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 금리 조정, 기후변화 대응 압력이 맞물리면서 중남미 경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브라질, 멕시코, 칠레 등 주요 국가는 풍부한 자원과 전략적 위치를 기반으로 글로벌 경제 흐름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동시에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와 정치 불안정성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 재정 건전성 확보, 산업 다각화라는 과제가 병존하는 가운데, 중남미 국가가 자원 수출 중심 경제 모델에서 미래 친환경·신산업 기술 기반 성장 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최근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가 맞물리면서 중남미 국가는 각각 도전과 기회의 갈림길에서 있다.
4월 9일(이하 현지시각)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열린 중남미·카리브국가공동체(CELAC) 정상 회의에 참석한 11개국 정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부과에 맞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4월 9일)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대한 상호 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AP통신은 “그럼에도 미국의 많은 무역 상대국과 동맹국은 트럼프 정부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무역정책의 신뢰할 수 있는 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미국과 활발히 교역했던 중남미 국가와 미국의 관계는 경색된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정책과 추가 관세 부과 통보는 인근 중남미 국가와 신뢰도를 저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중남미 경제의 구조적 한계와 미래 성장 전략을 진단하기 위해 ‘통상’은 최근 세계적인 개발경제 학자이자 전 유엔 사무차장, 전 콜롬비아 재무 장관을 역임한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José Antonio Ocampo)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캄포 교수는 수십 년간 라틴아메리카 경제정책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인물로, 자원 의존 구조의 탈피, 기술 투자 확대, 포용적 성장 기반 구축을 위한 정책적 방향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해 왔다. 오캄포 교수는 아르헨티나의 급진적 경제 개혁, 칠레의 자원 국유화 움직임, 브라질과 멕시코의 정치·경제 불확실성 등을 중심으로 중남미 지역의 향후 경제 진로에 대해 언급했다. 다음은 오캄포 교수와 일문일답.

향후 미국의 관세 부과가 중남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보나.
“중남미 국가의 경우 대부분 10% 관세 부과가 예상되므로, 그에 따른 영향은 보통 수준일 것이라고 본다. 다만, 주로 타격받을 것으로 예측되는 분야는 관세 25%를 부과받는 멕시코의 자동차 산업이다.” 미국은 3월 4일부터 캐나다·멕시코산 제품에 25% 관세(자동차는 30일 면제)를 부과했다가, 이틀 뒤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1)에 따라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는 제품은 관세 부과를 면제하기로 했다.
다만 4월 3일부터 수입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가 발효되면서 멕시코의 자동차 산업 타격은 더 커질 전망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남미 3국(미국·캐나다·멕시코)의 자동차 공급망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엔진·변속기 등의 부품이 완성차로 최종 조립되기까지 평균 7∼8차례 국경을 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관세 부과가 중남미 국가에 기회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없나.
“달리 말하면, 유럽 및 아시아 국가와 더욱 강력한 연관성을 쌓는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이 더 이상 하기 힘들어진 대중국 농산물 수출을 멕시코를 포함한 중남미 국가가 대체할 기회가 열렸다.” 지난해 중국과 중남미 주요 20개국 간 교역액은 4800억달러(약 685조원)로 집계됐다. 2000년 140억달러(약 20조원)와 비교해 34배 늘어난 수치다. 대중국 주요 수출 품목은 △대두 △구리·철광석 △석유 △소고기 등으로, 수출품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중남미 20개국 가운데 대중국 수출액이 가장 많은 국가는 브라질로, 지난해 대중 수출액이 1220억달러(약 174조원), 대중 무역수지 흑자는 630억 달러(약 89조원)를 기록했다. 이어 칠레가 430억달 러(약 61조원)에 달했다. 페루(255억달러), 멕시코 (187억달러)가 뒤를 이었다.
향후 한국과 중남미 간 협력은 어떻게 전개될 거라고 보나.
“한국과 중남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협력 분야는 ‘기술 협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강력한 기술 개발 연구 및 생산 역량이 중남미 국가의 여러 분야 (철도·수자원·바이오 등) 기술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투자가 중남미 국가의 지역 발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중남미 시장을 개척해 빠르게 확대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중남미 국가가 앞으로도 꾸준히 자원을 수출할 수 있을까.
“칠레·페루·멕시코 등 대부분 중남미 국가는 구리 매장량이 많으며, 볼리비아·칠레·아르헨티나 등 일부 국가에는 양질의 리튬 자원이 있다. 따라서 구리와 리튬 두 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자원 수출국을 넘어 기술을 주도하는 국가로 전환하는 측면에서는 브라질 일부 정도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징후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중남미 국가의 친환경 등 새로운 성장 모델 추진은 잘 진척되고 있나.
“중남미 국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좋은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것은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이 새로운 성장 모델로까지 움직인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부에서는 신(新)성장 모델로 발전하기 위한 정책이 부족하고, 친환경 분야 등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가 매우 적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일부 중남미 국가는 상당한 인플레이션압력을 경험했는데, 이에 대한 원인과 금리 등 전망은.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같은 극단적 사례는 주로 재정 적자를 충당하기 위한 통화 확대 때문이다. 다른 국가에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2022년에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었지만, 금리 인상 정책 덕분에 하락했다. 향후 수년간 중남미 국가의 금리가 다소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중남미 국가가 직면한 주요 재정 문제는 무엇인가.
