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사

미·중 무역분쟁의 협상무기가 된 콩 이야기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명예이사장, 고려대 명예교수

콩은 식물성 식품이면서 단백질 40%, 지방 20% 내외를 함유해 동물성 식품과 유사한 성분조성을 가지고 있다. 쌀과 밀의 단백질 함량이 각각 7%와 10% 내외이고 지방 함량이 각각 1% 내외인 것과 비교하면 콩은 실로 ‘들판의 젖소’라는 별명을 가질 만하다. 이러한 콩이 동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중요한 단백질 식품으로 쓰이고 있는 데 비해 서양에서는 가축 사료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콩기름을 짜낸 대두박이 전 세계의 축산을 떠받치는 단백질 사료로 이용되면서 콩은 두류이면서 세계 4대 곡물(쌀·밀·옥수수·콩)에 포함되고 있다.

생산량 대비 교역 비중 가장 높은 곡물, 콩

지난 10년간의 통계를 보면 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총량은 연간 약 27억 톤(t)이다. 기상 여건에 따라 증감현상은 계속되고 있으나 세계의 곡물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곡물별로는 밀이 약 7억t, 쌀이 4억5,000만t, 옥수수가 10억t, 콩이 3억4,000만t 생산되고 있다. 생산지에서 식량으로 소비되고 남은 곡물이 세계 시장에서 유통된다. 세계시장에서 유통되는 곡물의 교역량은 밀이 약 1억8,000만t, 쌀이 3,000만t, 옥수수가 1억5,000만t, 콩이 1억5,000만t 정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콩의 경우 생산량의 44%가 세계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콩의 교역량이 다른 곡물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은 콩이 사료 작물로 전 세계에 팔리기 때문에 대규모 영농을 할 수 있는 일부 지역에서 수출용으로 재배하기 때문이다. 2017년 미국 농무부(USDA) 통계에 의하면 브라질(6,500만t), 미국(6,100만t), 아르헨티나(800만t), 파라과이(600만t)가 전체 콩 수출량의 92%를 담당하고 있으며, 수입국은 중국(9,700만t), 유럽연합(EU)(1,400만t), 멕시코(430만t), 일본(330만t), 한국(120만t) 등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1990년대 중반까지 콩을 수출하던 중국이 세계 콩 시장의 블랙홀로 등장한 것이다.

1·2차 세계대전 겪으며 식물성 단백질 자원으로 부상

콩의 원산지는 남만주와 한반도이고 이곳에 살던 우리의 조상 동이족(東夷族)이 콩을 처음 식용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콩에는 단백질의 소화흡수를 방해하는 성분이 있어 날것으로 먹으면 심한 설사를 일으킨다. 대한해협 연안에서 기원전 8000년경부터 원시토기문화를 발전시킨 우리 조상들이 끓임 기술로 콩을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든 것이다. 콩을 본격적으로 재배해 식용으로 사용한 것은 기원전 2000년경으로 국내 고고학 발굴에서 그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재배콩이 중국에 전래된 것은 기원전 7세기경으로 <일주서>, <사기>, <관자> 등 중국의 여러 문헌에 기록돼 있다. 서기 4세기경부터 시작된 중국인의 남방 진출을 통해 콩이 동남아로 전래됐다. 콩이 유럽에 알려진 것은 18세기이며, 미국에는 1764년 사무엘 보웬(S. Bowen)이 중국 광둥에서 살다가 조지아주 사바나로 와서 콩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편전쟁(1840~1842) 이후 미국의 농학자들이 콩 재배기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해 기계영농에 맞게 수형을 개량 육종하면서 대규모 재배가 가능해졌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콩은 세계 주요 식물성 단백질 및 유지자원으로 부상했고 미국은 콩 재배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미국의 콩 생산량은 1950년 690만t에서 1960년 1,416만t, 1970년 2,870만t, 1980년 4,890만t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해 세계 콩 수출시장을 주도했고, 지금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후발 주자로 미국과 경쟁하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의 불똥이 대두 전쟁으로 번져

사실, 1995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대두의 순 수출국이었다. 그런데 대두 소비가 증가하면서 수입량이 꾸준히 확대되었고 대외 의존도가 85% 정도에 이르게 됐다. 중국의 대두 소비량이 증가하게 된 주된 이유는 중국인의 식습관 변화에 기인한다. 중국인의 육류 섭취가 증가하면서 돼지 사료 사용량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돼지고기 사랑이 남다른 만큼 사료인 대두 수급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국가적 문제가 됐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이 수입하던 미국산 대두가 미·중 무역분쟁에 휘말리면서 ‘대두 전쟁’으로 확대됐다.
2018년 4월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 1,300개에 고율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중국은 즉시 미국산 대두(메주콩)를 포함한 106개 품목에 관세를 25% 부과하겠다고 맞불을 놓은 것이다. 중국은 해마다 전 세계 대두 소비량의 30% 정도를 소비하는데, 이는 1억 톤이 넘는 양으로 그중 3분의 1을 미국에서 수입한다.
자연히 대두 전쟁의 칼자루는 중국 쪽에서 먼저 잡고 무역전쟁 과정에서 반격 카드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중국은 2018년 말 미국산 대두 수입을 발표하면서 양국 무역분쟁의 상징이던 대두 분쟁을 완화시키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지만 2019년에는 대두 수입을 중단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매겨 미국을 압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만성적 대두 부족에 시달리면서 중국도 급해지기 시작했다. 2020년 중국은 미국산 대두 수입량을 대폭 늘리긴 했으나 3년째 지속되는 대두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다. 치솟고 있는 대두 가격이 이 전쟁의 결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최근 소설 <식량전쟁>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에 중국이 가입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보복조치로 미국이 중국에 곡물수출을 금지하고, 이에 분개한 중국 군인들이 원자탄을 발사해 2030년에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는 가상이 허구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