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교수, 성균중국연구소장, 국가전략대학원장 사진 한경DB
자연현상이나 인간 행위의 결과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리스크(Risk)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모든 국가는 숙명적으로 리스크를 가지고 있고 국정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위기는 발생가능성, 위험성, 복잡성, 지속성으로 구분할 수 있고 이에 대한 특정 국가의 대응수준을 고려해 위기지수를 판별해낼 수 있다. 오늘날 국제사회의 가장 강력한 변수 중 하나는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지닌 중국의 부상(浮上)이다.
중국의 부상(浮上)이 세계경제의 성장엔진이 되면서 많은 기회를 창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이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점차 서구국가들과 ‘가치의 거리’가 벌어질 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블랙홀이 되어 기존 국제경제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고 대중(對中) 무역의존도가 25%에 달한다. 양국의 인적교류 역시 연간 1,00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차이나 리스크는 실시간으로 한국에 전파될 수밖에 없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발 미세먼지, 원자력 안전, 황허 오염, 해상충돌 등 다양한 갈등이 위기국면을 조성하기도 했다. 여기에 한국과 중국의 국내 정치가 쉽게 안보화(Securitization)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한중 수교 이후 짧은 허니문을 제외하고는 양국의 국가이익을 둘러싼 갈등이 점차 증가하는 가운데 주기도 짧아지고 있으며 휘발성도 높다. 특히 중국이 부상하면서 양국 경제관계는 보완성보다 경쟁성이 강화되고 중국의 한국에 대한 전략적 가치도 줄어들었다. 실제로 중국은 미중 관계의 틀에서 한반도 문제를 처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첫째, 한중 수교 이후 차이나 리스크를 처음으로 각인시킨 것은 2000년 6월에 발생한 마늘분쟁이다. 이 사건은 수교 이후 한중 관계의 밀월기가 끝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국 농협중앙회는 국내 마늘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산 마늘에 대한 무역구제조치를 요구했고, 그 일환으로 2000년 6월부터 100일간 잠정적 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또한 2003년까지 중국산 냉동마늘과 초산조제 마늘의 관세율을 30%에서 315%로 올리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했다. 이에 중국은 예고한 대로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보복조치를 단행했다. 중국의 보복조치는 국제관례에 어긋난 것이지만, 당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자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중국은 휴대폰 수입중단을 해제하고 한국은 단계적으로 중국산 마늘의 관세율을 조정하는 한편 세이프가드 시한을 단축하는 형태로 절충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 차이나 리스크는 마늘농가 보호라는 국내 정치적 고려가 과도하게 무역문제에 작용했고, 몇 차례 협상안을 수정하는 등 정책적 오류도 있었으며, 당시 농림부와 농협중앙회 등 이익집단이 참여하면서 당초부터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둘째, 2002년 중국이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통해 고구려사를 일방적으로 왜곡하면서 인식의 차원에서 차이나 리스크가 부각되었다. 한국은 비등한 여론을 등에 업고 협상과 양보가 불가능한 존재론적 안보(Ontological Security)로 접근했고, 2004년 고구려연구재단(현 동북아역사재단 전신)을 설치하면서 배수의 진을 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2004년 8월 한중 양국은 5개 항의 구두합의에 합의하면서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쟁점은 남겨두고 공동으로 연구하자’는 합의의 골자와 같이 양국 모두 ‘역사문제의 정치화’에 큰 부담을 느꼈다. 당시 중국은 역량을 경제발전에 집중했기 때문에 한중 간 역사 인식의 차이를 제로섬 게임으로 몰고 가기에는 명분과 실리에서 모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중국은 청사(淸史)공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지속적으로 역사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고 한국의 민족주의 여론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리스크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즉 한중 관계가 나빠질 경우 이러한 쟁점은 쉽게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셋째,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계기로 중국이 안보문제를 경제보복으로 연계한 사건이다. 당시 한미 양국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고자 경북 성주에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보복했다. 비록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10월 말, 이와 관련한 양국 간 ‘협의결과’를 발표하고 급한 불을 껐지만 온라인을 통한 중국 단체관광 모집, 전세기 취항, 크루즈 한국 취항, 자동차 배터리 보조금 지급,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을 규제하는 한한령(限韓令)과 롯데에 대한 경제적 보복현상 등은 해소되지 않은 채로 있다. 실제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상대적으로 중국은 이를 활용해 자국 문화산업 정책을 적극적으로 진흥시키고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등 기회로 삼았다. 이러한 사드 문제는 미중 관계라는 외생변수가 한중 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안보와 경제를 연결하는 중국 외교 행태의 리스크라는 점을 방증해주었다.
