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전통과 변화가 공존하는 제국의 심장
모스크바

글·사진 이형준 여행작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저자

모스크바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러시아의 수도다. 제정 러시아 시절 제2 도시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10월 혁명으로 세워진 소련의 수도로 돌아온 후 오늘날까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옛 영광과 새로운 도약이 공존하는 러시아 정치·경제·사회의 중심 모스크바(Moscow)를 찾아가본다.

요새를 연상시키는 크렘린 궁전과 성 바실리 성당 사이에 조성된 붉은 광장

옛 러시아어로 ‘아름다운(크라스나야)’이란 의미가 담긴 붉은 광장은 모스크바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길이 700m, 폭 130m에 달하는 광장의 탄생은 작은 노점시장에서 시작됐다. 붉은 광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군사 출정 행진장과 정치범의 처형장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됐다. 모스크바를 찾은 방문객이라면 한 번쯤 가보는 붉은 광장에 서면 크렘린 궁전의 성벽과 레닌 묘, 양파 모양의 돔을 갖춘 성 바실리 성당, 굼 백화점 등이 시선에 잡히는데, 그 규모에 자연스럽게 입이 벌어진다.
붉은 광장의 최고 명소는 어디일까. 레닌의 영묘를 선택하는 이도 있지만 다수는 광장 남동쪽에 위치한 성 바실리 성당(St. Basil's Cathedral)을 꼽는다. 러시아 관광포스터와 안내책자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성 바실리 성당은 독특한 외관과 화려한 색상을 갖추고 있다. 거대한 양파를 연상시키는 성당은 이반 대제(Ivan III)의 손자인 이반 4세(Ivan IV)가 카잔한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상징물로 개선문이나 조형물 대신 성당을 건축한 것은 이반 대제와 이반 4세의 깊은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560년 처음 모습을 드러낼 당시 지명은 포크로프스키 성당이었다. 이후 성당을 증축하는 과정에서 당시 시민들이 숭배하던 성인 바실리를 모시면서 성 바실리 성당으로 개명했다. 중앙 탑을 중심으로 크기와 색상이 다른 8개 탑이 둘러싼 성당은 대칭구조를 갖춘 전형적인 종교 건축물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일부 화려한 제단과 장식도 있지만 내부는 불규칙적인 외관과 달리 전반적으로 소박하고 아늑한 프레스코화로 마무리해 편안함을 선물한다.
성당 북쪽에는 러시아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백화점 굼(GUM)이 있다. 러시아어로 종합백화점을 의미하는데 1893년부터 현재까지 손님을 맞고 있다. 러시아 혁명정부에 의하여 국유화된 굼은 1993년 민영화가 되기 전까지 공산당의 선전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글로벌 명품부터 장난감까지 취급하는 굼은 127년 동안 모스크바의 고급 소비문화를 선도하는 장소로 명성이 높다.

굼 백화점 회랑에서 바라본
붉은 광장에 안치된 레닌의 묘
무게 200톤이 넘는 지상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황제의 종.
크렘린 궁전에 전시되어 있다.
러시아의 심장 크렘린

러시아의 주요 명소는 붉은 광장 서쪽에 위치한다. 붉은 광장 서쪽으로 크렘린 궁전이 연결되어 있다. 1495년 모습을 드러낸 크렘린 궁전의 성벽은 높이 5~19m, 두께 3.3~6m, 둘레 2.2km에 달한다. 주변을 감시할 수 있는 주요 거점마다 세워진 20개 정도의 높고 웅장한 첨탑은 크렘린의 용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크렘린은 철저한 계획 아래 건설되었다. 국가 통치에 종교를 십분 활용했던 러시아 황제들은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건축하는 데 열성이었다. 크렘린의 대표 종교건축은 1479년 완공된 우스펜스키(성모 승천) 대성당이다. 이반 대제의 명으로 세워진 대성당은 황금색 지붕과 출입구에 그려진 성화가 돋보인다. 러시아 정교회 중심 성당인 우스펜스키 대성당은 황제 대관식과 국가 차원의 주요 행사장으로 사용되었다. 하나 흥미로운 것은 훗날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천도한 후에도 황제와 여제의 대관식만큼은 이곳에서 거행할 정도로 중시하던 성당이다. 대성당 내부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중심으로 12사도 등 성경 속 성화로 가득하다. 러시아 종교화가 디오니시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실내는 화려하진 않지만 섬세한 터치가 돋보인다. 우스펜스키 대성당 실내의 다른 특징이라면 서유럽 종교 건축물과 다르게 창문도 적고 크기도 작다. 외부 빛을 극도로 차단한 이유는 엄숙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우스펜스키 대성당 앞에 위치한 블라고베시첸스크 성당은 대공과 황제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성당으로 금으로 도금된 9개 지붕과 아름다운 성화가 유명하다. 대천사 미카엘에게 바쳐진 아르한겔스크 성당은 역대 대공과 황제의 시신이 안치된 성당으로 호화로운 실내와 벽화가 시선을 잡는다.

