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 원장
금은 가공하지 않은 순수한 상태로도 화려하고 눈부시게 빛나는 광택을 낸다. 그 반짝임이 마치 태양과도 같아서 인간의 과시욕을 충족하기 위한 도구로 이만한 물건이 없었다. 기원전(BC) 700년경, 금은 가치를 매기는 수단인 주화(Coin)로 제조되기 시작했고, 온전한 화폐의 기능을 갖추게 되면서부터는 가장 대표적인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반짝이고 화려한데, 그 가치도 높다? 너도 갖고 싶어 하고, 나도 갖고 싶어 한다면? 바로 전쟁각이다.
BC 334년, 알렉산더는 기병 6,000명과 보병 3만8,000명을 이끌고 페르시아 제국을 침공했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자 다리우스 3세에게 보낸 전쟁 포고문에는 침공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가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았는데도 당신의 선조들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나머지 지역에 들어와 피해를 입혔다. 그리스 총사령관과 지휘관에 임명된 본인은, 페르시아 사람인 당신들에 의해 시작된 전쟁에 복수하고자 아시아로 넘어간다.”
현 시대 대부분의 역사책에서는 알렉산더가 포고문에 쓴 곧이곧대로 ‘복수심’이 페르시아를 침공한 이유라고 적시하고 있다. 과연 그게 전부일까. 국가의 운명을 걸고 전쟁을 치르는데, 이유가 고작 하나뿐이겠는가.
알렉산더에 관한 가장 신뢰받는 자료는 그리스 역사가 아리안(Arrian·AD 86~146)이 저술한 <알렉산더의 진군(The Anabasis of Alexander)>이다. 여기에 장군들에게 연설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금잔 및 은잔 몇 개와 국고에 남겨진 고작 60달란트 이하를 물려받았다. 필립(아버지)은 500달란트의 빚을 남겼고, 나는 800달란트를 더 빌렸다. 나는 당신들을 제대로 지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전쟁을 시작했다.”
알렉산더가 왕이 된 직후부터 통치자금은 바닥이었고 국가 경제가 거덜날 정도로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알렉산더가 전쟁을 나섰을 때 4만 명이 넘는 병사에게 지급할 비용으로 최소 2,000달란트가 필요했음에도 실제로는 60달란트와 30일 치의 식량밖에 갖추지 못했었다. 반면 페르시아 제국은 에게해(Aegean海)에서 해상무역과 식민지의 조공으로 ‘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었다. 알렉산더에게는 대규모 전쟁을 치르고서라도 쟁취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약속의 땅이었던 것이다. ‘복수’는 대의명분이었을 뿐, 그에겐 에게해의 무역독점과 페르시아의 ‘금’이 간절했다.
BC 329년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수도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 입성하고야 만다. 그리고 드디어 역사상 가장 많은 양의 금을 마주할 수 있었다. 금이 무려 20만 달란트에 달했는데, 이 정도면 자신의 군대를 90년 이상 운용하고도 남을 양이었다.
동방 원정에 필요한 모든 자금이 페르시아 정복으로 해결된 것이다. 알렉산더가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리스,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정복지에 다수의 도시를 건설하고 동서 교통과 무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다 페르시아에서 확보한 막대한 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빌론에서 발굴된 점토판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금, 바로 그 금 때문에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BC 323년, 33세로 사망한 알렉산더 대왕에겐 후계자가 없었다. 이 때문에 그의 뒤를 잇고 싶어 하는 4명의 장군들 간 경쟁이 치열했는데, 이들은 각자의 군대를 양성하고 식량을 저장하기 위해 금을 흥청망청 뿌렸다. 이로 인해 임금이 상승하고 보리와 밀, 향료의 가격이 폭등했다. 이 인플레이션 현상은 알렉산더 대왕이 숨진 후에도 2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자료: 미국 지질조사국(USGS) ‘2015년 광물자원개요’(가채연수: 2015년 생산량/매장량)
오늘날의 금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일까. 전 세계에서 생산된 금의 약 48.5%는 보석과 장신구로, 29.19%는 투자용으로 쓰이고 14.84%는 각국의 중앙은행에 비축분으로 쌓인다. 산업을 일으키는 데는 7.48%만 쓰이고 있다. 슬픈 사실은, 새로 발견되는 금 매장지가 점점 감소하고 있는 추세란 것이다. 빠르면 20년 안에 지구에 묻혀 있는 모든 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하는 사례도 있다. 금은 지구 내부 활동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물질이다. 우주에서나 만들어지는 존재다. 초신성(Supernova)이 폭발한 뒤 죽은 별의 핵, 즉 중성자별들이 충돌하면서 무려 우주 최고의 온도라는 ‘1조℃’까지 올라가야만 금이 만들어진다. 금의 그 희소성은 갈수록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금, 금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