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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지는 무역장벽, 무엇이 문제인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철강회사들은 최근 미국에서 날아온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국의 값싼 전기요금이 정부 보조금에 해당하므로 한국 기업에 반덤핑 및 상계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미국 업체들의 주장을 미 상무부가 기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심할 단계가 아니란 지적이 많다. 반덤핑관세와 같은 ‘지뢰’가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알 수 없어서다.

원자재-중간재-완성품 등 생산 공정이 여러 나라에 걸쳐 이뤄지는 상황에서 심화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바람은 우리 경제에 최대 복병이 될 수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40%에 달할 정도로 높은 수출 비중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지만, 각국의 무역정책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반덤핑·세이프가드·상계관세 3각 파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일반화된 것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취임한 직후부터다. 미국이 한국을 포함해 중국, 유럽, 일본 등을 상대로 무역규제를 강화하고, 각국이 맞대응에 나서면서 수출입 문턱이 높아지고 있다. 개방경제를 지향해온 한국엔 큰 위협이다.
수입규제는 다른 국가로부터 들여오는 재화를 제한하거나 감소시킬 목적으로 관세나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것이다. 명분은 공정경쟁 또는 자국 산업 보호다. 반덤핑과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상계관세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및 자국 법령에 근거를 두는 게 특징이다. 반덤핑(AD; Anti-Dumping)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덤핑 국가 및 수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수입을 일부 규제하는 방식이다. 세이프가드(SG; Safeguard)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갑자기 늘어 자국 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란 판단이 내려지면 취하는 조치다. 관세를 대폭 올리거나 수입량을 임의로 제한하는 게 일반적이다. 상계관세(CVD; Countervailing Duty)는 수출국에서 장려금이나 보조금을 받아 가격경쟁력을 높인 외국산 상품에 수입국이 직접 부과하는 별도 관세다.
작년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받은 수입규제를 이런 형태별로 분류해보니 반덤핑 규제가 152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세이프가드 48건, 상계관세 9건 순이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반덤핑 규제 비중이 90%를 넘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세이프가드 규제가 확대돼왔다. 전체 수입규제 중 세이프가드 비중은 2006년 2.6%에서 2019년 23%로 크게 늘었다.

주력 수출시장인 미·중의 수입규제 비중 높아

국가별 수입규제 조치 현황을 보면 경제 대국인 미국이 한국에 가장 많은 40건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인도 32건, 중국 17건, 터키 15건, 캐나다 13건, 브라질 10건 등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주력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규제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과거엔 각국이 플라스틱을 포함한 화학제품에 대해 수입규제 조사를 많이 했다. 2013년부터는 철강·금속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를 많이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세계 철강시장에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서다. 또한 인도와 중국 등 신흥국은 화학제품에, 미국, 캐나다 등 북미 국가들에선 철강·금속 제품에 대한 무역규제를 많이 해온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새로 시작되는 수입규제가 많다는 게 문제다. 지난해 한국을 대상으로 이뤄진 신규 수입규제 조사 건수는 총 45건이다. 전년(20건) 대비 두 배가 넘는다. 세이프가드(24건)가 반덤핑(20건)과 비슷한 수준까지 늘어난 게 특징이다. 상계관세는 1건이었다.
예컨대 지난해 10월 유럽연합(EU)이 중량감열지, 태국이 도색아연도금강판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개시했다. 인도는 같은 해 11월 아이소프로필 알코올과 폴리부타디엔 고무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사를 시작했다. 미국 역시 같은 시기에 한국산 단조강 부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들어갔다. 보니포지, 유나이티드스틸 등 미국 기업들이 한국 및 인도 기업을 공동 제소한 데 따른 것이다.

코로나19 직격탄… “올해 통상 환경 어둡다”

올해 한국을 둘러싼 통상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세계적 유행(팬데믹) 단계로 접어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글로벌 교역이 급격히 위축된 상황에서 각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여서다.
미국은 환율 상계관세를 도입해 수입 문턱을 지금보다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 상무부는 올해 3월 초 환율 평가절하를 부당 보조금으로 간주하고, 환율 조작국 기업을 대상으로 상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한국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낮지만 미 상무부의 환율 상계관세는 재무부가 판단하는 환율 조작국 지정과 별개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환경법을 고쳐 고체 폐기물 수입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인도는 철강수입 모니터링 시스템을 만들어 외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수입규제를 강화할 태세다. EU 역시 역내 산업 보호를 위해 관련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 철강과 화학 등에 집중됐던 종전 규제를 식품 및 일반 공산품으로 확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