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극심한 경기침체를 회복하기 위해 그린딜 정책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까지 도입을 검토 중인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Tax)의 추진이 현실화되면 글로벌 공급망(Global Value Chain) 구조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EU 그린딜의 8대 정책 분야 중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를 위한 산업 활성화’ 정책은 향후 5년 이내에 국내 전기전자·정보통신기술(ICT) 제조업계를 중심으로 강력한 무역기술장벽(TBT)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제품의 순환성(Circularity) 강화를 위한 재활용성 향상 설계, 재활용 원료사용 확대, 환경(탄소)발자국 감축 등 전방규제에 대해 EU 표준(내구성·수리가능성·재활용률·재활용 원료사용 등) 개발을 완료했고, 2024년까지 규제 입법을 예고했다.
또한 소비자의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를 위한 제품 유지관리 서비스 강화, 예비부품 확보 강화, 제품의 순환성 및 탄소발자국 관련 정보제공 강화 등 후방규제에 대해서는 2021년 3월부터 세탁기, 냉장고, 식기세척기, TV 및 디스플레이 제품을 대상으로 규제가 시행되고 있으며, 규제 범위 및 대상 제품이 확대될 예정이다.
자동차의 경우 엄격한 탄소배출량 규제로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급속한 전환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2차 배터리의 순환성(성능·내구성·재활용원료사용·탄소발자국·정보제공·폐배터리 회수처리 등) 규제를 포함하는 강화된 EU 배터리 규제가 2022년 1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EU 그린딜의 ‘순환경제를 위한 산업 활성화’ 정책과 관련해 세부 활동 계획들이 2021~2022년에 집중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따라서 환경을 매개로 강화되는 규제요건의 모니터링 및 분석 강화와 더불어 국내 수출업계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신속한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
국내 수출업계에서는 EU의 강화되는 규제요건 대응에 필요한 기간이 상당히 소요되는 점을 인식하고, 예상되는 전후방 규제요건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친환경적이고 탈탄소형 산업구조로의 전환과 함께 선행기술 개발 및 제품 설계에 선제 반영하고, 소비자의 ‘Right to Repair’를 위한 서비스 체계 개선을 통해 EU 시장에서 제품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EU는 그린딜 정책 실행 지원을 위해 공급망 및 제품 정보에 대한 EU 공통 데이터 스페이스 구축을 추진 중이며, 관련 데이터 등록의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올 들어 1월부터는 제품 내 포함된 특정 화학물질 정보 등록을 의무화했다. 제품의 탄소발자국 정보의 경우 일부 국가의 특정 업종에서부터 데이터 등록 의무화 시행을 발표했으며, 이를 EU 전역으로 확대할 예정이므로 우리 정부와 국내 수출업계가 함께 탄소발자국 관련 데이터의 체계적인 관리도 병행해야 한다.
2021년부터 중국은 ‘제14차 5개년 사회경제규획’(이하 14.5)을 5년간 실행한다. 전략적 신흥 산업의 육성, 디지털 산업의 육성과 기술표준의 제정 참여, 산업고도화를 통한 국내 경기의 진작 등인데, 공교롭게도 모두 무역기술장벽(TBT)과 관련이 있는 정책이다.
중국의 기술국가주의(기업 간 기술경쟁에 국가가 개입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입장)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등 다른 국가와도 얼마든지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즉 중국이 미국과 무역분쟁을 극적으로 타결하더라도 앞으로 5년간은 다른 이슈로 글로벌 무역분쟁이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전략적 신흥 산업으로 중국은 현재 차세대 정보기술, 바이오기술, 신재생에너지, 신소재, 첨단설비, 신에너지 자동차, 환경보호, 항공우주 및 해양설비 등 9개 제조업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중국은 이들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개발해 국제표준을 만들고자 한다. 향후 이 분야에서 연구개발 경쟁이 격화될 것이며 화웨이 사례에서 보여주듯 기술선도자의 우위 역시 보장될 수 없다.
디지털 산업의 육성과 표준화는 현재 중국의 글로벌 비교우위가 상당한 부문이다. 디지털 통상 규범 논의가 이제야 시작된 상황에서 중국의 디지털 제품과 서비스는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예를 들면 모바일결제서비스는 관련 표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실상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알리바바 등은 해외에서 특히 빅데이터 기업 위주로 인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의 기술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디지털 통상 표준 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국의 이익을 반영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 정부와 기업도 긴밀히 공조해 디지털 통상 표준 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산업고도화를 추구하면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부문에서 암묵적 자국 기업의 보호 역시 강화될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의 기업은 해당 부문으로 중국에서 성장하더라도 개별 기업 수준에서 경영환경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 다수의 국가가 중국의 기술국가주의에 우려와 경계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중국에는 악재다. 그동안 미·중 갈등에서 비교적 중립적 입장을 취했던 EU조차 조화와 상호교환성이 본질인 기술표준화 영역에서 중국이 이를 산업정책으로 취급해 자국의 이익만 챙기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이에 14.5는 중국의 무역 규범과 표준을 글로벌 규범 및 표준과 연동해 국내-국제 간 선순환 메커니즘을 만들겠다는 ‘쌍순환’ 구상을 선보였다. 하지만 ‘성장보다는 분배정의’ 슬로건이 14.5에서 보류되고 다시 성장이 정책목표로 회귀한 이상 중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입장이 무역정책의 기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연방정부로서, 연방정부가 도입한 기술규제뿐만 아니라 주정부가 도입한 기술규제 등 매우 다양한 조치가 있다. 표준 제정 시 비정부기관의 참여 등이 인정돼 민간 주도적 민관 협력이 정부 정책 도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주정부를 포함한 다양한 부처에서 기술규제 조치의 입안을 제안할 수 있다.
