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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얀 슈마커 댄포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 “기후 테크 핵심은 ‘데이터’… 친환경이 돈 되는 시대 왔다”
  • 이용성 기자
  • 덴마크는 세계적인 탈(脫)탄소 친(親)환경 모범국이다. 4월 30일 세계에너지총회(WEC)가 발표한 국가별 2023년 ‘에너지 삼중고 지수(EnergyTrilemma Index)’ 순위에서 100점 만점에 83.2점을 받아 스웨덴(83.1점)과 핀란드(82.7점), 스위스(82.1점) 등을 제치고 조사 대상 126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에너지 삼중고 지수는 WEC가 매년 세계 각국 에너지 시스템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지표다. 안정적 공급 가능성을 의미하는 ‘에너지 안보(30%)’, 가격 및 접근성 측면의 ‘에너지 형평성(30%)’, 환경 피해·기후변화 회피 노력을 평가하는 ‘환경 지속 가능성(30%)’ ‘국가 고유 특성(10%)’ 등 네 개 지표를 점수화해 산출한다. 올해 순위에서 한국은 73.1점으로 34위였다. 아시아에서 가장 순위가 높은 국가는 31위를 기록한 일본(75.0점)이다.1933년 창업한 댄포스는 그런 덴마크의 ‘국가대표’ 친환경 에너지 기업이다. EP100(사업장네 에너지 효율 30% 이상 개선), RE100(사업장 내 에너지를 100%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EV100(사업장 내전기차만 운행) 등 세 가지 친환경 운동에 모두 참여한 최초의 에너지 기업이기도 하다.


    한국을 포함해 21개국에서 100여 개의 생산 시설을 운영하며 4만2000여 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에너지·자동화 솔루션 기업이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타워에도 댄포스의 ‘HVAC(난방·환기·공기조절) 솔루션’이 적용돼 있다. 2022년 매출은 103억유로(약 15조원)였다. 전자제어·유압사업(Power Solutions), 냉난방 솔루션(Climate Solutions), 전기 모터 제어 솔루션(Power Electronics & Drives) 등이 주요 사업 분야다. 싱가포르에 있는 얀 슈마커(Jan Schoemaker) 댄포스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 대표에게 이메일을 보내 댄포스 기후 테크 솔루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슈마커 대표는 네덜란드 흐로닝언에 있는 실무 중심 명문대 한자대에서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네덜란드 경영대(BSN)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의우주항공·자동제어 기업 하니웰의 사업 개발 업무 등을 거쳐 1999년부터 25년 넘게 댄포스에 몸담아 왔다. 다음은 슈마커 대표와 일문일답.



    네덜란드 한자대 기계공학, 네덜란드 경영대(BSN) 경영학 석사, 전 하니웰 사업개발 담당 매니저, 전 댄포스 에너지 담당 상무


    기후 테크 솔루션을 중심으로 댄포스의 핵심 사업분야 소개 부탁한다.

    “장비의 생산성을 높이고,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은 줄이며, 전동·전장화(electrification)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댄포스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냉장·냉동과 냉난방, 에너지 저장, 전동기 제어, 자동화, 해양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태양광과 풍력을 비롯한 재생에너지와 스마트시티솔루션도 제공한다. 특히 별도의 기후 솔루션 전담 조직(댄포스 클라이밋 솔루션)을 통해 건물과 콜드체인(온도에 민감한 제품의 유통, 저장, 운송 등의 과정에서 일정한 저온을 유지하는 체계), 기반 시설(인프라)과 산업 시설 등에 지속 가능한 냉난방 솔루션을 공급 중이다. 댄포스의 파워 일렉트로닉스 부문을 통해 청정에너지 솔루션도 제공한다.”



    역사가 90년이 넘었는데 친환경 사업으로 방향을 정한 계기가 있었을까.

    “댄포스에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여정’은 매즈클라우센이 덴마크 노드보그에 있던 부모님의 농장에서 댄포스를 창업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세계 최초의 온도 조절식 팽창 밸브(ThermostaticExpansion Valve·온도를 감지하고 증발기 출구에서 과열을 제어함으로써 증발기의 액체 냉매 흐름 조절)와 라디에이터 온도 조절기 등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컴퓨터 기술을 디자인과 친환경 기술에 본격적으로 접목하기 시작했다. 댄포스 DNA에 내재된 ‘지속 가능성’은 생산성은 높이고 에너지 소비는 줄일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기후 테크 기술이 보다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 하려면 ‘측정’ 기술의 정확도를 믿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친환경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데이터’다. 데이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댄포스는 에너지 소비를 비롯해 친환경 전환 관련 데이터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몇 가지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다. 시스템의 정확도를 높이고 의미 있는 정보를 저장해 실시간 의사 결정을 돕는 내장형 센서 ‘인텔리전트 드라이브’와 최적의 냉난방을 위해 다양한 건물 내부 에너지 흐름을 초음파를 사용해 측정하는 ‘댄포스 소노’가 대표적이다.”



