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SPS)가 완화될 경우 신규 품목의 수입확대에 따른 파급영향이 클 수 있어 한국 정부는 관련 양허 협상에서 전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1) 「한국의 CPTPP 참여에 따른 영향 분석 및 시사점」 (한국무역협회, 2018)
2) 「CPTPP 농축산 분야 양허 대응과제」 (대한상공회의소, 2021)
규범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 한국이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서 체결하고 있는 다양한 FTA가 CPTPP의 제도와 규범을 통해 공급망을 확대·심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CPTPP는 한국이 체결한 FTA와는 달리 완전누적 원산지 규정, 위생 및 SPS에서의 수입국 의무 강화, 국영기업의 상업적 고려 및 비차별 대우 의무, 환경 분야의 과잉어획 상태의 어족 자원에 악영향을 미치는 보조금 금지
등 새로운 통상규범을 도입하고 있다.
FTA 역사상 포괄적인 디지털 통상 규범을 최초로 수립한 것으로 평가받는 CPTPP에 한국이 가입한다면, 디지털 통상 부문에서 한국이 이미 체결한 FTA보다 다양한 규범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단순히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을 보장하는 약속을 넘어 개인정보보호, 컴퓨터 설비 현지화, 사이버 보안, 소스코드 등 새로운 현실과 기술을 반영하는 조항들이 CPTPP에 포함되어 디지털 통상 규범의 표준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판단된다. 디지털 통상의 국가별 규범이 단절화(Fragmentation)되는 환경 속에서, 관련 기업으로서는 CPTPP 가입을 통해 과거보다 표준화된 국제규범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 CPTPP 가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시장개방과 통상규범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민간 부문의 피해 역시 존재할 수 있으나, 이는 궁극적으로 CPTPP 가입 협상의 결과에 좌우된다. 협상을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입신청을 포기하는 것보다 일단 신청 후 국익 우선의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CPTPP는 경제적 효과 외에도 국제관계 측면에서의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CPTPP의 역사를 볼 때, CPTPP는 중국을 경제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출범했다. 그러나 이러한 CPTPP에 중국이 가입을 신청한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입을 신청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기존 회원국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판이 커지는
CPTPP에 가입해 동아시아의 통상질서 확립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이 가입신청 후 협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CPTPP의 기존 회원국으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한국 정부는 대부분의 회원국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현재 가입협상 중인 영국까지 한국의 CPTPP 가입을 환영하는 상황이다. 일본은 한국의 가입신청 문제를 한일관계, 특히 후쿠시마 수산물 검역 조치 등과 연계할 것으로 보인다. 악화된 한일관계가 전략적 가치가 높은 CPTPP 가입문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또한, 한국으로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대만이 CPTPP에 가입하고 한국은 가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과 대만은 여러 산업에서 경쟁관계다. 그동안 국제통상질서에서 제외됐던 대만으로서는 CPTPP에 가입할 경우 날개를 달게 된다. CPTPP 가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대만 정부는 과학적 근거를 전제로 일본 후쿠시마산 식품을 수입할 방침임을 시사한 바 있다. 특히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대만이 CPTPP를
매개체로 일본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한다면, 한국 첨단산업의 미래에 먹구름이 낄 수 있다.
2022년 한국의 국제통상전략은 CPTPP와 더불어 미국이 주도할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를 병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출범 이후 대중 견제 전략에 있어 변죽만 울리던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좀 더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노동·인권·환경 등 새로운 이슈를 통상문제와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말 온라인으로 개최된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IPEF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구체적인 협의체를 언급한 순간이다. 그 이후 11월 중순,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과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한국을 차례로 순방하면서 본격적인 논의를 정부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공급망, 디지털 통상, 반도체 등 다양한 영역을 중심으로 올 상반기에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 행정부는 이러한 경제프레임워크의 추진이 중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으나, 이를 그대로 믿는 전문가는 없다. 왜냐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통상질서 상황이 매우 급변하고 있고 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 동맹국을 중심으로 결성된 CPTPP에 중국과 대만이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이 지역의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IPEF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CPTPP 가입을 신청해 이를 동시에 추진하는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