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정준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도 그렇지만 우리 주변엔 각종 질병이 끊이질 않는다. 언제부터 풍토병이었는지도 모를 독감은 물론,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그리고 꼭 인간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더라도 조류독감(AI),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도 낯설지 않은 것이 우리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광우병은 우리 통상사(史)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2003년 미국 광우병 의심 사태 발생으로 취했던 우리 정부의 수입금지 조치가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연계되면서 2008년 광화문 촛불시위가 일어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쇠고기를 좋아하는 우리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던 쇠고기와 관련된 기억이다. 미국과의 쇠고기 전쟁이 워낙 뜨겁다 보니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또 하나의 ‘육전(肉戰)’이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제도에 회부됐던 사례이니 전쟁 대신 분쟁으로 명명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도 같다. 바로 2009년 한·캐나다 쇠고기 분쟁(DS391)이다.
2003년 12월, 미국 워싱턴주에서 광우병 의심 사태가 있었다. 이보다 7개월여 앞선 5월에 캐나다에서도 유사 상황이 있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은 미국에 대응한 것과 당연히 다르지 않았다. 캐나다산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을 수입 금지했다. 반면 우리의 금수조치에 대한 캐나다의 대응방식은 미국과는 달랐다. 미국은 한·미 FTA 협상과 연계한 양자 방식의 해결을 모색한 반면 캐나다는 ‘WTO 제소’라는 다자 방식의 대응카드를 꺼내들었다. 캐나다가 2007년 세계동물보건기구(OIE; Office International des Epizooties)를 통해 ‘광우병 위험통제국가’로 공인받은 바 있어 본 사안을 WTO 분쟁으로 회부할 경우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이 기저에 깔려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2009년 4월 캐나다는 우리나라를 WTO에 공식 제소하기에 이른다.
캐나다는 2007년 5월 OIE의 인정과 함께 우리에게 자국산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 금수조치 해제를 요청한 바 있으나 가시적인 성과 도출이 지지부진하자 우리나라를 제소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광우병 의심 사례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며 ‘질병 방어’에 더 방점을 찍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수입 쇠고기의 연령을 엄격히 제한하고 수입 재개에 앞서 위생조건 합의, 국회 심의 등의 기준을 뒀다. 향후 캐나다산 쇠고기에서 광우병이 재발하면 영구 수입 금지도 가능하게 했다.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는 이러한 조치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캐나다는 WTO에 최혜국대우와 내국민대우 등 비차별원칙 위반과 수량제한 철폐에 대한 위반 소지 등을 내세웠다. 금수조치에 대한 과학적 근거, 그리고 수입금지 조치가 필요 이상으로 무역제한적인 위장적 차별 조치는 아닌지 등이 쟁점이었다. 쇠고기 금수조치를 활용한 ‘질병 방어’ 대신 ‘질병 관리’와 함께 하는 수입 재개를 위해 분쟁 진행 과정에서 2011년 6월 우리나라는 캐나다와 수입위생조건에 합의하고 수입을 허용하기로 하면서 본 분쟁은 2012년 6월 상호합의로 마무리했다.
WTO는 무역장벽을 지양하기 때문에 질병을 이유로 한 무역제한조치라 하더라도 가급적 국제 기준을 따르고 엄격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질병을 무조건적으로 방어하는 대신에 관리하면서 자유무역 정신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물론 질병 자체가 주는 공포심과 위험성으로 그 대응엔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질병에 대한 방어와 관리 모두가 중요함을 알려준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자료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금지조치 WTO/SPS 분쟁해결사례 고찰」(법제처 세계법제 정보센터), 「함께하는 FTA(통권 65호)」(2017.10) 및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