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국내외 기업들이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중국 수출통제법(中华人民共和国出口管制法)’의 최종 버전이 2020년 10월 17일 제13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22차 회의에서 채택되었다. 중국 정부는 2016년 국무원 입법작업계획에 의해 ‘중국 수출통제법’ 초안 작성을 시작하고 2017년 6월 16일 총 70개 조항에 달하는 최초 초안을 냈다. 이후 중국 수출통제법 제정을 위한 의견 수렴을 통해 2019년 12월 28일 1차 심의, 2020년 7월 3일 2차 심의, 이번 10월 회의를 거쳐 12월 1일 발효되었다.
중국의 경우 이전에는 하나의 통합된 수출통제 규범이 없었고, 중국의 수출통제는 크게 ‘대외무역법(中华人民共和国对外贸易法)’, ‘세관법(中华人民共和国海关法)’, ‘형법(中华人民共和国刑法)’에 근거하여 이뤄지고 있었다. 또한 ‘상품 수출입 관리 규정(中华人民共和国货物进出口管理条例)’, ‘기술 수출입 관리에 관한 규정(中华人民共和国技术进出口管理条例)’, ‘원자력 수출통제 규정(中华人民共和国核出口管制条例)’, ‘이중용도 품목 및 기술의 수출입 허가에 대한 관리적 조치(两用物项和技术进出口许可证管理办法)’ 등 몇 가지 하위 행정 규정으로 규제되고 있었다.
이번 중국 수출통제법 제정의 가장 큰 제정 목적은 중국에서 최초로 포괄적이고 통합된 수출통제 법안을 제정하여 민감한 물질과 기술의 수출을 규제하고 중국의 국가 안보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다. 중국은 1990년대 말부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에 대한 국제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핵, 생물학, 화학, 미사일과 관련한 기술 및 물품에 대해 수출통제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통일된 법률이 없었기 때문에 수출통제 조치의 이행을 조정하기 어려웠다. 특히 최근 개방 속도가 빨라지고 ‘일대일로 정책(Belt and Road Initiative)’에 따른 국제 협력이 꾸준하게 진행됨에 따라 수출통제법의 개선 요구가 높아졌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전체적인 국가 안보 개념을 더 높은 수준에서 구현하고자 중국 수출통제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과 더불어, 2018년 제정되어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중국 제재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미국의 수출통제법(ECRA; Export Control Reform Act)에 대한 대응 목적도 엿보인다. 특히 중국 수출통제법 48조는 명시적으로 “타국이 수출통제 조치를 남용하여 중국의 국가 안보와 이익을 위태롭게 할 경우 상황에 따라 상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이미 수출통제법 제정
선진국들의 자국 우선주의 피해 방지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저항
1) Global Times(2020. 10. 21). “China’s export control law provides legal guarantees for fair trade principle.”
수출통제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총 5개 챕터 49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실제 수출통제와 관련한 제2장 ‘통제정책, 통제리스트, 통제조치’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먼저 수출통제 범위는 품목과 행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통제 품목에는 △이중용도 품목 △군사 품목 △핵관련 품목 △국가 안보 및 이익을 보호하고 비확산 및 기타 국제 의무를 이행하는 것과 관련된 기타 상품·기술·서비스 품목이 해당한다. 통제 항목에는 위 항목과 관련된 기술 데이터도 포함된다. 둘째, 통제를 받는 행위에는 △통제 품목을 중국 내부에서 중국 외부로 이전하는 것 △중국 시민 및 법인 또는 비법인 조직이 외국의 조직 및 개인에게 통제 품목을 제공하는 것이 포함된다. 즉 미국의 수출통제법과 유사하게 재수출(Re-Exports)과 국내 기술이전(Deemed Exports)도 통제 범위에 해당한다.
수출통제 수단으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첫째, 국무원과 중앙군사위원회가 관련 절차에 따라 관련 부서와 협력하여 통제 품목의 수출통제 목록(Controlled Item List)을 수시로 설정하고 조정한다. 둘째, 주요 통제 조치는 기본적으로 수출 허가(License)를 통해 이뤄진다. 통제 품목을 수출할 경우 규제 기관으로부터 수출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통제 품목이 아닌 상품·기술·서비스 수출의 경우도 수출업자가 국가 안보 및 이익을 위협하거나, 대량살상무기 및 대량살상무기 운송수단의 설계·개발·생산, 테러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경우 수출허가를 받아야 한다. 셋째, 통제 품목을 수출하는 수출업자가 수출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최종사용자(End-User) 및 최종용도(End-Use)를 증명해야 한다. 넷째, 중국의 규제기관은 △관련 최종사용자 및 최종용도 관리 요구 사항을 위반하거나 △국가 안보 및 이익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통제 품목을 테러 목적으로 사용하는 수입업체 및 최종사용자를 포함하는 ‘통제 당사자 목록(Controlled Party List)’을 작성한다.
