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인숙 기자 사진 박종범, 한경DB
방탄소년단(BTS)이 신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 1위를 차지하며 K-Pop(이하 K팝)의 역사를 새로 썼다. 한국 가수가 이 차트 정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0월에는 팝스타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빌보드 ‘아티스트 100’ 차트에 블랙핑크와 BTS가 나란히 1, 2위에 올라 화제가 됐다.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K팝의 매력은 뭘까. 오랫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며 K팝의 성장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김영대 음악평론가를 만나 K팝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미국 시애틀에 10년 넘게 거주하며, 미국 팝 시장의 흐름과 K팝의 동향을 관찰하고 연구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소개해주세요.
2007년 미국에서 음악학(Ethnomusicology) 공부를 시작해 올해 박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글로벌 한류 K팝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동방신기, 빅뱅, 원더걸스 등이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K팝의 실체를 처음으로 느꼈고, 그 현상을 지켜보면서 K팝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인기를 끌면서 처음으로 K팝이 라디오에서, 거리에서 흘러나온 걸 목격했습니다. 일반 대중과 연구자들이 K팝의 실체를 알게 된 시점이죠. 그때부터 저도 저널리스트로서, 연구자로서 더 활발하게 K팝을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미국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국내 언론에는 해외 반응을 전하는 등 한국인 저널리스트로서 기고하며 학업과 작가로서의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지난해 펴낸 <BTS : THE REVIEW>라는 책이 현재 6개 언어로 번역·출간됐습니다. 다양한 언어로 책을 발간하게 된 배경과 현지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2014년 미국에서 BTS가 데뷔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데뷔 초부터 유의미한 팬덤의 활동이 포착됐습니다. 당시는 개인적인 느낌 혹은 감각으로 기존 K팝 흐름과는 뭔가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전까지 K팝 그룹은 한국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후 일본에 진출하고, 이어 미국 진출을 타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BTS는 미국 팬들이 스스로 발견해낸 차세대 K팝 주자처럼 보였거든요.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검증된 후 넘어간 게 아니라 미국 대중, 세계 대중이 먼저 발견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시장의 판도나 K팝을 접하는 방식, 팬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계기로 책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국내와 달리 해외 팬들은 K팝을 적극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훨씬 열성적이고 깊이 있게 접근합니다. 담론이나 분석 등의 글에도 목말랐고요. 그래서 한글판과 영어판을 동시에 출간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국내에서도 처음이라고 합니다. 반응이 좋아서 대만, 태국, 베트남, 러시아, 일본에서 출간됐고, 현재 중국과도 얘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한글판은 이미 5쇄에 들어갔고, 일본어판은 5쇄를 앞두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일본이나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어떻게 세계 최고의 인기스타가 나왔는지에 대한 관심이 큰 것 같습니다.
BTS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비롯해 최근에는 K팝 앨범이나 곡들을 빌보드 차트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동안 저평가된 K팝이라는 우량주가 좋은 타이밍에 실질적인 가치를 입증한 것이라고 봅니다. K팝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세계시장에서 K팝의 인기를 힘 있게 묶어낼 수 있는 저변이 부족했습니다. 외국의 음악,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음악인 데다 팬들이 다양한 도시에 흩어져 있어 한곳으로 힘을 모으기가 어려웠습니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가 음악 프로모션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차지하게 되면서 비로소 잠재력이 퍼진 겁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것이 ‘빌보드 소셜 50’ 차트입니다. 당대 팝스타인 저스틴 비버가 6년 연속 수상한 차트인데, 2017년 BTS가 1위를 차지한 후 지금까지 4년 연속 수상했어요. K팝이라는 저평가 우량주가 소셜 차트를 통해 부각되면서 메인 스트림으로 올라오는 계기가 된 겁니다. 또한 BTS의 미국 내 인지도가 절정에 오른 시점에 미국 시장 친화적인 영어 음악을 선보이면서 그 저력을 보여준 것이죠. 동시에 그룹 슈퍼엠과 블랙핑크도 빌보드 앨범차트 2위로 바로 데뷔하는 등 요즘은 K팝 앨범이나 곡들을 차트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10월 26일 현재 BTS의 ‘다이너마이트’는 8주 연속 ‘핫 100’ 톱 10에 들었는데, 이 또한 전무한 기록입니다. 이제 전략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미국 가수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고, 인기가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입니다.
