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정준 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 연구교수 사진 한경DB
우리나라의 닭 사랑은 가히 독보적이다. 우리가 개발한 양념치킨이나 치맥 문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닭싸움을 즐기며 대한닭싸움협회까지 설립한 나라 아닌가. 근데 원조 닭싸움은 미국과 유럽 간에 터졌다. 닭고기와 관련된 역사 속 무역이야기의 첫 페이지는 미·유럽 무역전쟁의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60년 전이다.
닭고기는 기본적으로 이슬람교와 힌두교에서 각각 금기시하는 돼지고기나 소고기와 달리 비교적 종교와 문화 관점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사랑받는다. 물론 우리나라는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애계국(愛鷄國)일 것이다. 서문에서 말한 것과 같이 양념치킨을 개발한 것은 물론이요, ‘치맥’ ‘치콜’ 등 치킨 관련 문화도 만들어 세계인에게 보급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에는 우리나라의 다양한 치킨 프랜차이즈가 진출해 있고, 현지 대표음식인 라이스페이퍼와 치킨을 함께 먹거나 박항서 감독 열풍으로 국민 스포츠가 된 축구 관람 시 한국식 치맥을 곁들이는 등 메뉴와 문화의 현지화를 통해 신남방지역의 제2 애계국이 될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닭부심을 부린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2017년 본격 과열된 미·중 무역전쟁에 55년 정도 앞선 1962년쯤의 일인데, 닭고기를 두고 유럽과 무역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당시 닭고기는 비교적 고급 음식에 속했고 그만큼 귀했기 때문에 유럽에서 흔히 기르거나 먹던 종류의 고기가 아니었다.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허버트 후버 제31대 대통령 역시 선거 과정에서 “냄비마다 닭 한 마리를(A Chicken for Every Pot)”이라는 선거 구호를 선택하였을 정도로 닭고기는 경제적 여유가 없이는 접하기 쉽지 않았던 요리다. 그러나 이후 미국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에 따라 닭고기 생산량을 늘려 평균비용을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점차 닭고기의 가격을 인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복구 과정에서 유럽에 경기 호황이 찾아오자 미국에서는 이를 기회 삼아 닭고기를 적극 수출하기 시작했다. 1962년 서독에서만 가금류 수입물량 중 미국산 닭고기의 점유율이 약 25%를 차지했다고 하니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버금가는 치킨 상륙작전의 대성공이었다.
당시 서독을 포함하던 유럽경제공동체(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는 공동대응의 성격으로 미국산 닭고기의 수입관세를 25%로 높게 책정했다. 유럽시장 점유율에 버금가는 고율관세 책정에 분노한 미국은 1963년 후반에 유럽에서만 독점적으로 수입해오던 품목들에도 똑같이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전쟁을 완성시켰다. 그 대상은 감자전분, 덱스트린, 브랜디와 소형트럭이었다. 이 중 미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소형트럭 관세는 일반적으로 유럽의 닭고기 고율관세에 대한 보복성이라 하여 ‘치킨세(Chicken Tax)’라고 부른다. 이후 유럽은 미국산 닭고기에 대해 관세를 철폐한 반면, 미국은 지금도 소형트럭에 대한 수입관세를 25%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본원칙인 최혜국대우 원칙에 입각하여 수입산 소형트럭에 부과하는 25%의 고율관세는 유럽산 소형트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닭은 날지 못해 슬픈 새 중 하나다. 그런데 2017년 3월 그 닭이 스페인에서 우리나라로 날아왔다. 심지어 닭이 되기 전 병아리였을 때의 이야기다. 조류 인플루엔자(AI; Avian Influenza)는 조류에 대한 전염성 호흡기 질병으로 우리나라 양계농가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2016년 11월 중순경부터 2017년 여름까지 우리나라는 AI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AI에 걸린 닭뿐만 아니라 예방적 차원에서 건강한 닭에도 시행된 살처분 조치로 당시 양계농가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달걀 공급 부족으로 달걀 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달걀 한 판이 1만 원을 돌파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당시 정부의 대응은 바로 산란계 종자의 병아리 수입이었다. 일례로 스페인 사라고사 지역에서 햇병아리 13만 마리가 부화한 지 48시간도 되지 않아 특별 화물기를 타고 1만km가 넘는 비행을 해서 입국했다. 이 소중한 병아리들은 그야말로 퍼스트클래스 승객으로 대우받았는데 숨구멍이 뚫린 특수 상자에 탑승했고, 기내 온도는 14~23℃로 유지됐다.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았기에 기내식은 부화까지 영양분을 공급해주던 노른자로 대체됐다. 병아리가 그야말로 금처럼 빛나던 순간이다.
※ 참고: <식탁 위의 세계사>(이영숙, 2012) 및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