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우리의 신남방정책 구상이 처음으로 발표된 나라다. 아세안 사무국이 위치한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주요 방산시장이자 섬유·봉제·신발, 가전, 철강, 석유화학 분야의 주요 투자 진출국이며, 향후 부상하는 전기차와 전기배터리 시장에서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함께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성장해온 인도네시아는 포스트 차이나 시대에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과 더불어 아세안 지역의 주력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으며 현재 ‘제조업 4.0’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아세안 사무국에 ‘아세안대표부’를 파견하고, 이를 차관급으로 격상하는 한편 산업통상자원부 관료를 대사로 부임시키는 등 인도네시아와의 경제협력에 공을 들여왔다. 이를 통해 좌초위기에 빠진 한국형 전투기(KFX)-인도네시아 전투기(IFX) 사업이 정상화되고 있고,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보건분야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지난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한·인니 CEPA가 타결되고, 2020년에 서명함으로써 향후 양국 간 교역·투자 부문의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서면서 올해 10월 기준 지난해 대비 30%가 넘는 교역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신남방정책플러스에서 ‘사람(People) 중심의 협력’이 강조되면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위기를 맞은 인도네시아 정부를 돕기 위해 양국 정부 간 보건협력이 추진됐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신수도 이전’과 관련해서도 우리나라의 경험을 전수하고, 한국 기업들의 프로젝트 참여를 지원하기 위해 ‘수도이전협력관’을 파견해 다양한 자문과 지원활동을 수행 중이다.
협력 파트너로서 인도네시아의 국가 인지도가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미국에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 제조업 육성(제조업 4.0)을 통해 중진국 도약을 도모하려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주력 선도산업 부문의 ‘전략적 산업협력’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한국과의 산업 간 협력을 통해 투자유치와 일자리 창출, 그리고 수출 증대 등을 희망하고 있다. 따라서 베트남과 한국 간 ‘휴대전화·가전’ 산업 협력과 같이 산업 간 연계를 통한 ‘투자 진출-고용-수출 증진’을 이뤄내는 ‘윈윈(Win Win)’ 모델의 가치사슬 협력 모델을 인도네시아에도 접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무슬림이 90%에 달하는 인도네시아와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선 ‘할랄’에 대한 이해와 무슬림 방문객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가장 개방적이고 온건한 무슬림 문화를 가진 인도네시아에서 한류가 무슬림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영역을 개척해내는 것은 20억 무슬림 시장을 향한 전략적 포석이 될 것이다.
인도 신남방정책의 요체는 지난 20년간 한국 경제가 도약하는 디딤돌이던 중국 의존도를 중국과 비견되는 G3 인도를 통해 대체·보완하자는 전략으로 지난 4년간 사람(People), 상생번영(Prosperity), 평화(Peace)의 ‘3P’ 틀 내에서 정부 간 협력, 우리 기업 투자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2015년 5월과 2019년 2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한국 방문, 2018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국빈 방문, 그해 11월 영부인의 국빈 방문을 비롯해 양국 정상 간 정상교류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활발했고, 양국 간 우호적인 분위기가 인도 정부 및 엘리트 그룹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연례화된 양국 국방장관 및 각군 수뇌부의 교차 방문이 K-9 자주포의 대(對)인도 수출 및 생산 협력과 전차, 장갑차, 군함 등에서의 협력논의 등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2018년 연산 40만 대 규모로 완공된 기아자동차 안드라프라데시 공장, 2021년 7억 달러 규모의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이 완공된 바 있고, 삼성전자도 휴대폰 생산규모를 월 700만 대에서 1,000만 대로 확대하는 등 우리 기업의 투자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인도의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고 글로벌가치사슬(GVC) 재편 가속화, 중국과 베트남의 정치 리스크 심화 등으로 그동안 대기 중이던 탈중국, 동남아 우리 기업의 인도 투자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3P의 사람(People) 측면에서 보면 3회에 걸친 양국 정상 상호방문, 영부인의 국빈 방문 등을 배경으로 매우 예외적인 인도 현지 도착 시의 힌국인 도착비자 허용, 인도 중고등학교 세계사에 한국사 최초 편입, 중국어를 제치고 한국어가 인도의 7개 제2 외국어 과정에 채택된 점, 비대면 환경 속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K팝, K드라마 열기와 코로나19 K방역에 대한 호평으로 인도 현지의 한국, 한국 제품, 한국인에 대한 평가는 수교 후 최고 단계로 도약했다고 평가된다. 또한 파키스탄, 중국과의 국경분쟁 및 유혈충돌 확산 속에서 도입되고 있는 K-9 자주포에 대한 높은 신뢰와 장갑차·전차·군함·항해장비에 대한 협력가능성 확대 등 평화(Peace) 분야에서의 양국 간 협력도 신정부 들어 밀월 상태로 발전됐다.