음악적·산업적인 K팝의 노하우는 20년째 축적되어온 우리만의 인프라와 기술입니다. 요즘 열리는 온라인 공연도 우리나라가 가장 잘 만들어요. 이미 수년 전부터 준비해온 기술이죠. 향후에 선보일 미래 기술이었는데, 코로나19로 시연을 앞당긴 겁니다. 전체 산업이 가지고 있는 이런 노하우가 저평가 우량주의 근본입니다. BTS와 같은 도드라진 그룹이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면 그만큼 K팝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전체 위상이 올라가게 됩니다.
세계시장에서 사랑받고 있는 K팝의 매력과 특징은 무엇인가요?
K팝은 아이돌 그룹이 많은데, 이런 포맷이나 특유의 산업은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합니다. 정예 멤버를 선발해서 완벽하게 훈련시키죠. 특히 저는 K팝의 본령이 춤이라고 봅니다. 대중음악 역사에서 굉장히 독특한 현상입니다. 우리나라의 아이돌 그룹은 노래와 랩을 하는 댄서에 가까워요. 아이돌 그룹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적으로 훈련받는 분야도 안무입니다. K팝은 노래와 랩이 모두 가능한 댄스크루의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퍼포먼스를 마스터한 가수이자 래퍼인 셈이죠. 게다가 음악 자체도 수준이 무척 높습니다. 세계 정상급 작곡가들이 곡을 쓰기 때문에 영미권 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요. 이와 함께 외모, 실력, 풍부한 즐길 거리의 밑바탕에 보편주의가 담겨 있습니다. K팝은 애초부터 글로벌하고 코즈모폴리턴한 음악을 지향했습니다. 이런 보편성은 K팝의 가장 큰 장점으로 아시아, 미주, 중동권까지 전파될 수 있었던 원동력입니다.
앞으로 K팝의 성장 가능성과 역할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당분간 K팝을 포함한 한류 콘텐츠 전반이 세계시장에서 굉장한 지배력을 행사하리라 생각합니다. 하나의 주류 문화가 다음 흐름으로 넘어가려면 대체재가 있어야 하는데, 향후 몇 년간 K팝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20년 노하우의 결정체를 외향만 따라 한다고 성공할 수는 없거든요. 이미 K팝이라는 기술을 독보적으로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적인 트렌드가 바뀐다고 해도 이 시장은 유지될 겁니다. 현재 전 세계 대중을 대상으로 킬러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뿐입니다. 한국 대중문화가 미국 대중문화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그들과 공존하면서 나름 우리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음악을 비롯해 영화, 드라마 등 우리나라 문화의 전반적인 수준이 무척 높아졌고, 전 세계 대중이 이를 맛봤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수요가 있을 겁니다.
세계에 한국의 대중문화를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과거 한류 초기에는 한국문화원에서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미국에서 한국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연구비 등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부기관이나 기업은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BTS가 책이 되느냐, 아이돌이 나와서 춤추는 걸 진지하게 분석까지 하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 세계인이 듣고 있는 음악인데 말입니다. 미국에서 한국어 클래스가 열리면 수백 명이 몰려와 곧바로 마감됩니다. K팝 가사가 궁금해서, K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대중문화에 대한 폄하의 시선을 거두고, 우리가 종주국으로서 자부심과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지금 K팝, K드라마, K컬처 노하우를 배우려는 나라가 줄을 섰어요. 중국, 일본, 미국 등에서 현지 그룹을 잘 만들어 내놓으면 기껏 우리가 개척해놓은 시장에서 과실을 못 담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해외에서 활동하시다가 최근에 한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음악평론가이자 문화연구자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말하고 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선 글로벌 K팝의 중요성과 현상을 방송과 기사를 통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또 BTS 관련 후속 책과 함께 아이돌에 대한 편견을 깨고자 K팝의 예술성을 담은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이돌은 아티스트가 아닌 스타일 뿐이다, 아이돌 음악은 음악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 부분 편견입니다. 아름다운 춤사위와 좋은 음악을 보며 감동하고 마음이 움직이면 그게 예술입니다. 이와 함께 팟캐스트나 방송 제작을 통해 옛 명인들과 잊혀가는 전설들의 증언을 담은 인터뷰, 현재 뜨거운 관심을 받는 분들과 인디 뮤지션 인터뷰 등을 진행하는 음악전문 토크를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