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사

고무가 없었다면 산업혁명도 없었다?

박정호 명지대 경제학과 특임교수

고무라는 천연 소재를 인류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고무를 상업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계기를 만든 사람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콜럼버스는 1490년대 초 신대륙을 탐험하면서 아이티 원주민들이 나무추출물로 만든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목격한다. 그 뒤에 고무라는 소재가 유럽에 전달됐고, 이때부터 고무는 우리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원자재가 됐다.

생고무가 들어있는 라텍스는 ‘태핑(Tapping)’이라는 공정에 의해 고무나무 껍질을 벗겨내면 흘러나오는 우윳빛의 액체 성분이다. 이 용액 속에는 약 30~40%의 고무 성분이 포함돼 있는데 이것이 바로 천연고무(생고무)인 것이다. 오늘날 고무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인 러버(Rubber)는 ‘문지르다’를 뜻하는 럽(Rub)에서 유래된 용어로 알려져 있다. 영국 화학자 프리스틀리(J. B. Priestley)가 이 소재를 종이에 문질러 연필 자국을 지우는 데(rubbed out) 사용했는데 이를 지켜본 다른 사람들이 'Rubber'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모든 기계 제품에 포함되는 필수 산업재

고무라는 이름의 탄생에서부터 그 유용함을 내포한 고무는 오늘날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산업재가 됐다. 고무는 일정한 힘을 받으면 쉽게 변형하고 그 힘을 제거하면 곧바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성질의 탄성복원성과 외부의 충격과 진동을 감쇄하는 능력이 그 어떤 소재도 따라갈 수 없는 유일한 소재로서 자동차, 스마트폰, 컴퓨터, 의료기기, 장갑 등 산업계 전반과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는 첨단기기의 필수 구성요소다.
이 때문에 고무가 없었다면 산업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모든 기계 제품에는 고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화를 위해서는 기계에 들어가는 천연 또는 합성 고무 부속품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동차, 트럭, 선박, 기차, 비행기 역시 고무가 없었으면 탄생할 수 없는 물건들이다. 자동차 1대에는 약 900개의 고무부품이 사용된다. 농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농업의 기계화는 도시를 성장시켰고 인구 증가가 가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냈다. 최근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우주항공산업 역시 고무의 중요한 소비처다. 우주정거장, 우주복, 로켓, 우주왕복선 등의 필수 부품인 고무 덕분에 우주탐험이 가능하게 됐듯이 앞으로의 우주탐험도 고무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천연고무의 원료인 라텍스는 여러 식물로부터 얻어지는데, 공통적인 것은 적도 부근에 산재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라텍스를 생산하는 식물이라도 반드시 공업적 목적으로 재배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라텍스 수확량이 너무 적거나 라텍스 내 고무 함량이 너무 낮거나 또는 불순물로 각종 수지가 포함돼 있으면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천연고무는 대부분 파라고무나무(Hevea Brasiliensis)로부터 얻어지는데 그 이유는 수확량도 많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고무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율고무나무(Guayule)라는 관목으로부터 라텍스를 채취하기도 하는데, 단백질 성분이 없기 때문에 의료용 재료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합성고무의 등장, 연구개발 사업의 시작

하지만 최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고무의 대부분은 천연고무가 아닌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합성고무다. 합성고무는 러시아에서 1910년 화학적으로 폴리부타디엔이라고 알려져 있는 고무를 제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30년대에 독일에서 합성고무를 상업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본격화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미국과 유럽은 천연고무의 공급 부족을 겪게 됐고, 이로 인해 미국에서 정부와 산업체 간 막대한 연구개발 사업이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천연고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천연고무는 무수히 많은 합성고무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산업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고무 재료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합성고무 원료는 한정된 자원인 석유계 오일로부터 얻어지기 때문에 자원 보전 및 환경적인 측면을 생각한다면 나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천연고무야말로 천혜의 재생자원이라고 하는 추가적인 장점이 있다고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근 친환경 이슈가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천연고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주요 2개국(G2)의 무역 분쟁에 전세계 고무산업계가 새우등이 터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18년 미국이 수입 자동차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자 중국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반덤핑 관세를 남발하면서 고무 가격에까지 불똥이 튄 것이다. 중국은 전 세계 천연고무의 절반을 소비하는데, 중국 타이어 생산업체들이 비수기에 돌입해 고무 수요가 줄면서 고무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미래 첨단산업과의 융합기술 개발

세계 고무산업 시장은 약 450조 원 규모로 부문별 고무소재 120조 원(26.8%), 타이어 210조 원(46.9%), 산업용 부품 118조 원(26.3%)으로 구분된다. 지금도 연간 3%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고무산업 시장은 약 21조 원(세계시장 점유율 4.4%) 규모로 고무 소비량 세계 8위, 범용 합성고무 생산량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는 고무 소비 대국이다.
우리나라는 고무 소비량이 많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타이어산업을 제외하고 고무산업 분야에 연구 지원 및 개발이 미약하다. 이는 고무산업이 기술보다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향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어나가기 위해서는 노동집약적 고무산업에서 벗어나 미래 첨단산업과의 융합기술을 개발해 고무산업의 기술혁신을 이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