현 모디 정부는 ‘2025년 국내총생산(GDP) 5조 달러로 G3 도약’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2~3년간 경제성장세 정체, 코로나19 확산으로 2017년 양국 간 교역액 200억 달러 대비 현재 증가세는 미미하다, 연 100억 달러 전후로 지속되고 있는 우리의 대(對)인도 무역흑자에 대한 인도 측의 시정요구, 인도 측 관심 농산물 및 서비스의 수입규제 완화,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정요구 등은 우리가 호혜적인 측면에서 지혜롭게 풀어가야 할 과제다. 자주인도 정책 강화로 높아지고 있는 관세·비관세 장벽의 대응과 통관, 인증, 규격, 표준, 전자정부 등 인도 발전에 기여하고 우리 기업 지원시스템 구축도 강화하는 인도 신남방정책으로의 진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신남방정책을 공표한 이후 특히 싱가포르와는 경제·정치적 협력 교류가 매우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의 경우 많은 국가가 추진하려고 노력했지만 싱가포르가 최종 선정됐음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면 가장 적극적인 상호연결 역할이 기대된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싱가포르 투자액은 38억 달러로 아세안 국가 중 1위이며, 싱가포르의 한국 투자액은 23억 달러로 세계 2위다. 두 국가는 인프라 건설 핵심 협력 파트너 국가로서 1965~2021년 상반기까지 누계기준 건설공사 수주는 393건, 수주액은 약 456억 달러에 달한다. 또한 2018년 7월 한국의 금융위원회와 싱가포르 통화청 간 첨단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핀테크(Financial+Technology) 업무협약을 구체적으로 개정했으며, 2020년 7월에 싱가포르 내 코리아 스타트업 센터(Korea Startup Centre)를 개설했다. 한국 스타트업 업스테이지가 싱가포르 기업 쇼피(Shopee)가 주최한 인공지능(AI)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고, 싱가포르 기업의 테크놀로지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에 참가할 스타트업을 한국에서 모집한 바 있다. 또한 2020년 6월에 한·싱가포르 디지털동반자협정(KSDPA)을 협상 개시했으며 올해 내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교역량이 감소했으나 2021년 들어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 역대 최고의 교역 규모를 기록 중이다. 2020년 10월에는 현대차 글로벌 혁신센터가 착공됐고 한국·싱가포르 간 공동 R&D를 추진하는 등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양국의 백신 접종 완료율은 다른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은 상황이며, 비격리 여행권역 및 예방접종증명서 상호 인정을 통해 이러한 적극적인 협력 강화는 더 기대할 만하다. 현재 싱가포르는 기후변화 및 식량안보 대응전략을 토대로 한 산업 분야에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다. 2021년 8월 코트라(KOTRA) 싱가포르무역관은 한·싱가포르 스마트 그린 뉴딜 스타트업 지원 행사를 통해 친환경·에너지 관련 우수한 한국 기업을 발굴하고 함께 홍보함으로써 양국 간 환경문제라는 공통 이슈 해결을 위한 협력 및 사업 우호 관계를 모색했다.
싱가포르에서 한국은 미·중 갈등이 격화될수록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을 국가 중 하나로 인식된다. 이에 대응해 한국은 더욱 신뢰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신남방 지역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한편 싱가포르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이후 남북한 관계 변화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경색돼 있는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면 가장 적극적으로 상호연결 역할을 해줄 지역으로 오랫동안 외교·경제 관계가 이뤄지고 있던 아세안 국가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베트남은 1991년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국가 최우선정책으로 정하며 대외개방을 추진했다. 우리나라는 2015년 즈음부터 삼성 등 대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활발한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까지 더해져 한·베 양국 간 공동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나가고 있다.
인구 1억 명 정도에 65%가 35세 미만인 젊은 나라 베트남이 경제협력을 위해 1992년 한국과 수교함으로써 껄끄러웠던 한·베트남 간 관계를 청산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 내 인건비 상승 등 경영여건 악화에 따라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을 대체 생산거점으로 인식하면서 양국 간 경제협력은 빠르게 진전됐다.
신남방정책 대상국으로의 직접투자 중 약 절반이 베트남에 집중됐다는 사실이 한국과 베트남 간 경제협력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우리나라의 해외직접투자 대상국 중 케이맨 제도를 제외하면 베트남은 미국, 중국, 홍콩에 이어 네 번째로 규모가 큰 국가다. 2020년 말 기준 베트남에 투자된 누적금액이 279억 달러에 이르며 2015년 이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얼마 전 전경련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세안 국가와의 교역액은 목표에 모자랐지만, 베트남만은 예외적으로 목표치를 훨씬 웃돌았다. 기업들의 투자에서 비롯됐지만, 지금은 서로 문화를 공유하고 산업의 가치사슬상 상호보완하며 글로벌 대외환경에 함께 대응할 수 있는 협력 네트워크가 공고해지고 있다.
베트남과의 협력 성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양국 간 우호적인 국민감정이다. 경제협력은 상호 필요 때문에 이뤄졌다가 글로벌 환경에서 대체국가가 나타나면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베트남에 열광하고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의 대상으로 보게 된 사실이 가장 소중한 협력의 성과인 것이다. 기업의 투자가 바탕이 됐고, 박항서 축구감독을 비롯해 다방면에서의 문화교류가 보탬이 됐으며, 정부 지원이 더해져 지금의 두 나라 관계를 이루어냈다고 본다. 최근에는 금융 분야도 베트남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고, 스마트시티 협력으로까지 협력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지금까지 베트남과의 협력은 기대 이상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좋은 관계를 더욱 확대해나가기 위해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중국과 일본 등 다른 국가들과의 베트남 내 경쟁이다. 많은 나라가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 상황에서 베트남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그런 나라들과 차별적인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베트남과의 협력관계를 지속 가능한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상호 공동번영하는 발전모델을 만들어야 한다.