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께서 원하신다(Deus le volt).” 이 한마디에 자연스럽게 신이 이끄는 전쟁이 시작됐다. 겉으로는 십자군 전쟁이 종교적·정신적·감성적인 것으로 촉발돼 보인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을 따져보면 그 배경엔 경제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는 법. 중세 유럽인들이 그처럼 대외 공격·팽창의 목소리에 쉽게 감응하고 그런 공격적인 움직임이 오래 지속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글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중기과학부 부장
십자군 원정에 따른 대규모 병력 이동은 지중해 지역에서 활약하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교역망을 더욱 원활하게 작동케 하는 효과도 있었다. 당시 지중해 동부 지역에선 향신료와 비단, 상아, 유리 등 사치품을 중심으로 한 상업 교역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이들 상업망의 상당 부분은 아말피와 나폴리, 살레르노, 바리, 피사, 제노바, 베네치아 등이 담당하고 있었다.
이슬람 세력의 흥기로 이탈리아 상인들의 주도권이 위협받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십자군 운동이 불거지면서 이탈리아 상인들은 외부 위협을 극복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1096년 1차 십자군이 결성되자 제노바의 상선들은 십자군과 성직자들을 성지로 실어 날랐다. 그리고 곧이어 각종 군사 보급품을 안티오크 지역에 공급하면서 무역특권까지 요구했다.
당시 아말피와 베네치아, 제노바, 팔레르모 같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 이집트, 비잔티움 제국은 노예와 철, 목재, 비단, 명반(明礬), 자주색 옷감과 염료 등의 물품을 두고 일종의 삼각무역을 시행 중이었는데 십자군 원정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 큰 힘이 됐다. 노예교역과 해적질, 성유물 약탈 등은 수익이 많이 남는 사업이었고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이런 알짜 사업을 놓치지 않았다.
11세기가 되면서 베네치아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부터 비잔티움 및 동지중해에서의 비잔티움 식민지들과 독점적으로 교역할 특권을 얻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에 따라 안티오크와 타르수스, 에페수스, 헤라클리온, 아드리아노폴리스, 살로니카(현 테살로니키), 아테네, 코르푸 등 레반트 지역에서 독점 교역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품교역 외에도 이탈리아 상인은 십자군을 파견하는 왕과 제후를 고객으로 삼아 재력과 신용을 기반으로 돈을 빌려주면서 금융업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은행과 신용대출, 이자 등을 다루는 금융산업이 발전했다. 14세기가 되면 제노바를 중심으로 복식부기도 등장하게 된다. 이처럼 지중해 지역에서의 활발한 교역은 유럽 전역의 상업적 움직임을 자극했다. 샹파뉴 정기시와 같은 프랑스 남부 지역의 상업활동이 두드러졌고, 멀리 북유럽 지역에서도 한자동맹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정치적·군사적 측면에선 십자군은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그들의 칼이 닿는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쳐서 쓰러뜨렸다”(한스 에버하르트 마이어 전 독일 킬대학 교수)는 평을 들으면서 ‘유럽과 아랍 문명권 간 지긋지긋한 피의 대립관계의 시작’(스티븐 런시맨 전 옥스퍼드대 교수) 역할을 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당시 뒤처졌던 유럽이 선진 이슬람 문명을 접하면서 얻은 이익이 컸다.
‘신께서 원하신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이후 세계 역사의 향방과 경제발전에 십자군 원정이 큰 역할을 한 것만은 명확하다. 비록 칼과 십자가를 들고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이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