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史 큐레이터

하얗고자 검었다!
설탕 무역사

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연평균 기온 20℃ 이상에 강수량 1,500ml 정도의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 최대 6m까지 자라는 사탕수수(Sugar Cane). 바로 설탕의 주원료다. 순백색에 달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흑인 노예들의 피와 땀, 눈물이 섞여 만들어진 역사 속 설탕 무역 이야기의 첫 페이지는 그 재료인 사탕수수가 본격 재배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려 기원전이다.

독(毒)이 먼저인가, 약(藥)이 먼저인가

설탕은 달다. 원료인 사탕수수 줄기에 포함된 단맛 성분의 자당(蔗糖) 때문인데, 사탕수수액을 추출하고 이를 다시 정제하면 비로소 설탕이 된다. 기원전 8,000년경 원산지인 동남아시아에서 재배되고, 2,000여 년 전 인도인에 의해 설탕으로 만드는 기술이 개발됐다고 전해진다.
이런 당류는 생명 유지에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 과거에는 설탕이 질병 치료제로 쓰이기도 했으며, 11세기 이슬람 철학자이자 의사 이븐시나(Ibn Sīnā)는 설탕을 만병통치약에 비유했다. 스트레스로 피로하거나 흔한 말로 ‘당이 떨어졌을’ 때 단것을 먹고 일시적으로 기운을 내는 것이 아주 근거 없는 건 아닌 셈이다. 하지만 당류를 과다 섭취하면 당뇨나 고혈압 등 성인병에 노출될 뿐 아니라 비만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병 주고 약 주는 설탕이 놀라울 따름이다.

대항해시대, 치명적이었던 설탕

설탕이 역사에 본격 편입된 시기는 유럽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로 항로를 개척하던 15세기경 대항해시대다. 포르투갈, 스페인을 필두로 영국과 프랑스까지 해상 패권을 장악해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개척을 동시에 이뤄냈다. 당시에도 설탕은 꽤나 치명적이었는데, 현대처럼 중독성이나 과다 섭취에 따른 질병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인간의 경제적 탐욕이 그 원인이었다.
초기 설탕은 일부 왕족과 귀족만이 누릴 수 있던 일종의 사치품이었지만, 앞서 언급한 나라들이 사탕수수 재배에 적합한 아메리카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대량생산해 기호품으로 발전했다. 문제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사탕수수를 재배하면서 생겨난 비극이다. 사탕수수는 다른 작물에 비해 수확하기까지 노동 강도가 세고, 지력(地力)을 약하게 만드는 고약한 성질 때문에 대규모 경작과 경영을 요구하는데, 이를 플랜테이션(Plantation)이라고 한다.
이런 방식에 필요한 막대한 노동력에 희생된 것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과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이었다. 영국은 리버풀을, 프랑스는 낭트를 노예 조달의 중심지로 삼았는데, 아메리카에서 재배한 사탕수수와 설탕을 수입하고 그 배에 자신들이 생산한 공산품을 실어 아프리카로 수출했다. 그리고 같은 배에 아프리카 노예들을 실어 다시 아메리카로 이동시켰다. 그 유명한 삼각무역이다. 결론적으로 설탕 무역을 통해 노예무역이 발전한 셈인데, 참담하고도 끔찍한 글로벌가치사슬이 아닐 수 없다.

각설탕
설탕 주고 캐나다를 받다

설탕 무역 대금으로 나라를 지불한 것과 같은 일화가 있다. 1756년에 발발한 유럽의 7년전쟁은 주요 참전국이던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으로 하여금 북아메리카 대륙에서의 ‘프렌치 인디언 전쟁’으로 확전됐다. 이 전쟁에서 영국이 최종 승리하며 1763년 파리조약이 체결되었는데 그 내용이 재밌다.
전쟁 중 영국이 카리브해 프랑스령 설탕 식민지인 마르티니크와 과들루프를 빼앗자 생산능력 증대로 인한 가격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영국에서 나왔다. 그 중심은 농장 경영자 출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로비를 통해 영국 정부가 두 섬을 프랑스에 반환하도록 했고, 이때 프랑스는 퀘벡 등 캐나다 영토를 영국에 할양했다. 지금도 퀘벡주와의 민족 문제는 캐나다의 골칫거리다. 캐나다인에게 설탕은 달지 않고 쓸지도 모를 일이다.

(왼쪽) 18세기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들. (오른쪽) 설탕은 기원전 8,000년 전부터 재배되기 시작한 오래된 작물이다.
식민 잔재 전락한 설탕과 미·중의 각개전투

미·중 무역 전쟁 초·중반 양국은 각각 설탕을 이유로 중남미와 갈등을 겪었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멕시코는 그 영향으로 지금도 설탕이 주요 산업이다. NAFTA로 미국에 대량 설탕 수출이 가능했는데, 미국도 ‘빅 슈거’답게 설탕 생산이 많아 공급과잉, 가격경쟁 문제가 터졌다. 3년의 다툼 끝에 덤핑 방지, 쿼터 도입 등으로 2017년 겨우 합의했다. 중국은 자국 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브라질에서의 설탕 수입을 제한하다 WTO에 제소당해 분쟁이 진행 중이다. G2와의 담판도 두려워하지 않는 중남미의 성장일지, 식민 유산에 신음하는 그들의 몸부림일지 판단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