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인숙 기자 사진 박충렬
지난 2월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에 우태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이 선임됐다.
우태희 상근부회장은 행정고시 27회 출신으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 통상차관보, 제2차관을 차례로 지낸 통상 전문가다. 통상부터 연구개발(R&D), 에너지 등 여러 분야를 두루 경험해 경제·산업 현안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상공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막중한 책임을 맡은 우태희 상근부회장을 만나 대한상공회의소의 당면한 문제와 향후 계획을 들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전국 18만 상공인을 대변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민간 경제단체입니다. 어떤 활동을 하는 기관인지 소개해주세요.
법정 경제단체로 대한민국의 대표 경제단체이자, 전 세계 130여 개국 상공회의소와 네트워크를 구축한 범세계적인 기구입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보통 줄여서 ‘대한상의’라고 부릅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36년 전에 상공인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조직입니다. 상공과 무역이 점점 중요해지면서 정부에서 지난 1948년 상공회의소법을 제정했는데요. 여기에 상공회의소의 기능이 세 가지 나옵니다. 관할구역의 상공업계를 대표하여 그 권익을 대변하고, 회원에게 기술과 정보 등을 제공하여 회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높임으로써 상공업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거지요. 한마디로 대한상공회의소는 더 나은 기업 경영 환경을 만드는 조직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올해 2월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에 선임된 후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8개월간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취임하자마자 코로나19라는 위기가 찾아와 코로나19 대책반을 만들었습니다. 500건 이상의 업계 의견을 수렴해 정부에 건의하고, 업종별 대책회의를 열며 긴박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에는 정부가 수출이나 중소기업을 위한 피해구제책 등을 추진할 때 함께 협의하고, 최근에는 법·제도개혁 TF(‘한국판 뉴딜’의 제도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설치한 민간-당-정부 협업기구)에서 한국판 뉴딜의 성공을 위해 다각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해서는 단순한 로드맵보다는 법·규제 개혁을 넘어선 법·제도 혁신으로 좋은 투자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경제가 활성화됩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출신으로서는 최초의 인사입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계신가요.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출신으로 이 자리에 처음 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습니다. 제가 공무원이 아닌 일반 회사원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은 해도 다른 분야의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이 잘되지 않습니다. 공무원을 하면서 상공부를 선택한 것에 대해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거든요. 사실 저는 좋은 성적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어느 부처든 갈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경제기획원, 재무부 같은 곳이 인기가 많아 성적 우수자들이 대부분 그쪽으로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상공부를 지원해서 왔습니다. 우리 경제가 정부 주도로 성장은 했습니다만 결국 한국 경제의 주역은 정부가 아닌 기업이잖아요. 그런 기업과 관련된 곳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우리 기업들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오늘날 한국의 위상이 이만큼 높아진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런 기업을 대변해서 일하는 것에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근무하면서 한-중 FTA와 한-호주 FTA 협상 대표를 맡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셨습니다. 통상차관보 때는 우리나라의 11개 자유무역협정(FTA)을 총괄하는 등 중요한 시기에 통상정책 업무를 수행하셨는데요, 통상의 중요성과 함께 대한상의와 통상의 접점을 말씀해주세요.
우리나라의 대외의존도는 80% 이상입니다. 수출과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통상은 매우 중요합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4만 달러, 5만 달러로 높이려면 내수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서 사업을 수주하고 수출해야 국민소득 4만~5만 달러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협상하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통상의 기능입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기능 중 하나도 통상 진흥이에요. 그래서 무역업계와 수출업계의 어려운 점, 특히 중소 수출기업의 애로사항을 정리해서 정부에 건의하고 관련 대책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 밖에 대통령 해외 순방 시 비즈니스 포럼 개최, 기업인 사절단 등을 구성해 여러 행사를 뒷받침하면서 통상 기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대선을 앞둔 미국의 통상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귀추가 주목되고, 미·중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통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대한상공회의소 통상포럼을 꾸준히 개최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를 모시고 앞으로의 전망과 함께 기업을 위한 여러 의견을 듣고 필요한 내용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통상의 기능이 산업과 더욱 밀접하게 연관돼 경제 활로를 개척하는 데 한몫을 담당하길 바랍니다.
