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민정 코트라 무역투자기반본부 시장정보팀 차장
비대면 접촉 등이 일상이 되면서 뉴노멀 시대를 맞이한 가운데 우리가 먹고사는 삶의 방식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Do It Yourself(DIY)의 21세기 버전인 ‘키트’의 성장세가 매섭다. 전 세계적으로 기존 아웃소싱 서비스뿐만 아니라 식물재배처럼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일까지도 직접 해내기 위한 키트 상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각종 키트의 급성장이 단순히 코로나19의 영향에 의한 일시적 유행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요즘 대세인 밀키트 시장의 경우 2024년 약 7,000억 원대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명 식당의 음식을 집에서 라면을 끓이듯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소비자가 열광하고 있다. 우리의 수고를 덜어주고 보다 좋은 결과물을 내도록 도와주는 여러 가지 키트 제품의 사례를 알아보자.
미국에서도 난임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 의료 시스템은 난임 진단에 대한 혜택이 많지 않다. 여성들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선뜻 병원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미국의 정보기술(IT)업계는 이런 악조건을 타개하기 위해 펨테크(Femtech)에 집중하고 있다. 펨테크는 여성(Female)과 기술(Tech)의 합성어로, 여성 헬스케어와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기술·상품·서비스를 뜻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의료 기술 스타트업 ‘모던 퍼틸리티(Modern Fertility)’는 가장 보편적인 가임력 진단방식인 호르몬 농도 측정을 키트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이용자는 모던퍼틸리티 웹사이트에서 키트를 주문하고 집으로 배달된 키트 속 설명서에 따라 검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다시 동봉된 봉투에 담아 검사지를 우편으로 보내면 끝이다. 전문가의 진단이 담긴 결과지는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검사에 드는 비용이 매우 높기 때문에 진단 키트 제품은 비용 면에서도 획기적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여성에게 자신의 몸 상태를 아주 쉬운 방법으로 알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병원에 가는 일은 후순위로 밀리기 때문이다. 모던퍼틸리티의 창업자는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수록 임신과 출산 계획을 막연히 미루지 않을 것이라며 이러한 키트 제품을 통해 저출산이라는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모든 활동이 금지되다시피 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만 길어졌다. 늘어난 재택근무와 집안일, 그리고 아이들 교육까지 신경 써야 하는 학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온라인 콘텐츠, 교육용 완구, 공작 DIY 프로젝트 키트에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최근 불고 있는 융복합 인재 교육(STEAM; Science·Technology·Engineeri ng·Art·Math)에 적합한 교육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졌다. 그중 눈에 띄는 STEAM 완구로는 구독 서비스 형태의 미국 어린이 창의력 발달 과학교구 ‘키위코(KiwiCo)’가 있다. 부모는 자녀의 연령과 성별을 선택하고 구독 신청만 하면 매달 새로운 주제의 STEAM 완구 키트가 배달된다. 완구를 직접 조사하고 찾아내 조달하는 수고가 필요 없다. 자녀들은 배달된 완구 키트를 완성해 만족감과 더불어 자신감을 키울 수 있다. 교육계에서도 학생들이 STEAM 완구 키트를 직접 조립하며 배우는 효과가 상당하다고 평가한다. 덴마크 장난감 기업 레고(LEGO)의 빌딩 블록도 STEAM 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교재로 활용된다. 최근 STEAM 분야 교육 수요에 맞춰 코딩·과학 교육 현장에 적용 가능한 레고 에듀케이션과 레고 부스트 시리즈도 출시했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식물재배 키트인 ‘마닐라재배키트(MNLGrowkits)’는 식물재배 경험이 없는 초보자도 식물을 유기농으로 쉽게 재배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마닐라재배키트의 구성품을 살펴보면 씨앗, 영양이 고루 섞인 흙, 코코넛 껍질 화분, 사용설명서, 비료와 식물표식 스틱 등이다. 별도의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도록 식물이 자라는 전 단계에 걸친 구성품이 포함돼 있다. 제품 종류는 총 세 가지로 분갈이 없이 그대로 심을 수 있는 묘목 키트, 옮기지 않고 원래 화분 그대로 재배까지 가능한 재배 키트, 샐러드나 피자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채소 또는 꽃을 기를 수 있는 가든 키트가 있다. 조만간 나무와 버섯 키트까지 출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마닐라재배키트는 식물을 처음 키우는 어린이도, 식물 키우기 초보자도 ‘실패 없는 첫 재배를 경험’할 수 있도록 수만 번의 실험 끝에 키트 제품을 완성했다. 모든 구성품은 친환경·유기농 생장 기법이 적용됐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웃소싱하던 서비스를 자급자족하는 트렌드는 2021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홈 라이프를 더욱 풍요롭게 도와줄 다양한 키트 상품의 등장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