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진단키트 핵심 원재료 이어 장비까지 국산화에 앞장설 터

유재형 솔젠트㈜ 공동대표

취재 이슬비 기자 사진 박종범 실장

한국산 진단키트가 ‘방역 한류’의 첨병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전자 증폭효소 생산기술을 보유한 솔젠트는 진단키트 부문에서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 비축전략물자 조달업체로 등재돼 현지에 진단키트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 4월 21일 미국 콜로라도주 정부에 코로나19 진단키트 10만 회 검사 물량을 수출했다. 위기에 더욱 빛나는 K-바이오의 선봉에 선 솔젠트의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 이후 글로벌 기업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위상의 변화가 느껴질 텐데요.

솔젠트는 체외진단 중 정확도가 가장 높은 분자진단 강소기업입니다. 20여 년의 업력으로 다져진 기술과 노하우로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에 성공하며 현재 45개국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진단키트 개발·수출 부문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급부상,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상황을 매일매일 겪고 있습니다. 연구원부터 시작해 25년 넘게 진단키트 기업에서 일하며 사스, 메르스, 지카, 신종플루까지 웬만한 상황은 다 겪어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처럼 바빴던 적이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주문으로 24시간 전화통에 불이 나고 있어 저를 비롯한 56명의 임직원은 설날 이후 하루도 쉬질 못했습니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고단한 몸을 이끌고 근무 중인 직원들에게는 대폭적인 상여금으로 보상하고 있습니다. 우수한 품질의 진단키트로 솔젠트의 브랜드 이미지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만큼, 제가 느끼는 위상의 변화 못지않게 직원들이 느끼는 변화도 클 것입니다.

정부가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가진, 이른바 ‘서울역 긴급회의’에 참석한 기업들보다 빨리 진단키트를 개발했어요.
국내에서 가장 빨리 개발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작년 연말, 중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했을 때 중국 파트너사로부터 새로운 바이러스 진단키트 개발 제의를 받은 것이 계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신종 바이러스가 중국의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한 시기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내부적으로 회의를 했는데 대부분의 부서장들이 개발에 반대했습니다. 당시 회사가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인력도 부족한데 판매가 불확실한 진단키트를 개발하는 데 따른 부담이 컸어요. 메르스 당시의 경험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메르스 진단키트 개발 당시에도 2주간 연구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개발했으나 판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벤처기업 정신을 살려보자며 직원들을 설득해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땐 농담처럼 ‘잘 만들어서 10만 테스트만 중국에 수출해보자’는 소박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어요.
그로부터 한참 후인 지난 1월 27일 정부의 서울역 긴급회의가 있었어요. 당시 회의에 참석한 국내 진단기업들은 정부의 유전자 가이드라인에 따라 진단키트를 개발한 반면 솔젠트는 자체 기술로 디자인했기 때문에 타 진단기업들과 유전자가 다릅니다. 솔젠트가 개발한 진단키트는 코로나19의 특정 유전자 염기서열을 증폭해 진단하는 방식입니다.

해외에서 어떤 호평을 받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솔젠트가 검사에 활용하는 유전자는 민감도, 정확도(특이도) 면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질병관리본부 테스트에서도 아주 좋은 결과를 얻었고 최근에는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에도 초도물량 15만 명분을 조달했습니다. 27개 기업이 테스트에 참여했는데 솔젠트가 가장 좋은 결과를 냈어요. 세계에서 정확도가 제일 높은 진단키트임을 입증한 것이죠. 중국 제품들은 정확도가 떨어져 전량 반품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솔젠트는 지금까지 40여 나라에 수출을 했으나 단 한 번도 문제가 발생한 적이 없습니다.
독일에 본사를 둔 글로벌 검진센터 신랩(SYNLAB)에서도 매주 1,500키트씩 주문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우리 제품에 대한 평가를 망설이던 검진센터들도 우리 코로나19 진단키트가 나오자마자 적극적으로 평가하여 솔젠트의 기술력을 인정하고 공급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진단키트 수출현황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현재 70여 나라가 공급을 요청했지만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국가에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7일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이후 꾸준히 생산량을 늘려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공급물량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현재 중기부의 지원을 받아 스마트공장을 구축 중이라 5월부터는 자동화를 통해 생산량을 5배로 늘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키트에 라벨을 붙이는 것도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져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작년 한 해 매출이 60억 원이었는데 4월 현재 이미 크게 뛰어넘었습니다.

