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폐허 위에 세워진 산업도시
하노버

글·사진 이형준 여행 작가, <유럽동화마을여행> 저자

독일 중북부 라이네 강변을 따라 조성된 하노버(Hannover)는 유서 깊은 고도다. ‘높은 강둑’이란 의미를 지닌 하노버는 라이네(Leine)강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다. 평범한 마을 하노버는 14세기에 한자동맹(Hansa同盟)에 가입하면서 국제적인 교역도시로 위상을 높였다. 영국 왕을 배출한 하노버 공국 시절에는 정치도시로 명성을 얻기도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되는 아픔도 겪었다. 하노버는 오늘날 유럽 최대 박람회 개최지이자 교통 요충지로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신시청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하노버의 풍광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하노버는 새로 태어났다. 왕가의 품격을 잃지 않은 채 독일 고속철도의 역사가 시작된 첨단도시로, 유럽 최대의 산업박람회가 열리는 산업도시로. 시내 곳곳에는 넓은 녹지대가 조성되어 있어 초록의 대도시로도 불린다. 이처럼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에 한쪽 면만 보고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없는 도시 하노버의 매력을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들여다보자.

하노버는 유럽의 심장으로 불린다. 하노버의 관문인 중앙역과 지하상가
하노버의 상징적인 건축물, 신시청사
철도왕국의 시발점 중앙역

하노버의 열차 노선과 도로는 거미줄처럼 사통팔달로 연결되어 있다. 교통 요충지 하노버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곳은 중앙역(Hauptbahnhof)이다. 하노버 중앙역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독일 철도(Deutsche Bahn)의 중심지다. 독일 고속철도 이체에(ICE; InterCity-Express)의 시험운행은 1990년 하노버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1991년 2월 28일 ICE 일반승객을 태우고 뷔르츠부르크(Würzburg) 중앙역까지 운행을 시작한 곳도 하노버 중앙역이다. 상업운행을 시작할 당시 ICE 최고 속도는 시속 250km로 당시 지상에서 가장 빠르고 편안한 열차였다. 하노버 중앙역은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비해 작지만 열차의 도착과 출발을 알리는 사인보드는 훨씬 빈번하게 바뀐다.
독일 교통의 중심지 하노버 중앙역 광장에는 빨간 선이 도심 방향으로 길게 표시되어 있다. 여느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빨간 선은 누구나 쉽게 명소를 둘러볼 수 있는 여행루트다. 이 선을 따라 7~8분 걸으면 하노버 오페라하우스(Staatsoper)와 마주하게 된다.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완성된 하노버 오페라하우스는 멋진 주랑과 조각도 압권이지만 전통과 실험 오페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레퍼토리 공연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페라하우스는 하노버 출신의 건축가 게오르크 루트비히 프리드리히 라베스(Georg Ludwig Friedrich Laves)의 작품으로 많은 시민에게 사랑받고 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신시청사(Neues Rathaus)까지는 도보로 10분이면 도착한다. 하노버 상징인 신시청사는 1913년 모습을 드러냈다. 궁전과 성을 연상시키는 신시청사는 바로크, 네오고딕, 분리주의 양식 등 여러 건축양식을 절충하여 완성했다. 견고하고 딱딱한 외관과 다르게 내부는 너도밤나무 소재로 마무리해 푸근함이 느껴진다. 신시청사를 찾는 목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다수는 전망대에 올라 도시와 주변 풍광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높이 100m에 이르는 전망대에 오르면 라이네강을 따라 조성된 언덕과 강변, 도심은 물론 멀리 하르츠산맥(Harz Mts)까지 보인다. 신시청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원래 설계대로 복원한 건물이다.