중국 수출통제법은 49개 조항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그에 따른 구체적인 시행 규정은 아직 공표되지 않았다. 법의 내용이 불명확한 가운데 시행된다는 점은 여러 우려를 낳고 있다.
이번 수출통제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2조, 9조, 10조, 12조, 18조 등에서 나타나는 국가 이익과 관련된 부분이다. 통상적으로 수출관리법은 안전보장과 국제 의무 이행을 위한 법률이라는 성격상 ‘국제 평화’와 ‘국가의 안전’이 목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 이익’의 보호까지 목적에 삽입했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가 향후 정책적으로 자국 산업의 경쟁력 유지 및 발전을 위해 운용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중국은 8월 28일 ‘대외무역법’의 하위 규정인 ‘기술 수출입 관리 조례’에 근거해 종래의 ‘수출금지 및 제한기술 목록’을 크게 확충하여 공포·시행했는데, 새로 목록에 추가된 기술에는 안보의 관점을 넘어서서 전략적 육성을 위한 첨단기술이 포함되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희토류 등 희소자원의 전략적 통제 품목 지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중국 정부가 9월 19일 외국 기업에 대한 엄격한 제재를 규정한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에 관한 규정(不可靠实体清单规定)’과 더불어 최종 수출통제법안에 ‘보복 조항’ 및 ‘역외 적용에 의한 책임 추궁 조항’을 잇달아 추가한 점은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는 외국 기업을 위협·위축시키는 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에 관한 규정’에서는 중국의 국가 이익에 위해를 끼치거나 거래 중단 등 차별적 조치에 따라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에 심각한 피해를 준 외국 기업에 대해 중국 정부가 금수 조치, 중국에 대한 투자 금지, 이들 기업 직원의 중국 내 취업 허가와 거류 자격 취소, 형사 처벌 등 광범위한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이러한 보복 조항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의한 분쟁 해결의 원칙에 위배된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경우 국가 이익을 ‘국력, 주권, 통일과 영토 보전, 국민복지, 체제 유지, 지속가능한 경제사회 발전’ 등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계 규정이 공개되고 나서 충분한 주지 및 준비 기간을 두고 법이 발효되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중국 수출통제법은 상세한 실시 규칙의 공포 없이 12월 1일 발효되었다. 중국 수출통제법은 특정 제품, 서비스, 기술 수출을 제한하는 중국 최초의 포괄적인 틀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중국을 제1의 교역 상대국으로 두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위험과 도전일 수 있다.
또한 중국 수출통제법의 독특한 특색 중 하나인 회사에 대한 처벌과 함께 개인에 대한 처벌도 같이 이뤄진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화인민공화국 형법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에 대한 형사 책임을 규정하고 있으며, 수출통제법 39조는 본 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은 사람은 평생 관련 수출업 활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본 법 위법 상황은 개인의 신용기록에도 남는다.
미·중 관계의 긴장이 고조되는 속에서 미·중 양국이 수출관리 규정에서 과도한 역외 적용 규정을 포함시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어 우리 산업계에도 큰 불안과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 수년 동안 개혁개방 정책 아래에서 무역 및 투자 환경의 끊임없는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이번 수출통제법 제정은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조치처럼 보인다.
중국 정부가 확산방지를 위한 국제 공조 차원에서 수출관리 및 통제제도 정비를 진행하려고 하는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최종 채택된 내용은 WTO 규정과 국제 수출통제체제 등 국제 규칙에 비추어 상충되는 부분이 존재하며 무역 및 투자 환경의 현저한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본래 중국 수출통제법 초안은 전략물자 수출 관리를 위한 바세나르 협정(Wassenaar Agreement)에 부합하는 국제적 의무의 이행이 주요 취지였지만, 이후 점차 미·중 갈등 상황을 반영하며 국가 안보 및 보복 수단 정비의 색채가 짙어졌다. 이에 따라 의견 수렴 당시 제기되었던 우려 사항들이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확대 성립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발효가 12월 1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도 하위 규칙이나 규제 대상 관리품목 목록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 지금까지 규제가 전혀 없었던 곳에 규제의 도입이 새로 생긴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우리와 같은 문제의식과 우려를 공유하고 있는 유럽, 일본, 호주 등과 연계하여 정부 차원에서 국제 규칙에 따른 제도 운영이 될 수 있도록 중국과 협상 및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한 중국의 무역 및 투자 환경이 훼손되지 않도록 중국 정부의 냉정한 제도 운용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