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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정수종·최종웅·한상엽 기후 테크 전문가 3人 “기후 테크는 국가 신성장 동력… 스타트업·대기업·정부 삼각 협력 중요”
  • 심민관 기자
  • (왼쪽부터)정수종 서울대 기후테크센터장, 최종웅 인코어드 대표,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가 서울 강남구 인코어드 회의실에서 대담을 하고있다. ‘통상’

    유럽연합(EU)이 2023년 10월 탄소 국경세를 시범 도입했다. 이에 따라 시멘트, 전기, 비료, 철강, 알루미늄, 수소 등 6개 제품군을 EU에 수출하는 기업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분기별로 EU에 보고할 의무가 생겼다. 유럽은 2026년 1월 탄소 국경세를 정식 도입한다. 미국도 석유화학, 철강, 유리, 제지 등 12개 수입 품목에 대해 탄소 배출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청정경쟁법(CCA⋅Clean Competition Act)’ 도입을 추진 중이다. 


    기후 위기에 대한 이 같은 대응 조치는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기업에 비용 부담 증가라는 위기와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라는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탄소 감축과 기후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기후 테크 시장이 대표적인 기회로 꼽힌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퓨처마켓인사이트는 글로벌 기후 테크 시장 규모가 2033년 약 1825억달러(약 249조3680억원)로 2023년(약 203억달러⋅27조7392억원) 대비 아홉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후 테크 시장 선점을 위한 투자는 미국, EU,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글로벌 데이터 조사 업체 홀론아이큐에 따르면 2022년 국가별 기후 테크 투자액 규모는 미국(286억달러⋅약 39조790억원), EU(179억달러⋅약 24조4585억원), 중국(107억달러⋅약 14조 6204억원)순으로, 전 세계 기후 테크 투자액 가운데 80% 이상이 이 세 개 국가에 집중됐다.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만큼 향후 기후 테크 산업이 한국의 신수출 동력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정부가 2030년까지 10개 이상 기후 테크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을 키우고 관련 수출 규모 100조원 달성을 위해 민관 공동으로 145조원을 투입하겠다고 2023년 발표한 배경이다.한국이 기후 테크 산업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얻으려면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 ‘통상’이 정수종 서울대 기후테크센터장, 조지 소로스가 투자한 에너지 관리 플랫폼 업체 인코어드의 최종웅 대표, 기후 테크 전문 투자사인 소풍벤처스의 한상엽 대표 등 3인에게 국내 기후 테크 산업의 생태계 현황과 향후 발전 방향 등을 물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 박사, 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현 대통령직속 2050 탄소중립 ‘통상’ 녹생성장위원회 위원


    기후 테크가 최근 주목받는 이유는.


    정수종 서울대 기후테크센터장(이하 정수종) “기후 위기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위기의 근간에는 결국 인간의 경제⋅산업 활동으로 인한 막대한 탄소 배출이 있다. 경제성장과 탄소 배출을 디커플링(decoupling⋅분리)하는 새로운 기술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후 테크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별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많은 자본이 투입되고 있다는 점도 기후 테크가 주목받는 이유다.” 


    최종웅 인코어드 대표(이하 최종웅) “이상기후 현상,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위기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다룬 국제 협약 체결 등 국제사회에서의 정책 변화뿐 아니라,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세제 혜택 같은 정책 지원도 영향을 줬다. 무엇보다 환경을 신경 쓰게 된 소비자의 의식 변화도 기후 테크가 부상한 배경 중 하나다. 기후 테크는 단순한 기후 문제 해결을 넘어, 경제적인 기회 창출과 지속 가능 발전을 이끄는 신성장 산업 분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기후 테크로 돈이 몰리는 걸 실감하나.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이하 한상엽) “기후 테크 회사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 외에도 사실 각국의 기후 위기 대응 관련 정책 자금을 고려하면 더 많은 자본이 관련 시장에 몰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친환경 에너지 생산과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3690억달러(약504조2016억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EU는 ‘리파워(REPower) EU’ 정책에 따라 약 2100억유로(약311조2767억원)를 투자해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원 중 재생에너지 비중을 최대 45%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 정부도 2030년까지 420조원의 기후 위기 대응 관련 정책금융을 공급하겠다고 지난3월 밝혔다. 이처럼 정책 자금 측면에서도 기후 테크 관련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활발한 자금 유입이 이뤄지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기후 테크가 발전해야 하나.

    정수종 “우선, 당장 온실가스 발생을 줄이고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술 산업 육성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건물이 탄소 배출량이 많은데, 지금 당장 건물이 뿜어내는 탄소를 없앨 수는 없기 때문에 건물 에너지 효율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술 개발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거나, 최적의 배출 전략을 찾아야 한다. 그린 철강1),그린 시멘트2)나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같은 분야에서도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기후 테크가 발전한 국가는.

    최종웅 “미국이다. 미국은 금융이 발전한 나라이기 때문에 투자가 활발히 일어나는 곳이다. 투자뿐 아니라, 각종 세제 혜택 등 금융 중심 지원 정책이 기후 테크 강국의 밑거름이 됐다. 이런 환경 때문에 좋은 기술 업체들이 사업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몰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시장이 커지면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졌다. 우리 회사(인코어드)도 본사는 미국에 있다.” 


