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MC12)가 지난 6월 17일 엿새간의 일정을 뒤로하고 막을 내렸다. MC12는 각료회의 결과를 종합한 결과문서와 함께 3개의 각료선언, 6개의 각료결정으로 구성된 ‘제네바 패키지’를 도출했다. 특히 21년간 더디게 협상을 거듭하며 회원국 간 이견을 둘러싸고 공전을 거듭하던 수산보조금 협상이 타결됐다. 또한 WTO 개혁과 관련해 2024년까지 완전하고 제대로 작동하는 분쟁해결제도를 재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명시적으로 공표해 다자무역체제의 입법 및 사법 기능의 부활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글 이효영 국립외교원 부교수 사진WTO 홈페이지
이번 WTO 각료회의(Ministerial Conference)에서 도출한 성과가 과연 다자무역체제의 진정한 ‘기능 회복’을 의미하는지, 또는 단순한 ‘명맥 유지’를 의미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존재한다. 그동안 급변해온 통상환경을 반영하는 새로운 규범의 수립은 양자 또는 지역 무역협정을 통해 조금씩 진전돼왔는데, 협정 참여국의 개발수준과 시장개방 여력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와 수준으로 규범이 수립돼왔다.
특히 오늘날 더욱 진영화되고 있는 국제경제 질서와 규범 형성 움직임에 따라 최근 체결되고 있는 지역 무역협정으로부터 많은 국가가 배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다자무역협정의 형태로 타결된 이번 합의 내용은 파편화돼 있는 규범이 아닌 160여 개국의 WTO 회원국 모두에 적용되는 규범이므로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에도 구속력 있게 적용될 수 있다. 반면, 선진국과 개도국 회원국 간 이견이 매우 첨예한 분야에 대한 합의는 결국 이루지 못해 부분적으로만 내용이 타결됐으므로 다자무역협정으로서 실질적 효과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를 자제하고 있다.
MC12의 성과를 종합한 결과문서(MC12 outcome document)는 우선 WTO를 명실상부한 다자무역체제의 핵심(core)으로 인정하는 문구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11차 각료회의 당시에는 WTO를 다자무역체제의 중심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 유지로 동 문구가 최종 각료선언문에서 삭제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MC12 결과문서는 글로벌 경제의 회복과 성장, 빈곤 퇴치 및 지속 가능한 개발 등 글로벌 과제 대응을 위해 국제무역과 WTO의 중대한 역할 및 적실성(relevance)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이 외에도 결과문서는 개도국 및 최빈개도국 회원국을 위한 특별대우(SDT)1)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개도국을 위한 무역원활화, 무역원조, 서비스 수출 우대조치 등 다양한 유연성을 반영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 자연재해 등 글로벌 환경문제 대응에 있어서도 다양한 경제개발 수준을 감안해 통상정책과 환경문제의 연계를 강조하고 있다.
구분 | 각료선언/각료결정 | 문서 번호 | 주요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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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문서 |
MC12 Outcome Document | WT/MIN (22)/24 |
제12차 각료회의 결과문서 |
각료 선언 |
Sanitary and Phytosanitary Declaration for the Twelfth WTO Ministerial Conference: Responding to Modern SPS Challenges | WT/MIN (22)/27 |
위생·식물위생(SPS) 조치의 이행 및 투명성 제고 |
Ministerial Declaration on the Emergency Response to Food Insecurity | WT/MIN (22)/28 |
식량불안 관련 긴급대응 | |
Ministerial Declaration on the WTO Response to the COVID-19 Pandemic and Preparedness for Future Pandemics | WT/MIN (22)/31 |
코로나19 및 미래 팬데믹 대응 | |
각료 결정 |
Work Programme on Small Economies | WT/MIN (22)/25 |
중소국 무역참여 지원 |
TRIPs Non-violation and Situation Complaints | WT/MIN (22)/26 |
지재권 비위반제소 유예 | |
Ministerial Decision on World Food Programme Food Purchases Exemption from Export Prohibitions or Restrictions | WT/MIN (22)/29 |
세계식량계획(WFP) 식량구매의 수출 금지·제한 예외 | |
Ministerial Decision on the TRIPs Agreement | WT/MIN (22)/30 |
백신 특허 활용 원활화 | |
Work Programme on Electronic Commerce | WT/MIN (22)/32 |
전자적 전송물 관세부과 유예 | |
Agreement on Fisheries Subsidies | WT/MIN (22)/33 |
수산보조금 협정 |
