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통상

세이프가드가 무적의 방패는 아니었다
한·EC 유제품 분쟁

박정준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세이프가드(Safeguard)는 국내 산업의 정당한 보호를 위해 무역을 제한하는 것으로 일종의 보호무역조치다. 그런 만큼 자유무역 지향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는 쉽게 쓸 수 없는 조치다.

우리나라 낙농업은 대한제국 시기인 1902년, 홀스타인종 젖소 20마리로 시작됐다. 지난 우리 낙농업의 119년 역사는 파란만장했다. 그중 1960년부터 20년간의 정부 주도 낙농 육성책은 하이라이트다. 우리 낙농기술의 고도화와 전문화의 토대를 제공했다. 부침도 있었다. 사료가격, 가축분뇨 문제부터 구제역 등 질병문제도 상존했다. 1995년 WTO 시대가 열리면서 시장도 열렸는데 1997년 유제품에 대한 우리 세이프가드 조치가 당시 유럽공동체(EC)에1) 제소당했던 것은 낙농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WTO 출범과 함께 찾아온 기회와 위기

알려진 바와 같이 WTO는 우루과이라운드(UR·1986~1994)의 결과로 설립됐다. WTO 출범이라는 성과에 더해 UR이 크게 기여한 다른 부분은 바로 농업시장 자유화다. 낙농업 역시 포함된다. 협상 중 우리나라도 차츰 해당 시장의 개방을 추진했는데 1991년 1월까지 3단계로 수입이 자유화됐던 일부 농산물 및 주요 곡류, 1993년부터의 유제품 수입자유화가 대표적이다. WTO 출범과 함께 우리 수출이 날개를 달 것이라는 기대와 더불어 낙농업을 포함해 국가 근간인 농업 분야에 경쟁의 위기가 찾아왔다.
대비책으로 우리나라가 WTO 출범 이후 최소시장접근(MMA; Minimum Market Access) 물량을 초과하는 탈·전지 분유에 200%의 고율관세를 부과하기로 하자 이를 회피하고자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 국가 중심으로 관세율 40%에 불과하던 모조분유(혼합분유)2)를 적극 수출했다. 이에 국내 산업에 심각한 피해 및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는 1996년 5월 산업피해조사신청서를 무역위원회(KTC; Korea Trade Commission)에 제출하며 관세품목 재분류, 4년간 관세인상 또는 1만 톤 이내 수입물량 제한을 요청했다. 같은 해 10월 KTC는 혼합분유 수입이 국내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가져왔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듬해 1월 WTO에 세이프가드 조치 적용을 통보했다. 그러나 EC, 호주 등과 합의에 실패하면서 결국 독자적으로 수입물량제한 형식의 세이프가드를 1997년 3월부터 2001년까지 4년간 시행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한·EC 혼합분유 분쟁

EC는 1997년 8월 우리 조치가 GATT 제19조(특정상품의 수입에 관한 긴급조치) 및 세이프가드 협정에 위반된다며 제소했다. 특히 EC는 우리나라 산업의 피해가 “예측치 못한 사태의 발생(Unforeseen Development)”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세이프가드를 통한 대응이 타당하다고 명문화한 GATT 제19조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패널은 WTO 체제에선 세이프가드 협정 검토만으로 충분하다는 우리 입장을 지지한 반면 상소기구는 GATT와 WTO 협정이 상충하지 않고 누적적이기 때문에 함께 검토해야 했다며 EC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정책과 조치의 투명성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WTO에 대한 우리의 조치 통보와 주요 당사국과의 양자협의가 적절했는지에 대해 우리의 통보가 지연된 부분은 있으나 그 내용과 양자협의에서의 충실성에 대해서는 별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패널과는 달리 상소기구는 세이프가드협정(제4.2조)에서 말하는 산업 피해 관련 모든 요소 중 일부 생략된 부분이 있으므로 충실히 모든 정보가 통보됐다고 볼 수 없다며 패널의 판정을 재차 파기했다. 1999년 최종 패소한 우리는 다음 해 세이프가드를 철회하면서 본 분쟁의 마침표를 찍었다.

지금도 과제는 남아 있다

우유소비 감소, 우유가격 결정체계 개편 등 유제품과 관련된 우리의 고민은 여전하다. 그러나 WTO가 상기 통상분쟁의 위기만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수출확대라는 기회도 선물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더하여 이제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추가 시장 확보도 가능하다는 점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한류와 함께 이미 우리 유제품이 아시아 지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며 우리 낙농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EC 유제품 분쟁 (DS98)3)

  1. 1993.1 : 유제품 수입자유화
  2. 1995.1 : WTO 출범
  3. 1996.5 :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 무역위원회(KTC)에 산업피해조사 신청
  4. 1996.10 : 무역위원회, 피해 인정
  5. 1997.1 : 우리나라, 세이프가드조치 WTO에 통보
  6. 1997.2 : 주요국과 양자협의 실패
  7. 1997.3 : 세이프가드조치 시행 (~2001.2까지)
  8. 1997.8 : EC, 우리나라 WTO에 제소
  9. 1999.6 : 패널 판정
  10. 1999.9 : 우리나라, 상소
  11. 1999.12 : 상소 판정, 최종 패소
  12. 2000.5 : 우리나라, 세이프가드 조치 철회
3) DS98: EC vs. Korea - Dairy Safeguards 사건 (DS98, 2000. 1. 12. - 상소기구)

1) 現 유럽연합(EU)

2) 혼합분유는 원유, 전지분유, 탈지분유, 또는 탈지분유에 곡분, 곡류가공품, 코코아가공품 등의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을 가하여 분말로 만든 분유류


참고 : <국제통상분쟁사례이해>(청람, 2010), <WTO상품무역법>(박영사, 2018), <영한대역 WTO협정>(법문사, 2011) 및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