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사

생존력 갑, 감자

박정호 명지대 경제학과 특임교수

몇 해 전 개봉한 영화 <마션>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한다. 생물학자인 주인공이 지구가 아닌 외계 행성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작물이 감자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 속 설정은 그만큼 감자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감자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육류 위주의 식생활로 산성화된 체질을 중화시키며, 비타민C가 풍부해 피부노화를 방지하고 저칼로리 식품으로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 현재 전 세계 감자 생산량은 연간 4,000만 톤 이상으로 40조 원 정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원산지는 중남미 지역이지만 북미의 로키산맥부터 남쪽의 안데스 산맥 최남단 파타고니아까지 아메리카 대륙에 널리 퍼져 있을 뿐만 아니라 고도상으로는 해안지대부터 해발 4,500m 부근 고지까지도 분포돼 있다. 쉽게 말해 감자는 어떠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는 작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감자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광복 이후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농경지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장 먹을 것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다. 당시 많은 농학자들이 적극 추천한 작물이 감자였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잘 자라는 생존력 덕분에 지금은 인류의 훌륭한 먹거리로 대접받고 있지만 처음부터 각광받던 먹거리는 아니었다.

악마의 작물, 감자

고대 페루에서는 감자를 파파(Papa)라고 불렀다. 이러한 감자가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유럽인들이 파타타(Patata)로 부르다가 지금의 포테이토(Potato)란 이름으로 정착한 것이다.
하지만 유럽으로 퍼진 감자는 인기가 없었다. 성경에 감자에 대한 내용이 없다고 해 ‘악마의 작물’이라고 불렸으며 급기야 감자를 먹으면 나병에 걸린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유럽으로 건너간 감자가 처음에 환영받지 못한 데는 종교적 이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유럽에 전파된 감자는 오늘날과 달리 작고 당분 함유량이 적어 맛이 없었고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식용이 아니라 가축 사료용으로 재배했다.

귀족만 먹을 수 있는 음식

유럽에서 감자가 식용작물로 정착하는 데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현격한 공을 세웠다. 1744년 대흉작으로 수많은 국민이 굶어죽자 구황작물로 감자를 심으라고 전국에 명령을 내렸으나 농민들은 감자를 불에 태워버리거나 강물에 빠뜨리기까지 했다. 감자에 대한 국민의 고정관념이 좀처럼 바뀌지 않자 프리드리히 대왕은 꾀를 내어 “이제부터 감자는 귀족만이 먹을 수 있다”라고 선포했으며 마을 곳곳 공터에 감자를 심어놓고 근위병까지 동원해 감자밭을 꾸미고 지키게 했다. 물론 감자를 보급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낮에만 보여주기식으로 감자밭을 감시하고 밤에는 근위병을 철수시켜 농민들이 감자를 훔쳐 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왕은 매일 감자요리를 적어도 한 가지 이상 식탁에 올리게 해 백성의 감자 재배와 섭취를 유도했다. ‘왕의 수라상에 올리려고 키우는 감자는 뭔가 특별한 감자일 것이다’라는 소문이 돌았고, 너도나도 감자 재배에 동참하면서 감자가 프러시아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덕분에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 대왕’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OECD 국가의 대륙별 감자생산량(2019년)
OECD 국가의 대륙별 감자생산량(2019년) - 대륙, 감자 생산략(Ton), 경작면적당 생산량(kg/ha)
대륙 감자 생산량(Ton) 경작면적당 생산량(kg/ha)
아시아 8,367,883 128,509
북아메리카 26,375,605 119,937
남아메리카 4,370,183 76,376
유럽 54,070,087 786,874
오세아니아 1,738,806 87,577
자료: 국가통계포털(kosis.kr)
‘감자튀김 분쟁’ EU, WTO에 콜롬비아 제소

유럽의 벨기에와 중남미의 콜롬비아가 때아닌 감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감자튀김 무역분쟁’이다. 2018년 11월 콜롬비아가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3개국에서 수입되는 냉동 감자튀김에 관세를 8% 부과했다. 값싼 냉동 감자튀김이 자국 생산업자와 시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유럽연합(EU)은 콜롬비아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당사자 3개국 중에서도 WTO 제소를 주도한 국가는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다. 벨기에는 흔히 ‘프렌치프라이’라고 불리는 감자튀김의 원조국이라고 주장하는 나라다.
감자의 원산지는 콜롬비아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 안데스 산악지역이지만 세계 최대 감자 가공품 수출국은 벨기에여서 ‘원조’를 둘러싼 두 나라의 자존심 대결이 상당하다. 벨기에는 한 해 감자 가공식품 생산량이 510만 톤이나 되고 이 중 90%를 수출할 뿐만 아니라 벨기에 북서부 브뤼헤에는 ‘프라이트 뮤지엄’이라는 감자튀김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감자튀김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블룸버그 등 언론 매체에서도 “벨기에 입장에서는 감자튀김이 중요한 문화유산이기에 더욱 물러설 수 없다”고 분쟁 배경을 설명했다. EU와 콜롬비아 간 감자튀김 분쟁은 2021년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 생존력 강한 감자가 국가 간 자존심 대결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