1984년 제27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하셨습니다. 30년 넘게 공직에 계셨는데, 업무 철학이 궁금합니다.
34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세 가지 철학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첫 번째는 소통입니다. 저는 특히 실시간 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강한 조직이 되려면 사원부터 회장까지 똑같은 논리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으로 계속 의견을 모으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관리자의 결정 능력입니다. 저는 관리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적시에 결정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렵지만 심사숙고해서 그 시기에 가장 적합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늘 모토를 가지고 일하는데요, 보고서가 중요한 사무관 때는 ‘Report or Resign’, 많은 보도자료를 내야 했던 과장 때는 ‘Print or Perish’였습니다. 요즘의 제 모토는 ‘Decide or Die’입니다. 세 번째는 ‘독자 생존’입니다. 예전에는 적어야 산다고 해서 ‘적자 생존’이라고 했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것은 많이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자 생존’입니다. 저는 공무원이 된 후 한 달에 세 권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어요. 그중 두 권은 전문서적을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은 책이 2,500권 정도 됩니다. 후배들에게도 책 읽고 독서모임 가질 것을 권장합니다.
미·중 무역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대응전략을 가져야 할까요?
통상정책은 정치나 안보와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정치나 안보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진영 사이에서 줄타기를 통해 애매모호하게 대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경제는 그게 안 됩니다. 그래서 통상정책이 중요합니다. 화웨이를 제재하니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에 수출을 못합니다. 미국 기술이 들어간 장비를 수출할 때는 미국 상무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은 승인을 안 해줍니다. 우리로서는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러한 결정이 기업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통상은 이런 것들을 예측하고 막아주고 완화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 만큼 유능한 분들이 통상에 몸을 담아야 합니다. 코로나19 시대의 변화로 디지털 촉진, 비대면 확산을 꼽을 수 있지만 가장 큰 변화는 글로벌공급망(GVC; Global Value Chain·글로벌 가치사슬) 재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수출 전략은 일본에서 소재를 가져와 부품을 만들어서 중국에 수출하면 중국이 미국이나 다른 시장에 완성품을 판매하는 동아시아 분업체계였습니다. 하지만 미·중 간 무역전쟁으로 이러한 분업체계가 흔들리게 되면서 GVC가 무척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300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2%가 GVC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고, 27%는 곧 GVC에 변화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69%, 즉 10개 제조기업 중 7곳이 GVC 재편에 대응해야 한다고 응답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중국이나 베트남에 공장을 두고 우리가 기획해서 상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빨리 다른 곳을 통해 소재를 구하고 공장을 지어야 합니다. 통상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FTA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같은 메가 FTA(다수의 협상국이 참여해 통상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자유무역협정)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러한 분야에 초점을 맞춘 통상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상공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습니까?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원산지 증명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되도록 빨리, 또 손쉽게 원산지 증명이 되어 원활히 수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수출업계 지원은 1차적으로 한국무역협회에서 하고 있지만, 경제단체들이 공동으로 수출절차를 간소화하고 무역금융이 확대될 수 있도록 컨설팅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상법, 공정거래법과 같이 기업에 부담이 되는 법 개정에 대해 다른 경제단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어 기업의 부담이 최소화되고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 대한상공회의소의 역할과 위상을 높여나갈 계획이신지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세계은행이 나라별 기업 환경을 조사하는 ‘두잉 비즈니스(Doing Business)’에서 세계 5위를 차지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업 환경이 세계 1위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대한상공회의소가 경제단체인 만큼 기업의 애로사항이 신속하게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아울러 정부가 정책을 만들어도 중소기업이 제대로 알지 못해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저희가 정부의 정책을 잘 홍보해서 기업에 알리겠습니다. 앞으로 기업과 정부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