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흥미로운 이벤트로 가득한 휴양지
다보스

글·사진 이형준 여행 작가, <유럽동화마을여행> 저자

다보스 마을과 바이스플루요흐 사이에 위치한 재츠 콰트로에서 스키와 보드를 즐기는 사람들.
눈과 겨울을 떼어 생각하면 잔인할 것이다. 알프스 자락에 터를 잡은 작은 산촌에서는 더욱 그렇다.
계절마다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알프스 마을은 어느 곳을 찾아도 복잡한 일상으로부터 탈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스위스 동부에 위치한 다보스(Davos)보다 적합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생모리츠(St. Moritz), 몽트뢰(Montreux)와 함께 스위스를 대표하는 고급 휴양지 다보스는 해발 1,560m에 위치해 있다. 조금 큰 산촌인 다보스는 오래된 농가와 세련된 건축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도시지만 매년 1월에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을 시작으로 국제 알파인스키 대회, 각종 음악회와 이색적인 이벤트까지 그 어떤 산골 마을보다 연중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19세기부터 부호와 명사들이 선호하던 유서 깊은 휴양지답게 자랑거리도 많다. 그중 으뜸은 연평균 300일 이상 청명한 하늘과 깨끗한 환경, 뛰어난 경관이다. 좋은 환경은 지구촌 가족들의 큰 호응 덕분에 높은 물가에도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이스플루요흐에서 다보스 마을로 이어진
슬로프를 따라 이동하는 스키어들.
동계스포츠의 메카

산으로 둘러싸인 다보스의 겨울은 마을과 주변이 거대한 등산 루트이자 스키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십 곳에 달하는 등산 코스 중 으뜸은 마을에서 바이스플루요흐(Weissfluhjoch)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루트다. 해발 2,823m의 바이스플루요흐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등산 열차와 케이블카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이동하거나, 두 가지다. 산사람들은 계절에 상관없이 걸어서 오르지만 여행객은 주로 등산 열차와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여행객이 선호하는 루트는 열차와 케이블카를 이용해 해발 2,662m의 바이스플루요흐에 도착한 후 조금 걸어서 정상에 오른 다음 하산할 때 부분별로 걷는 코스다.
다보스는 동계스포츠의 메카 중 한 곳이다. 19세기 후반 최초로 국제 스케이트 선수권대회를 개최한 것을 필두로 매년 국제 알파인스키 대회를 비롯해 스케이트, 스노보드, 아이스 골프, 컬링 경기 대회가 열린다. 여러 스포츠 중 다보스의 겨울을 대표하는 종목은 스키다. 다보스의 스키 코스는 11월 말에 개장해 다음 해 4월 초까지 4개월 넘게 지속된다. 해발 1,124~ 2,844m 사이에 조성된 스키 슬로프가 58개에 이른다. 코스에 따라 높이와 길이가 다른 리프트의 길이는 최대 320km에 달하며, 인근 마을과 다보스를 잇는 크로스컨트리 트랙만 75km가 넘는다.

여유와 편안함을 제공하는 다보스

다보스를 찾는 방문객은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짧은 일정으로 방문해 회의, 음악회, 전시회, 명소를 둘러보고 돌아가는 경우와 2~3개월씩 체류하면서 스키, 등산, 산책을 즐기고 온천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거나 병을 치료하려는 경우다. 다보스에서는 장기 여행객이 머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버스, 기차 같은 교통편과 여행 경비를 줄일 수 있는 각종 패스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다. 장기간 체류하는 방문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패스 제도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스키 패스다. 정해진 기간 동안 자유롭게 스키장과 리프트, 케이블카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스키 패스는 1~2일짜리도 있지만 장기 체류자의 경우 짧게는 1~2주짜리부터 길게는 100일 혹은 스키장이 폐장할 때까지 이용 가능한 패스를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다.

