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정준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사진한경DB
특정 상품이 생산국 판매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수출되는 것을 덤핑(Dumping)이라고 한다.
가격이 낮으면 수입국 소비자들은 반갑겠지만 동종 제품을 생산해서 경쟁하는 수입국 기업들에게는 부담이다.
수입 당국은 이런 상황에 대한 구제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다. 바로 반덤핑(Anti-Dumping)조치다. 그러나 이러한 구제조치는 구제의 목적일 때에만 빛을 발한다.
우리는 통상 강국답게 주력 수출품의 주기적 변화를 도모했다. 1960년대 초반 철광석, 생사, 오징어, 돈모 등을 수출하다가 음향기기, 고무제품, 영상기기를 거쳐 현재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선박까지 진화한 것이다. 특히 컬러TV는 1980년대 우리의 주요 수출품이었으며 우리가 제소한 미국은 1980년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26.3%)이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꽤나 오랫동안 흑백TV만을 봐왔다. 국내 안방극장에 컬러TV가 등장한 것은 1980년 들어서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컬러TV를 생산하고 방영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지만 정부는 사치 풍조와 국민 위화감을 이유로 컬러 방영을 불허하고 있었다. 당시 컬러 방영을 하지 않은 아시아 국가는 우리나라 포함, 3개국에 불과했으니 컬러 방영이 많이 늦긴 늦었다. 재미있는 것이 우리가 보지는 못해도 컬러TV를 생산, 수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1974년 일본과 합작으로 만든 컬러TV가 전량 수출되는가 하면 1980년대에는 이 컬러TV가 우리의 주력 수출품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생산만 하고 수출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림의 떡’이 되어 지켜보기 힘들었을 텐데 차라리 바다 건너 멀리 수출된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1978년 당시 국산 컬러TV 90%는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었는데 미국은 우리나라가 자국에서는 판매하지도 않는 컬러TV를 수출하고 있다며 수입량의 인위적 제한을 예고했다. 미국이 정한 1년 30만 대의 쿼터는 같은 기간 우리의 110만 대 생산량과 이전까지 그 대부분이 미국에 수출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물량이었다. 사실상 미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조치였다는 평가다. 미국의 엄포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국민의 보는 재미를 확보해주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국내에서 컬러TV가 판매되지 않는 것을 미국이 문제 삼았으니 판매하면 된다는 계산하에 우리 정부는 컬러TV 판매와 컬러 방송 송출을 각각 1980년 8월과 12월로 허용했다. 미국의 조치에 울다가 웃게 된 오묘한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컬러TV에 대한 미국의 경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은 1984년부터 우리 컬러TV에 대해 고율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했다. 우리 TV의 대미수출을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문제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0.5% 미만의 덤핑마진 판정을 받은 삼성전자에 대해 반덤핑관세가 철회되지 않았고 그사이 미국으로의 직수출은 중단된 데다가 멕시코에서 생산 후 미국으로 수출하는 TV까지 우회적 덤핑이라며 조사대상이 되면서 압박이 본격화됐다. 우리 정부는 미국을 WTO에 제소, 1997년 7월 양자협의를 요청했다. 역사상 우리나라 최초의 WTO 제소였고 그 상대는 당시 우리나라 수출시장인 미국이었다. 당시 정부는, 1991년 이후 우리 컬러TV의 대미 수출이 중단돼 산업피해가 발생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를 철회하지 않고 있는 것은 WTO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WTO 출범에 혁혁한 기여를 한 미국에게 승소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WTO 양자협의 과정에서 미국은 오랜 반덤핑 조치를 철회할 것임을 발표했고 해당 분쟁은 1998년 10월 15일 공식 종료됐다.
1997년의 컬러TV 관련 WTO 제소에 따른 결과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오늘날 더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당시 TV와 관련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대미수출 장애를 미리 제거한 우리나라는 이후 각종 TV 신제품 수출을 이어가며 자타공인 디스플레이 수출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TV나 롤러블 TV 등에 거는 앞으로의 기대도 크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는 말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 : <위대한 여정 무역입국 70년>(한국무역협회, 2016) 및 인터넷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