넷째, 2018년 봄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마찰이다. 이것은 미중 관계가 협력 대신 갈등 국면에 접어들면 한국의 전략적 선택의 난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미중 전략경쟁의 본질은 단순하게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전쟁과 가치경쟁으로 발전하는 등 항상적인 위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지난 1월 15일 미중 양국은 지루한 협상 끝에 1단계 합의를 도출했다. 중국은 쇼핑리스트를 만들어 미국산 농산품 등을 대량 구매하고 미국도 중국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부분적으로 유예 또는 취소하고,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을 철회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무역마찰 속에서 양국 모두 상호인식의 차이를 넓혔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불신 속에서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체계 대신 지역가치사슬(Regional Value Chain) 또는 홍색공급망(Red Supply Chain)을 통해 기술 자주화와 제품 국산화를 강화하고자 할 것이다. 한편 미국도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중국의 부상이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해 도전할 것으로 보고 대중 견제를 강화하고자 할 것이다.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화웨이에 대해 미국이 안보위협을 명분으로 공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삼성 등 우리 대기업이 제3국 시장진출을 확대하는 부수적 효과가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을 둘러싼 한중 경쟁구도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이번 ‘코로나19’ 사태다. 이것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인명피해와 경제적 침체를 가져오고 있으며, 무엇보다 취약한 거버넌스 속에서 ‘전염의 공포’가 중국 사회를 덮고 있다. 문제는 이를 해결한다고 해도 중국 사회 전반에 미치는 후폭풍은 상당히 지속될 전망이다. 즉 그동안 중국의 부상은 엄밀한 의미에서 ‘질 좋은 발전(Quality Development)’은 아니었고, 당이 결심하기 전까지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정치시스템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사실 전염병과 같은 질병문제가 중국의 가장 결정적 요소(Fault Line)라는 것은 많은 전문가가 여러 차례 밝혀왔다는 점에서 일종의 ‘예고된 위기’인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중국의 전염병이 매주 1,000여 편 이상의 항공편이 있고 1,000만에 달하는 인적교류가 있으며, 경제적 상호의존이 깊어진 한국에 미칠 영향력은 가공할 수준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일부 조사에 의하면 코로나19로 한국 기업의 62%,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80% 이상이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실제로 부품 및 소재의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공장가동률이 크게 줄었고, 무엇보다 중국인의 관광으로 최적화된 한국 면세점, 엔터테인먼트, 숙박, 항공업 등 소비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한중 수교 이후 지속되고 있는 차이나 리스크는 한국 경제가 성장기에는 충격을 쉽게 흡수할 수 있었지만, 현재와 같은 경기 침체기를 겪고 있고, 무엇보다 한중 경쟁이 치열해진 상태에서 한국의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특히 최근 차이나 리스크는 매우 복합적이다. 이러한 위기가 순차적으로 발생한다면 중국이 현 수준의 거버넌스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다양한 위기가 동시에 병목구간을 통과할 경우에는 상당한 위험요인이 될 전망이다. 문제는 차이나 리스크가 비단 중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경제에 그대로 전파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유수 기업들이 중국 탈출을 모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이웃 국가인 한국의 차이나 리스크 대응전략은 시급하다. 아이디어 수준에서 여과 없이 나오고 있는 것도 있지만 고려할 만한 정책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중국 무역의존도를 낮추어 경제와 안보의 위험을 완충하자는 주장이 있다. 중국에 대한 의존이 깊고 중국의 가치사슬체계에 깊이 연루될수록 안보 리스크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시장 및 무역 다변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시장인 중국에서 혁신을 통해 생존하지 못하는 기업이 다른 지역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국이 복제 불가능한 전략산업과 한계산업을 섬세하게 구분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둘째, 차이나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한국 공공외교의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 공공외교의 궁극적 목표는 상대국가 국민의 마음(Hearts and Mind)을 사는 것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 그리고 민간에서 취한 신속하고 따뜻한 지원은 중국 국민의 마음을 얻었다. 이러한 상호이해를 확장한 경험은 상위정치(High Politics)의 부담을 상대적으로 줄여주면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활동공간을 확대하는 데 좋은 역할을 할 것이다.
셋째, 차이나 리스크는 양자 문제를 넘어 지역으로 전파되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생명공동체, 건강공동체 차원에서 이를 논의할 수 있는 다자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다자경제 및 다자안보 무대에서 질병과 환경과 같은 비전통 안보문제를 핵심적인 의제로 제시하고 지속가능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차이나 리스크는 미국 요소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한국이 중립화와 홀로서기 또는 미국과 중국에 대한 편승전략을 정책대안으로 삼기 어렵다면, 최소공약수를 찾기보다는 최대공배수를 찾는 확대균형(Expanded Equilibrium)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이때 복합 차이나 리스크의 일괄타결을 목표로 접근하기보다는 사안별로 선택적 지지(Issue Based Support)를 선택하고 이를 외교자산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다섯째, 한중 관계가 전방위적으로 발전한 상황에서 모든 위기요소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최대한 위기예방에 주력하는 한편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이를 신속하게 관리하고 극복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차이나 리스크의 특성상 복잡한 요소가 얽혀 있다는 점에서 톱다운 방식의 수직적 해법 대신 문제를 중심에 두고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수평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위기관리의 핵심은 한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2020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한중 관계를 내실화할 수 있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공동체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지역과 한반도 현안을 함께 논의하는 책임공동체다. 실제로 한중 양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방법론과 목표에서 인식의 공감대가 넓다.
둘째, 경제이익을 공유하는 이익공동체다. 한중 관계를 긴밀하게 결합할 수 있는 실질적 교량은 양자의 경제이익을 공유하고 역내 경제에도 기여하는 트리플 윈(Triple Wins)이 생길 때 지속가능하다.
셋째, 한중의 인적·문화 교류의 폭발적 성장을 반영한 인문공동체다. 비록 코로나19로 교류가 중단되고 있으나 향후 지속가능하고 체감할 수 있으며 쌍방향적인 교류의 내실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두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오래된 교훈이 있다. 위기가 항상적이라는 점에서 ‘원칙 있는 유연성(Principled Flexibility)’ 아래 구비한 위기대응시스템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