다보스를 찾은 모녀가 농가 앞 의자에서
간식을 즐기는 모습.
다보스와 체르마트 구간을 운행하는 빙하 특급.
생모리츠에서 매년 2월에 개최되는 화이트 터프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
매력적인 인근 마을

다보스 남쪽에는 연중 흥미로운 이벤트가 펼쳐지는 휴양지 생모리츠가 있다. 동계올림픽을 두 차례나 개최한 생모리츠는 이색적인 겨울 스포츠가 열리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생모리츠에서 펼쳐지는 이색 스포츠는 다양한데, 그중 최고는 매년 1월 말을 타고 설원 위를 달리며 공을 치는 ‘스노 폴로(Snow Polo)’와 설원 위를 질주하는 경마 대회 ‘화이트 터프(White Turf)’다.
스노 폴로는 잔디에서 펼치는 필드 폴로와 비교해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조금 큰 공을 사용하는 것을 제외하면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위험을 수반하는 스노 폴로는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는 스포츠로 유명하다. 4명이 한 팀을 이루고 선수마다 정해진 역할이 있는데, 만약 그 역할을 넘어 경기에 임할 경우 퇴장은 물론 득점한 점수를 삭감하는 규정이 있다. 스노 폴로는 스피드와 끈질긴 투지가 요구되는 스포츠로, 축구 경기장의 2배가 넘는 자기편 골문에서 상대편 골문까지 불과 10~12초 정도면 도달할 정도로 스피드한 경기다. 그뿐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며 상대편 선수와 말 사이를 헤치고 공을 치며 달리는 모습은 스포츠라기보다 곡예에 가깝다. 생모리츠 호수에서 열리는 마상과 승마 경기도 스릴과 스피드를 만끽할 수 있는 겨울 스포츠로 인기가 높다.  
생모리츠가 이색적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북쪽에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동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무대인 마이엔펠트(Maienfeld)가 있다. 농가와 포도 농장, 전통 음식점, 숙박 시설이 자리한 마이엔펠트는 평범한 산촌의 매력을 간직한 마을이다. 앙증스러운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한 포도원, 장난감 상점을 연상시키는 시청, 자연을 그대로 이용해 조성한 하이디 공원,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마을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답거나 유명한 명소는 없다. 하지만 마을에는 하이디와 알롬 할아버지가 살았던 하이디 하우스와 염소 대장 피터네 가족이 살았던 피터 하우스,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클라라의 가족이 머물었던 호텔 등 동화 속 무대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화려한 건물이나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지만 동화책 속 동심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마을이기도 하다.  
매년 지구촌 경제를 주제로 발표와 토론이 펼쳐지는 다보스. 작은 산촌이지만, 어느 곳보다 흥미로운 고장 다보스는 계절마다 변화무쌍하게 연출하는 풍경부터 각종 스포츠와 다채로운 문화 행사까지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여행지다.

벨란트바서 계곡을 따라 개설한 선로를 달리는 기차.
피터 하우스에서 동물을 돌보는 주민.
스위스 다보스에서 주목해야 할 통상 이슈
세계경제포럼 (WORLD ECONOMIC FORUM)

세계의 정계·재계·언론계·학계 지도자들이 참석해 범세계적 경제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국제적 실천 과제를 모색하는 국제 민간 회의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 다보스에서 열려 ‘다보스포럼’으로 더욱 유명한 세계경제포럼은 1971년 스위스 제네바 대학교 경제학자였던 클라우스 슈바프 교수가 처음 만들었다. 처음엔 유럽 지역의 경제 문제를 논의하는 유럽 경영 포럼이었지만 이후 규모를 키우고 회의 명칭도 세계경제포럼으로 바꾸었다. 유럽 경영 포럼은 스위스 동부의 쿠어(Chur)에 바탕을 두고 있었지만, 이후 클라우스 슈바프는 다보스로 지역을 바꾸었다. 설원과 아름다운 알프스가 있는 다보스는 자연에 둘러싸인 풍광 덕분에 포럼이라는 중요한 안건에 집중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다보스포럼은 ‘세계경제 올림픽’으로 불릴 만큼 권위와 영향력이 있는 유엔 비정부 자문 기구로 성장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나 서방 선진 7개국(G7) 회담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올해로 50번째 행사를 맞이해 ‘화합하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한 이해관계자’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는 각국 정상 70여 명과 장관 300여 명, 기업인 1,500여 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