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일본 정부는 한국에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공정의 3대 핵심소재 수출을 규제한 데 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우대국)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우리 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지난 1년간 국민과 기업, 정부가 합심해서 적극 대응함으로써 슬기롭게 극복 중이다. 정부는 특정국가 의존에서 벗어나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흔들림 없이 강력히 추진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간의 방어적 정책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GVC) 재편에 선제적·공세적 전략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핵심품목의 공급 안정화와 자체 기술 확보 등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추진해왔다.
특히 100대 핵심품목을 선정하고 국내 생산 확충, 수입국 다변화, 자체 기술 개발 등을 중점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1년을 맞은 지난 7월에는 ‘소부장 2.0 전략’을 내놓고 이 핵심품목을 338개로 3배 이상 확대했다.
좋은 소부장을 수입할 수 없다면 직접 만들어서라도 쓰려는 이유는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 자동차 등 제조업이 차지하는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 전체 수출액의 17.3%는 반도체가 담당했다.
이러한 경쟁력 강화 노력의 성과는 일본이 수출규제를 한 지 1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우선 민간과 정부가 긴밀히 협력하여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국내 산업현장에서 단 1건의 생산 차질도 없었다.
그리고 직접적 수출규제 대상이었던 3대 품목의 공급안정화에 뚜렷한 진전이 있었다. 특히 고순도 불화수소의 경우 액체와 가스 모두 자체 생산에 성공했다.
액체 불화수소는 반도체의 불순물을 씻어낼 때 사용하는 소재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전에는 일본 스텔라케미파, 모리타화학공업 등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수출했다. 규제 이후 올 초 국내 솔브레인, 램테크놀러지 등이 일본산을 대신할 만한 제품을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나머지 두 품목은 수입액 중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다. 한국 기업들은 현재도 일본으로부터 많은 재료와 부품, 장비를 수입하고 있다. 일본이 아니더라도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 대신 수입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 단기간에 질 좋은 소재나 부품, 장비를 만들어낼 수 없어서다.
소재와 부품, 장비는 아주 작은 차이로도 품질이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20~30년 전부터 노하우를 쌓은 선진국 업체들을 1년 만에 따라잡기는 힘들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소식에 산업계 등에서 우려가 많았던 것은 소재가 각종 산업에 중요할 뿐 아니라 특히 장기간 일본산에 의존해온 탓에 단기간에 다른 제품으로 교체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었다.
소부장 산업은 우리 제조업의 근간이자 경쟁력의 핵심으로 혁신제품 개발의 원동력이자, 제조업 부가가치 상승의 원천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도 경량화, 융복합화, 스마트화 등을 구현하는 소부장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소부장 분야 핵심 기술력과 안정적 공급역량 확보를 통해 근본적으로 산업체질을 개선하여 대외 의존을 탈피하고 질적으로도 제조 강국으로 도약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중장기적 시야를 갖고 대외 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소부장 경쟁력 강화 정책을 일관되고 강력하게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