“주요 경제국 중 일부 국가(특히 브라질과 콜롬비아)를 제외하고는 재정 적자가 일반적으로 중간 수준이다. 부채 수준은 브라질이 가장 높고, 멕시코와 콜롬비아도 다소 높은 상태다. 아르헨티나는 많은 재정 적자와 부채로 주목받아 왔지만,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의 긴축정책으로 재정 적자를 줄인 상태다. 2022년 콜롬비아의 세제 개혁2)도 진보적 개혁의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중남미 국가들의 과제로 노동시장 경직성, 교육 불평등, 제도적 부패가 꼽히는데.
“고용 측면에서는 2003~2013년 빠르게 성장하며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그 외 기간에는 그렇지 못했다. 다만, 지난 30년 동안 교육은 큰 발전을 이루었으며, 불평등도 다소 낮아졌다. 하지만 부패는 여전히 널리 퍼져있는 상황이다.”
중남미 경제에서 환율 변동성 영향은 어떤가.
“아르헨티나 같은 일부 중남미 국가를 제외하고는 현재 환율 변동성은 비교적 낮다. 주요 요인은 교역 조건 변동과 외부 자금 조달 가능성이다. 이는 물가와 무역에 영향을 미치지만, 투자에 대한 영향은 비교적 약할 것으로 보인다.”
중남미 전역에서 포퓰리즘 지도자가 부상하는 추세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문제는 그들이 제도적 구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다. 포퓰리즘3) 지도자가 경제 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이 똑같이 크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르헨티나 밀레이 정부의 경우 경제 안정성 측면에서는 개선을 보이고 있지만, 그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동의하기는 어렵다.” 현재 중남미 국가에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극단적인 정책을 펼치는 포퓰리즘 지도자가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외에도 다수 있다. 대표적으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구스 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등이 중남미 포퓰리즘 지도자로 꼽힌다.
아르헨티나 밀레이 정부의 급진적인 자유시장 개혁은 지속 가능한가.
“단기적으로 이러한 정책은 거시 경제 안정에 효과적이었다. 그와 반대로 생산 부문 정책에 대한 중요한 발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밀레이 정부의 장기적인 정책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2023년 12월 취임한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극우 자유시장주의를 앞세워 ‘국가 긴축’ 및 ‘시장 개방’을 추진했다. 무역 시장을 개방하고, 일부 수입산 제품 관세를 없애는 등의 방법으로 취임 당시 200%대의 물가 상승률을 크게 낮췄다는 평을 받는다. 다만, 공무원 감원·연금 삭감 등 급진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제조업 일자리 감소를 감수하는 정책을 펴면서 사회적 약자, 노동 계층의 반발이 거세지는 등 내부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칠레의 가브리엘 보리치 정부가 리튬 산업 국유화에 나섰는데, 어떻게 보나.
“보리치 정부가 리튬 자원을 관리하기 위한 좋은 정책을 채택해 국가에 중요한 수익을 제공하고 여전히 민간 투자자에게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2023년 4월, 리튬 산업을 국유화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리튬 계약은 칠레 정부 통제 아래 공공·민간 파트너십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C)에 따르면, 칠레는 세계 1위 리튬 매장국이자 세계 2위 리튬 생산국이다.
중남미 최대 경제 대국 브라질 통화인 헤알화의 가치 하락 원인 및 중기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기본적으로 브라질의 높은 재정 적자와 공공 부문 부채 때문에 헤알화가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효과는 불분명하지만 거시경제 안정은 뚜렷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점점 커지는 양극화는 정치적으로 복잡한 사안이 되고 있다. 좌파 또는 우파 정부의 집권 여부에 따라 경제정책도 영향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에도 좌파 정부가 지속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는 생각하고 있다.”
멕시코 자동차에 대한 미국발 관세 부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까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에서 성공적이었다. 특히 펜타닐과 같은 마약 카르텔 통제와 불법 이민 감소에 대한 협력이 그랬다. 자동차 산업을 제외하고 아직은 상황이 괜찮아 보인다.”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외교전에서 국경 병력 배치 등을 내세우고 관세를 유예 시키는 등 ‘실용주의 노선’을 펼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4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관세 협상과 관련, “셰인바움 대통령과 매우 생산적인 통화를 했다”고 언급했다.
- 1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 (USMCA·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
2020년 발효된 북미 3국 간 자유무역협정으로, 1989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을 개정 및 대체했다. 디지털 무역, 노동, 환경 규정 등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 있어 북미산 부품 비율 상향, 멕시코 노동 기준 강화, 데이터 자유 이동 보장 등 21세기 통상 환경을 반영한 조항이 포함됐다.
- 2콜롬비아의 세제 개혁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 주도하에 단행한 진보적 세제 개혁. 고소득자 및 대기업에 대한 증세가 이뤄졌다. 법인세의 경우 기존에 점진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하던 세제 혜택 법안을 폐지하고, 일부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선 일괄적으로 35%를 적용했다.
- 3포퓰리즘
정치 엘리트나 기존 정치체제를 비판하며, ‘순수한 국민 대 부패한 엘리트’라는 대립 구도를 내세우는 정치 이념 또는 전략. 대중의 감정과 요구에 영합하며 인기를 얻는 방식이 특징이며, 좌우파를 막론하고 나타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