솔젠트는 국내 진단기업 최초로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에 비축전략물자 조달업체로 등록되어 초도물량 15만 명분을 공급했다.

질병관리본부의 긴급사용 승인, 유럽인증 등을 획득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요?

보통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용 승인을 받으려면 최소 1년 6개월이 걸리고 비용도 1억 원 이상이 듭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2015년 메르스 이후 긴급사용 승인제도를 도입해 심사절차를 대폭 간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긴급사용 승인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받기 어려운 허가로 통합니다. 진단키트 개발업체가 많지만 5개 기업만 허가를 받았어요. 오히려 유럽 인증은 우리나라의 허가 기준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 회사 정도의 기술력이면 2주면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해외에서는 솔젠트가 ‘한국의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회사 중 하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큰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진단키트가 필요한 대부분의 국가가 ‘한국에서 허가받은 제품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해외의 의료 선진국에서 아직도 제대로 된 진단키트를 개발하지 못했다는 것은 여전히 놀라운 일입니다.

사실 저도 신기합니다. 한국에서 개발한 진단키트의 핵심원재료 대부분은 미국, 유럽 등 의료 선진국에서 들여온 것인데 정작 그들은 우리만큼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어요. 이는 집중력, 빠른 대응, 품질관리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품질관리는 기업 역량이지만 집중력과 빠른 대응은 다릅니다. 호주는 지금 같은 비상상황에서도 공무원들이 오후 4시면 퇴근을 한다더군요. 비단 호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국처럼 24시간 비상체제를 갖추고 비상상황에 집중하는 나라가 없어요. 우리나라 검사기관은 대부분 24시간 3교대로 일하고 있어요. 기술력보다 마인드 차이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상상황에서 한국처럼 헌신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갖춘 회사, 정부관료, 검사기관이 없는 것 같아요.

“이번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에 대해 새삼스럽게 느낀 점이 있어요. 뭔가 큰일이 터지면 굉장히 빠르게 집중하여 성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는 나라라는 겁니다. 똘똘 뭉쳐 굉장히 빠르고 집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죠. 이것이 한국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저 역시 애국심, 자부심이 더 커졌습니다.”

이번 과정을 겪으면서 느낀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을 느꼈어요. 우리나라는 뭔가 큰일이 터지면 굉장히 빠르게 집중하여 성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는 나라라는 겁니다. 평소에는 단합이 안 되는 것 같아도 위기에 직면하면 똘똘 뭉쳐 굉장히 빠르고 집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죠. 이것이 한국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저 역시 애국심, 자부심이 더 커졌습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나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솔젠트를 비롯한 진단키트 기업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기대됩니다.

물론입니다. 벌써부터 진단키트 기업들 사이에서는 함께 힘을 모아 K-바이오 브랜드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한국의 진단기술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으려면 핵심원재료의 국산화가 필요합니다. 그동안은 내수시장이 워낙 작았기 때문에 국산화의 중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거든요. 일본의 반도체 원재료 수출규제를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도 원재료 국산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원재료가 전략물자가 되기 때문에 국산화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미 핵심원재료를 자체 생산하고 있는 솔젠트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장비 국산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진단키트를 기반으로 전 세계적인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 종료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우리 제품을 유럽, 북미, 남미 등으로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회사로 발전시켜나가고 싶습니까?

지난 몇 달을 돌아볼 때마다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해 12월 말에 중국에서 개발 의뢰가 들어왔을 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벤처기업 정신을 잃지 않고 도전했던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함께 회사를 지켜준 직원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솔젠트는 핵심원재료를 자체 기술로 개발해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더라도 전 세계에 유전자 증폭효소를 공급할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진단키트 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꿈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방법으로 가장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적은 인원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진단키트 회사로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