5년 만에 열린 MC12는 수산자원 보호를 위한 수산보조금 협정 타결 및 코로나19 백신 특허 관련 TRIPs에 대한 결정 등을 통해 전통적 통상 현안이 아닌 환경 및 보건 이슈를 무역규범의 틀 내에서 연계해 글로벌 도전과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수산보조금 협정 타결은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다자무역체제를 이끌어가기 위한 포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TRIPs에 대한 결정은 WTO 내에서도 상업적 이해관계를 공중보건 문제보다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기조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이번 MC12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전례 없는 글로벌 보건 위기뿐 아니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중대한 지정학적 위기 상황 속에서 다자협상 자체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는지 여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개최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MC12의 결과로 채택된 다양한 성과는 전혀 예측하거나 보장할 수 없었던 것으로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특히 미·중 전략적 경쟁의 심화 및 장기화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의 개도국 지위 및 SDT 적용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보건문제의 다자적 해결을 위해 개도국 입장을 수용, 전격적인 합의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마지막까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쟁점사항에 대한 논의를 위해 소수의 회원국 협상대표들과 ‘그린룸(Green Room)’5) 회의를 다수 개최하며 이견을 좁혀가는 과정이 협상 타결에 크게 유효했다는 시각이다.
이번 MC12를 통해 WTO 회원국은 WTO 개혁에 대한 추진 의지를 재확인하고 차기 각료회의까지 실질적인 결과를 도출하기로 결정하면서 WTO의 사법적 기능 복원에 대한 기대도 크게 제고됐다. 특히 기존 형태의 분쟁해결제도에 대한 존치를 가장 강하게 지지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은 각료회의 이후의 개혁 논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며 최대한 2024년까지 분쟁해결제도에 대한 합의 결과가 도출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최근 개최된 분쟁해결기구 회의에서 미국은 여전히 상소기구 문제에 대한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현재 공석인 상소기구 신규위원의 임명절차 개시에 합의하지 않고 있는데, 미국은 회원국들의 ‘실제 이해관계’를 반영하도록 ‘진정한 개혁’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WTO 분쟁해결제도를 둘러싼 미국과 EU의 입장 차이가 좁혀질 수 있을지 여부가 WTO 개혁에 대한 논의 진전 여부를 판가름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MC12 결과를 지칭하는 이른바 ‘제네바 패키지(Geneva Package)’의 도출은 우선 WTO의 향방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164개 회원국 모두에 의한 컨센서스에 의거해 합의가 도출됐다는 점은 WTO 협상 기능의 복원을 의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더욱이 상업적으로 민감하고 파급효과도 큰 현안들이 개발, 보건, 환경 등 지속가능성 이슈들과 연계되면서 이를 규율하기 위한 무역규범화 과정은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다자무역체제에서 다루게 될 현안들은 지속가능성의 틀 내에서 기존 무역관행과 통상정책을 더욱 깊게 고민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개도국에 대한 포용성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최근 우리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는 경제협력 플랫폼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6)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를 통해 우리의 공급망 안정성을 제고하고 아시아 지역 개도국과의 다양한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경제질서 및 무역규범 수립 과정에서의 주도적인 역할을 위해 IPEF 틀 내에서 추진될 디지털 경제 관련 규범 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한다.
이처럼 지역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규범화 노력들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다자화 및 국제규범으로서 도입될 수 있도록 WTO 차원의 규범 협상 과정에 적극 참여해 지역 무역규범과의 연계 작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디지털 전환 및 탈탄소화 추세에 발맞추어 다자 및 지역 차원의 무역규범이 환경보호 및 디지털 경제 관련 이슈들을 적절하고 일관된 방향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모든 규범화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또한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은 중견국 입장에서 과도한 무역제한적 요소들을 경계하고 개도국도 포용할 수 있는 규범화를 지향하도록 다자협상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규범 주도국(rule-setter) 지위를 확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