미국의 기술규제 정책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의 무역기술장벽(TBT) 챕터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협정에서는 TBT 기본 내용 외에도, 분야별 부속서 협상이 6개 분야로 확대되었다. 기본적으로 USMCA에서는 국제표준이 될 수 있는 요소로 세계무역기구(WTO) TBT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6대 원칙만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어, 표준기관의 소재지나 정부의 참여 여부는 고려하지 않아 민간이 주도한 표준도 국제표준이 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해두었다. 국가 간 기술규정을 마련함에 있어 규제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하며, 대안조치 여부를 도입 단계에서부터 검토해야 하는데, 민간인도 상대국가에게 청원인 자격으로 이를 직접 제출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다.
미국은 무역 강대국으로서 TBT 통보문 개수가 2020년 기준으로 총 4186건으로 WTO 회원국들 중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정무역현안(STC)으로 제기된 건수도 중국(78건)에 이어 유럽과 마찬가지로 57건으로 2위이며 미국이 타 회원국의 기술규제 조치에 STC를 제기한 건수도 28건으로 상당하다. 미국은 주요 분야별(화학물질·화장품·정보커뮤니케이션기술·에너지성능 표준·의료기기·의약품)로 규제당국이 어느 부처인지 분명히 하여 관련 기술규제가 문제되었을 경우, 이를 발 빠르게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기능성 화장품인 경우, 이를 화장품으로 볼 것인지 또는 의약품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가장 많은 기술규제 조치를 마련하고 이를 통보하고 있어, 미국 조치에 대한 빠른 파악과 함께 신속한 대응이 요구된다. 따라서 미국의 통보 조치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수출기업에 애로사항이 될 기술규제의 조기 파악 및 분석이 필요하다. 통보뿐만 아니라 미통보 조치, 또는 앞으로 마련된 조치들을 선제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주도해 개정한 USMCA의 주요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아 미국의 TBT 관련 정책 방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표준 정책 마련에 민간인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장되는 만큼 미국에 진출해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적극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전문가 양성과 함께 인식 제고를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양국 간 TBT로 인한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있거나, 발생할 경우에는 STC 제기와 WTO TBT위원회를 통한 양자 간 대화 채널뿐만 아니라 한-미 FTA 협정에 근거해 설치한 양국의 TBT위원회 등 다양한 대화의 창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활용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 기술규제(TBT·무역기술장벽)를 처음 통보하던 1995년 개도국의 TBT 통보문 비중은 20.9%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83.5%로 크게 늘어났다. 이 중 최빈국의 통보 비중이 0%에서 아프리카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22.7%로 늘어났다. 우리나라도 이들 국가에서 통보하는 기술규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난 2015~2019년 베트남, 인도, 멕시코, 에콰도르, 사우디아라비아, 우간다 등 10개 신흥국의 TBT 통보문은 4,008건이다. 그중 식품 분야 규제 비중이 10개 신흥국 평균 27.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도로수송(자동차) 6.3%, 가정·오락(가전제품 등) 6.1%, 화학 5.8%, 농업 5.1%로 그 뒤를 이었다. 식품 분야의 규제는 대부분 생산 측면의 품질 개선보다는 소비자의 안전 및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국가의 공통적인 관심사항으로 분석됐다.
자동차, 가전제품·완구, 화학 분야는 대표적인 중공업 분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공통적으로 육성하는 산업으로 분석됐다. 주요 산업들에 대해서는 각국의 산업발전도나 시장규모에 관계없이 각국 정부가 육성정책을 수립해 관련법을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 분야는 아시아·중동·아프리카 지역의 국가들에서 1차 산업 종사 비율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농약·살충제 등의 위험물질로부터 농업인의 안전보호를 강화하고자 했다. 보건·안전 분야는 대부분 선진국에서 통보하는 내용으로, 방사선 취급·보호규정 등 직업인에 대한 안전보호 내용이 많았다.
교역 중인 개도국에서 특정한 품목의 TBT 통보 비중이 높게 나타나더라도 국가마다 규제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해석에 유의해야 한다. 베트남 등 다수 개도국이 규제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에 대해서는, 국가 주도의 산업육성 전략과 함께 아세안FTA와 같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복합적으로 만들어졌다. 아랍에미리트(UAE)·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의 식품 분야 규제는 소비자 안전을 보호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규제가 도입됐다. 우간다에서는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선진국의 규제를 도입했다. 가전제품의 경우 에콰도르에서는 국산부품 의무사용 등 자국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해외제품 수입요건을 강화했으나, 대만 등에서는 해외제품에 대한 소비 증가로 안전요건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도국 시장이 국내 교역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우리나라와의 주요 교역국들의 규제 동향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조사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분야인 전자기기, 자동차, 철강 등에 대한 수입규모가 큰 주요 국가들의 TBT에 대해서는 해당 규제의 도입 목적 및 유형, 세부품목 등 심층분석을 통한 맞춤형 대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