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정호 명지대 경제학과 특임교수
키위는 사과, 배, 감, 복숭아, 감귤에 이어 우리나라 주요 7대 과종으로 선정될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해졌지만 2015년 싱가포르 수출 이전, 우리나라는 키위를 수입만 하는 순수입국가였다. 이후 한국산 키위는 일본, 대만 등으로 수출을 확대하면서 수출 농산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키위가 우리와 꽤 인연이 깊은 과일임을 알고 나면 더욱 친숙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뉴질랜드를 키위의 종주국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키위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키위(참다래)는 중국다래(Chinese Gooseberry)로서 양쯔강 유역 산림에서 야생하던 것을 20세기 초에 뉴질랜드가 종자를 도입해 개량한 것이다. 키위를 뉴질랜드로 전파한 사람은 뉴질랜드 교육자 메리 이사벨 프레이저 여사가 주인공이다. 1900년대 초 중국을 방문해 키위를 처음 접하고는 씨앗을 자국에 반입해 뉴질랜드 농부에게 전달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뉴질랜드 사람들도 처음에는 ‘차이니즈 구즈베리’라 불렀다. 그러다가 키위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1950년대 발발한 6·25전쟁이 계기가 됐다. 6·25전쟁 당시 전 세계적으로 중국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명칭이 들어간 차이니즈 구즈베리 역시 꺼리는 과일이 되었다. 미국 과일 유통상인들은 차이니즈 구즈베리라는 이름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고, 다른 이름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전쟁에 따른 동서대립이 과일 이름에까지 영향을 준 셈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후보군으로 오른 것은 작은 멜론이라는 뜻을 지닌 ‘멜로네트’였다. 외관이 멜론과 비슷하면서 작은 크기에 맞는 이름이었으나 국제 과일 시장에 선을 보이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미국은 수입 멜론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었기 때문에 멜론이라는 이름이 들어갈 경우 유통비용이 높아질 우려가 있었다. 결국 1962년 과일 모양이 생산국인 뉴질랜드의 국조인 키위새와 비슷하다고 해서 키위로 이름 붙여졌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됐다.
2010년대 초에는 키위를 두고 한국 시장에서 칠레와 뉴질랜드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 적도 있다. 뉴질랜드산 키위 공급업체인 제스프리가 대형마트에 뉴질랜드산 키위 공급 기간 동안 칠레산 키위를 판매하지 않을 것을 직거래의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칠레산 키위가 국내 대형마트 유통경로의 55%에서 봉쇄된 것이다. 당시 한·칠레 FTA 타결 이후 칠레산 키위의 관세율이 지속적으로 인하되고 있던 반면, 뉴질랜드산 키위에는 45%의 높은 관세율이 적용되고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칠레산 키위가 대형마트에서 사라짐에 따라 제스프리 키위의 가격 인상을 초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정명령과 함께 4억2,7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함으로써 한·칠레 FTA의 가격인하 효과를 가로막은 불공정행위에 제동을 걸었는데 이는 FTA와 연관된 첫 사례로 손꼽힌다. 이후 한·칠레 FTA로 수입단가가 낮아지는 칠레산 키위가 대형 마트에서 자유롭게 유통됨에 따라 가격경쟁이 촉진되고 키위 가격도 하락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세계 키위 시장은 상위 3개 국가인 중국, 이탈리아, 뉴질랜드 등이 전체 생산량의 8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재배면적이 넓은 국가로 2000년부터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키위 생산 통계를 포함시키면서 세계 키위 생산면적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다. 중국은 세계 1위의 키위 생산국이지만 수출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중국에서 생산된 키위의 대부분은 자국 내에서 소비된다. 뉴질랜드는 현재 세계 키위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수출 의존도는 90%를 상회하고 있다. 특히 뉴질랜드는 2008년 선진국으로선 최초로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키위 관세를 기존 20%에서 2008년부터 매년 2%씩 인하되어 2016년에 최종 무관세를 실현했다. 이 덕분에 키위는 자신의 고향인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한국은 1981년부터 수확을 시작했으며 2015년에는 싱가포르 수출을 시작하면서 키위 수출국 대열에 합류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뉴질랜드와는 수확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수출확대 잠재력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