화려하고 흥미로운 궁전

크렘린에는 그라노비타야 궁전, 첼무노이 궁전, 파트리알시 궁전이 있다. 그중 파트리알시 궁은 대주교가 사용했고 성당에 가깝다. 황제와 여제가 사용한 그라노비타야 궁전과 첼무노이 궁전을 합해 크렘린 궁으로 부른다. 왕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그라노비타야 궁전은 1491년 이반 대제가 건설했다. 왕가의 사적인 행사와 외국 대사의 접견장소로 사용한 그라노비타야 궁전은 평범한 외관과 달리 실내는 화려하다. 저마다 개성이 넘치는 공간 중 이색적인 곳으로 ‘알현의 방’이 있다. 이 방에는 황제가 집무를 보던 옥좌 옆에 커다란 상자가 놓여 있는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기에 탄원서를 넣을 수 있도록 했다.
1636년 건설된 첼무노이 궁전은 역대 황제와 여제가 머물던 곳이다. 로마노프 왕조의 석조 건물을 모델로 러시아 목조 양식으로 완성했다. 첼무노이 궁 역시 평범한 외관과 달리 실내가 호화롭다. 황금으로 도금한 방을 비롯해 화려한 조각이 새겨져 있어 황제와 여제가 얼마나 화려한 삶을 영유했는지 보여준다. 현재 공예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파트리알시 궁전에는 17세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조각과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어 방문객에게 인기가 높다.
이 밖에도 크렘린 안에는 흥미로운 건물과 유물이 무궁무진하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탑인 이반 대제의 종루, 현재 무기고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 무기고, 한 차례도 사용하지 못한 채 기념사진 촬영장소로 제공되고 있는 200톤 무게의 종과 한 번도 발포해보지 못한 구경 89cm의 대포 등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127년 역사를 자랑하는 모스크바 대표 쇼핑공간인 굼 백화점
시즌마다 이벤트에 맞춰 실내를 꾸미는 굼 백화점. 모스크바의 고급 소비문화를 상징한다.
외부 벽면에 아름다운 성화로 장식된 황제의 대관식이 열렸던 우스펜스키 성당
황제와 여제가 사용했던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크렘린 궁 내부
예술과 낭만이 공존하는 아르바트 거리

크렘린 궁전에서 걸어 서남쪽으로 이동하면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아르바트 거리(Arbat Street)가 펼쳐진다. 보행자 거리로 조성된 아르바트는 1km의 구간으로 나지막하고 세련된 건물이 터를 잡고 있다. 아르바트에서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참 많다. 정겨움이 넘치는 카페와 레스토랑, 앙증맞은 제품으로 가득한 상점, 거리의 화가, 음악가, 예술가, 그리고 개성을 발산하는 젊은 방문객까지.
모스크바 최고 번화가인 아르바트 거리는 정감 넘치는 건물과 세련된 카페, 사람만 공존하는 공간이 아니다. 러시아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작가인 푸시킨, 레르몬토프, 투르게네프 등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그 흔적이 도처에 숨어 있다. 예술가와 방문객으로 북적이는 아르바트 거리의 매력 중 하나가 예상하지 못했던 소소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범해 보이는 골목을 걷다 보면 저명한 작가와 예술가들이 단골로 다니던 작은 카페와 바에서 자신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또 골목과 신작로에서 접하는 작가의 흔적과 조형물은 붉은 광장이나 크렘린 궁에서 마주하던 것과는 결이 다른 즐거움을 선물한다. 특히 고려인 3세로서 러시아 젊은이들의 우상이던 록 가수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낙서벽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를 안타까워하며 한국인의 자부심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지하철역으로 알려진 모스크바 지하철역 내부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은 아담하고 정겨운 건물이 늘어선 아르바트 거리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기계장치 전시회
International Specialized Exhibition for Machine-tools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기계전시회는 1984년 시작된 이래 금속 절단 기계에서부터 금속성형기계, 정밀기기, CNC, 레이저장비 등 다양한 제품과 신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격년제로 진행되다가 참가국이 늘어나면서 매년 개최되는 전시회로 발전했다. 해마다 전 세계 30여 개국의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고 관람객 수도 3만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전시회다. 매년 5월에 개최되었으나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확산을 우려하여 취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