폐허 위에 세워진 구시가지

신시청사에서 빨간 선을 따라 10분쯤 이동하면 세월의 흐름이 감지되는 구시가지를 만나게 된다. 구시가지는 마르크트 광장을 중심으로 교회와 구시청사, 고풍스러운 주택과 건물이 모여 있다. 구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마르크트 교회는 도시 역사를 대변하는 곳이다. 이 교회는 시민들의 힘으로 건축하고 복원한 유적이다. 이 지역에 삶의 터전을 둔 상인들의 기부금으로 시작한 첫 번째 공사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본 설계보다 축소된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14세기에 건축된 독일 신고딕 양식의 마르크트 교회는 여러 차례 발생한 화재와 전쟁으로 파괴되었다. 교회가 훼손될 때마다 상인, 시민들이 힘을 모아 복원했다.
마르크트 교회 옆으로 하노버 구시청사가 있다. 네오르네상스와 네오고딕 양식으로 완성한 건물은 동화 속 고성을 연상시킨다. 구시청사는 시민들에게 특별한 장소다. 19세기 말 재개발로 철거될 위기에 처했는데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뾰족한 벽공과 섬세한 조각 및 장식으로 단장된 구시청사는 1943년 연합군의 대공습으로 크게 파손되었다. 구시청사는 전쟁 후 세 차례 복원과정을 걸쳐 현재에 이른다.
마르크트 교회와 구시청사 주변에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간직한 아담한 건축물들이 신작로를 따라 조성되어 있다. 이런 건축물이 40여 채에 이른다. 하나같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킬 만큼 아름답지만 처음 세워질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은 드물다.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것을 복원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곳을 복원한
구시가지 바닥에 주요 명소를 연결한 빨간 선이 보인다.
마르틴 루터 사상을 이어온 교회임을 보여주는
마르크트 교회 옆에 세워진 루터 동상
마르크트 광장을 대표하는 구시청사와 마르크트 교회
왕가의 향기가 녹아 있는 공간

하노버에는 왕가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명소도 많다. 그중 대표적인 곳은 라이네 성과 헤렌하우젠 궁전이다. 도심에 위치한 라이네 성은 1291년 수도원 터에 세워진 성이다. 이 성은 군사적인 목적보다 하노버 왕가의 궁전으로 1837년부터 1866년까지 사용되었다. 현재 니더작센주 의회청사로 사용되는 성도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하노버 외곽에는 옛 하노버 공국의 여름별장인 헤렌하우젠 궁전(Schloss Herrenhausen)이 있다. 이 궁전은 건물보다 부속공간인 정원이 더 유명하다. 기하학적인 디자인과 웅장한 분수로 이루어진 이 정원은 ‘독일의 베르사유 정원’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 특히 500~800종에 이르는 난초가 전시된 식물원이 가장 큰 자랑거리다.
헤렌하우젠 정원은 영국 왕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환상적인 정원을 조성한 인물이 영국 왕 조지(George) I세의 어머니 조피(Sophie) 공작부인(황태자비 작위를 받지 못함)이다. 영국 왕의 어머니가 하노버에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한 사연은 조지 I세가 하노버 왕조 출신이기 때문이다. 하노버 공국과 영국 왕실은 동맹과 혈연을 맺었던 왕조로 영국 왕실에서 하노버 공국을 다스리기도 했다. 헤렌하우젠 정원도 주요 유적지처럼 제2차 세계대전으로 훼손되어 복원한 것이다. 헤렌하우젠 정원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특히 여름이면 정원을 배경으로 열리는 연극, 뮤지컬, 음악회, 불꽃놀이 등을 관람하기 위하여 많은 방문객이 이곳을 찾는다.
한국인에게 하노버는 ‘산업도시’로 알려져 있다. 연중 박람회가 열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박람회가 흔한 독일에서도 가장 유서 깊은 산업박람회가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하노버 산업박람회가 세계적인 박람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의 우수한 산업 기반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하노버는 오랫동안 산업과 교역 도시로서 위상을 떨치며 철광석과 은 같은 산업자재를 주로 거래했다. 풍부한 은과 철광석이 산업도시로서의 기반을 마련해준 셈이다. 그러나 하노버는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88번에 걸쳐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 도심과 공장 밀집 지역이 대부분 파괴되었다. 도시의 절반 이상이 폐허가 된 하노버는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도 도시를 복원하고 끊임없이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산업박람회의 대명사가 되었다.

나무와 벽돌을 이용해 그림처럼 아름답게 완성한 구시가지 건축물
‘독일의 베르사유 정원’이란 애칭을 가진 헤렌하우젠 정원. 기하학적인 형태가 특징이다.
독일 하노버에서 주목해야 할 통상 이슈
유럽 최대의 산업박람회 Hannover Messe

매년 4월이면 하노버에서는 지상 최대 규모의 산업박람회(Hannover Messe)가 개최된다. 기계부터 자동화 설비와 운송, 로봇, 물류 등 산업 전반에 걸친 제품이 선보이는 박람회로 1947년 처음 열렸다. 올해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프랑스, 스위스, 미국, 중국, 인도, 일본 등 80여 개국이 참가할 예정이다. 단 올해는 코로나19로 전시일정을 7월 13~17일로 연기했다. 전 세계 주요 산업국가가 모두 참여하는 산업박람회답게 박람회장으로 사용하는 공간도 36만9,400㎡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