    전 세계 탄소 배출 감축에 기여하는 지속 가능 투자 자산 현황

    단위: 달러 | 자료_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2021년)



    건물 내부 에너지 측정이 중요한 이유는 뭔가.

    “대부분의 사람은 일과 중 상당 부분을 밀폐된 건물 안에서 보낸다. 건물 냉난방으로 상당한 비용 지출이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스마트 빌딩 솔루션이 도입되면서 비용 절감은 물론 보다 효율적이고 매끄러운 공조 시스템 운용이 가능해졌다. 스마트 센서를 통해 건물 내부 인원 등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그에 맞게 내부 온도와 습도 등을 최적화 할 수 있다. 에너지와 비용 효율적인 스마트 빌딩 솔루션 제공은 물론 사용자에게 보다 편안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목표다. 


    댄포스의 스마트 빌딩 솔루션은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과 전력 소모를 줄이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돕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의 40%는 건물에서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 건물을 친환경적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건물 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데다, 임차인인 기업들이 탈(脫)탄소 목표 달성을 위해 친환경 건물을 앞다퉈 찾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건물의 수요가 치솟으면서 일반 건물보다 매매가와 임대료가 높게 형성되는 ‘녹색프리미엄’도 뚜렷해지고 있다. 글로벌 종합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가 2022년 2만 개의 미국 사무실을 연식·위치 같은 변수를 모두 통제해 조사한 결과 친환경 인증 건물의 임대료가 비(非)인증 건물보다 4%가량 높았다. 또 다른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세빌스 조사에서도 친환경 사무실이방콕·싱가포르에선 18%, 서울·홍콩에선 10%, 상하이와 타이베이에선 6% 정도 더 높은 가격에 임대계약을 맺었다. 

    댄포스 창업자 매즈 클라우센의 생전 모습.


    덴마크 노드보그에 있는 댄포스 본사. 댄포스



    저탄소 친환경 전환에 따른 기업 비용 부담이 크다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다를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방향으로 바꾸지 않으면 오히려 비용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보고서가 여러 번 나왔다. 기후변화는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건 확실하게돈을 버는 방법이기도 하다. 기업은 물론이고 개인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 탄소 배출 감축은 물론이고 전기 요금도 줄어들지 않겠나. 에너지 가격이 치솟는 상황이라면 더 그럴 수밖에 없다.”



    매출 15조원 매출의 선도적인 기업치고는 마케팅 활동이 조용한 편인 것 같다.

    “댄포스의 앞선 경쟁력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통한 지속 가능성 제고를 기반으로 한다. 당연히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진실성과 투명성에 대한 기준이 높다.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파트너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경친화적(environmentally friendly)’ 같은 막연한 표현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확인 가능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확한 표현만 사용한다. 이러한 노력은 댄포스가 여러 변화의 시기를 겪으면서도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됐다.”



    한국에서도 여러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지 않나.

    “스마트 빌딩, 데이터 센터, 콜드체인, 해양·조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과 협력하고 있다. 특히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협력을 다수 진행해 왔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댄포스의 HVAC 솔루션을 적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롯데 월드타워는 매년 약 5000㎿의 전력 소모를 줄이고 있다. 약 200가구가 연간 사용할 전력을 절감하는 셈이다.댄포스는 지난해 SK와 덴마크 노드보그에 위치한 댄포스 본사에서 기후변화, 도시화, 디지털화, 전기화, 식량·수자원 공급 등 5대 글로벌 트렌드 영역에서 긴밀하게 협력하는 내용의 업무 협약(MOU)도 맺었다. 여기에는 전기차, 에너지 인프라, 전기차 충전기 등의 전력 변환을 제어하는 핵심 부품인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 반도체, 태양광과 태양열 투과율을 조절하는 스마트 글라스, 전기차용 급속 충전기 등을 중심으로 공동 태스크포스(TF) 출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덴마크 정부도 댄포스에 힘이 되고 있나.

    “친환경 기술의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부쩍 커진 덕분에 덴마크는 관련 분야의 리더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경제도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덴마크 친환경 산업 규모는 1740억 덴마크크로네(약 35조원)에 달했다. 고용 규모는 5만9000명에 달했다(덴마크 인구가 590만 명이 조금 넘는 것을 고려하면 적은 숫자는 아니다). 세계 무대에서 댄포스의 혁신적인 솔루션을 선보이고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덴마크 정부는 다음 세대를 위한 긍정적인 변화에 계속해서 헌신할 것으로 믿고 있다.”덴마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 속도가 두드러지게 빨랐다. OECD는 청정 경제로의 발빠른 전환을 그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