    한상엽 “중국이다. 중국은 시장 사이즈가 큰 곳이라 자체적으로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 중국정부는 2022년 한 해에만 청정에너지에 약 5460억달러(약 746조544억원)를 투자했는데, 세계 최대 규모였다. 중국은 기후 산업이 미래 패권 산업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어서다. 미국과 유럽도 기후 테크 산업의 중요성을 최근 인지하기 시작했다.”



    부산대 기계공학, 충남대 컴퓨터공학 석·박사, 현 한국공학대 에너지전기 공학과 석좌교수, 전 국제 전기전자표준위원회 국제위원, 전 LS산전 사장



    미국·유럽·중국에 쏠린 기후 테크 투자

    단위: 달러, % | ※ 2022년 기준 | 자료_홀론아이큐


    국내 기후 테크 생태계는 어떤가.

    정수종 “스타트업을 기준으로 본 국내 기후 테크시장 규모는 해외에 비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 들어 투자가 급격히 증가하고는 있지만 후발주자인 한국에는 아직 기후 테크 유니콘이 없다. 대부분 초기 단계 투자 유치를 받은 스타트업만 상당수 분포해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미국, EU등 기후 테크 선진국과 달리 대기업 중심으로 기후 테크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 태양광, 배터리 분야에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하지만 더 빠르고 과감한 기술혁신을 위해선 정부와 민간의 주도하에 스타트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종웅 “기후 테크 분야에서 국내 스타트업은 기술 개발 한계에 봉착하거나 자금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이 중심이 돼 관련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아직은 국내 기후 테크 생태계 안에서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영역이 명확하게 나눠지지도 않았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기업과 스타트업 각 사의 경쟁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뉠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기후 테크 플랫폼 사업 영역은 스타트업이, 대규모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시스템) 서비스 시장은 대기업이 역할을 담당하는 게 적합할 것 같다.”



    연세대 경영학, 전 메디아티 대표, 전 라이프브릿지그룹 대표


    한국에서 기후 테크 산업이 발전하려면.

    정수종 “국내의 경우 기후 테크 시장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에 정책적인 투자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먼저 투자 재원의 확보가 중요하다. 확보된 투자 재원은 연구개발(R&D) 지원, 탄소 중립형 시설 전환 지원,인력 재교육, 신규 일자리 창출 등에 사용함으로써 기후 테크의 경제적·사회적·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데 써야 한다. 기후 테크 발전을 위해선 국가의 미래 경쟁력이 기후 테크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는 인식의 확산도 필요하다.”최종웅 “기후 테크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대한투자가 필요하다. 초기 단계 기후 테크 기업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 진입을 할 수 있도록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해외 컨설팅을 받아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을 주로 고려하는데, 한국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후 테크 관련 스타트업 M&A가 활발해져야 한다.”


    한상엽 “기후 테크 산업의 특성상 거시적인 정책과 맞물려 시장 진입을 해야 하므로 정책과 연계가 매우 중요하다. 대기업과 협력도 중요하다. 개별 스타트업이 훌륭한 기술과 맨파워를 가지고 있더라도 정책과 연계가 없고, 대기업과 협력이 없으면 PoC(아이디어나 제품, 서비스의 실현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 단계부터 기회를 찾기 어렵다. 기후 테크 스타트업은 대기업 또는 정부와 함께 장기적이고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 빠르게 커지는 기후 테크 시장

    단위: 달러 | 자료_퓨처마켓인사이트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주목할 기술은.

    최종웅 “모든 것의 기본은 데이터라고 생각한다. 발전원에서 에너지 수요처 말단까지 에너지 생산과 소비에 대한 모든 데이터가 확보돼야 예측이 정확해지고, 에너지 사용 최적화가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한상엽 “기후 테크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를 꼽으라면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3%가 에너지를 생산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블룸버그의 ‘2023년 에너지 전환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에 신규 설치된 발전 시설 용량(424GW) 중 재생에너지원 비중이 80%를 차지했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은 이제 저렴한 에너지원이 됐고, 관련 시장 확대 속도가 빨라지고 있지만, (재생에너지 데이터를) ‘엔드 투 엔드’3)로 연결해 주는 (에너지 수요 관리 플랫폼 같은) 분야는 아직혁신이 더 필요하다. CCUS 기술과 스마트 그리드,(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 기술 발전 역시 중요하다.”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기후 테크에 미친 영향은 없나.


    정수종 “EU의 탄소 중립 선언 이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해 잘나가던 탄소 저감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전쟁이라는 새로운 복병으로 인해 재생에너지 보급 확산이 막혔고 오히려 메탄이 주원료인 도시가스 생산을 부추기는 상황이 벌어졌다. 흥미롭게도 전쟁이라는 외부 요인이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의 간헐성이라는 최대 단점을 부각했다. 결국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은 한 국가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할 요인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에너지 수급의 안보 문제는 결국 새로운 기후 테크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에너지 수급 안보 문제 해결을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저장, 분배 기술을 고도화하면, 이는 결국 기후 테크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용어설명

    • * 그린 철강(1)

        탄소 배출 없이 생산한 철강



    • * 그린 시멘트(2)

        탄소 배출 없이 생산한 시멘트



    • * 엔드 투 엔드(3)

      필요한 정보를 송수신 양쪽에서 직접 교환하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